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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내겐 너무 낯선 그랜저 판매 1위

캐시카우 역할을 해주었던 중국 시장에서 현대자동차가 고전하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내수시장에서는 날카로운 비판 여론이 여전한 상태죠. 이런 와중에 그나마 위안거리라면 신형 그랜저 판매 성적이 아닐까 싶은데요. 작년 말부터 팔리기 시작한 6세대 그랜저는 2017년 4월까지 월 판매에서 1만 대를 계속 넘기며 올해 판매량 10만 대를 넘기는 게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사진=현대자동차


얼마나 잘 팔리고 있는 건가?

그랜저 판매량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2, 3위의 판매량과 비교해보면 더 선명해집니다.  2위인 현대 포터의 2017년 1월부터 4월까지의 누적 판매량은 34,150대, 3위 아반떼가 27,682대, 4위 쏘나타가 25,142대, 5위 기아 모닝이 23, 478대죠. 그런데 그랜저는 47,406의 누적 판매량을 보였습니다. 큰 차이죠. 흔한 표현으로 넘사벽 수준이라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왜 이렇게 잘 팔리나?

업계 관계자와 자동차 매체 기자 등에게 그랜저 판매 돌풍의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역시 신차 효과가 아니겠냐는 얘기였습니다. 그렇다면 신차 효과로만 설명이 될까요? 중형 쏘나타 상위 트림의 가격에 조금 더 돈을 보태면 구매 가능하다는 점도 그랜저 판매를 돕는 이유라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저는 자동차 구매에서 일종의 인플레이션 현상이 요즘 있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요. 예를 들어 예전 중형차와 준대형차의 가격 차이보다 현재 중형차와 준대형 가격 차이에 대해 소비자가 느끼는 부담감이 그만큼 적어진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제조사 전략의 일환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과거보다 부담을 덜 느끼고 중형차 소비층이 한 단계 높은 급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거의가 동의했던 부분은 자동차의 종류나 크기 등으로 나의 가치를 평가받는다는, 그런 신분을 드러내는 척도로 자동차가 여전히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약간 무리를 해서라도 한 급 위의 차를 타고, 그래서 그 차를 통해 내가 평가받게 된다는 것은 여전히 대한민국에서는 중요한 구매 포인트로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여기에 더해 그랜저 자체가 갖고 있는 인기도 무시할 수 없겠죠.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높다는 것은 그랜저가 처음 등장했던 1986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온 부분입니다. 

그랜저 IG 실내 / 사진=현대자동차


그럼에도 내겐 너무 낯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랜저가 처음 등장한 때가 1986년이었습니다. 명실상부한 현대차를 대표하는 고급 세단이었죠. 그러다 지금은 아슬란 아랫급으로, 제네시스 EQ 900와 G80 등에 밀려 브랜드 내 최고급 지위를 물려주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세그먼트 기준으로 E, 준대형에 속하며 차량 가격 역시 3천만 원이 넘습니다.


이런 고급 모델이 출시 이후 판매량 1위의 자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준중형과 소형 모델이 판매량 1,2위를 다투는 유럽에 살고 있는 제게는 너무나, 너무나 낯선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고로 작년 유럽 31개국 판매량을 기준으로 봤을 때 1위부터 10위까지 소형 모델이 5개, 준중형 모델이 3개, 콤팩트 SUV 1개, 그리고 중형 (파사트) 모델이 1개 포함돼 있었는데요.


판매량 상위 50개 모델 중 그랜저와 같은 E세그먼트에 속한 것은 42위의 E클래스, 그리고 50위의 아우디 A6 등, 두 종류뿐이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랜저가 부동의 1위임은 물론, K7도 꾸준히 월 판매량 4천 대 전후를 보이며 10위에 머물러 있으며, 여기에 제네시스 G80도 3천 대 전후의 월간 판매량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진=현대자동차


B세그먼트인 소형차는 한국에서 거의 힘을 못 쓰고 있는 상황이고, 그나마 경차 모닝 정도가 높은 판매량을 보이는 등, 전체적으로 자동차 판매 시장이 양극화의 모양을 보이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불과 한두 달 전에 월급쟁이의 절반 가까이가 월 200만 원도 못 받는다는 기사를 봤는데 자동차는 그런 통계가 무색할 정도로 화려한 소비가 이어지고 있네요.


언제까지 그랜저가, 그리고 그랜저급의 고급 차들이 자동차 시장을 이끌어 갈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고급 차 소비 중심의 시장이 적절한 것인지 한 번쯤은 사회적으로 논의를 해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작은 차들도 많이 팔렸으면 좋겠고, 작은 차를 탄다고 남의 눈치 안 보는 그런 자동차 소비문화가 굳건하게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그랜저의 기세가, 어쨌든 대단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