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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고향에서 조차 외면 받은 VW 제타, 사라지다

우연이었습니다. 자료를 찾던 중 4월 독일 신차 판매량과 관련된 기사를 보게 됐죠. 모델별 판매 수치를 쭉 훑던 중  폴크스바겐 제타 결과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작 석 대라니. 제타가 이 정도였나?” 처참한 판매량이었습니다. 독일에서 제타와 같은 4월 판매량을 기록한 모델은 롤스로이스 DAWN, 오펠 전기차 암페라e, 페라리 F12 등입니다. 도대체 제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제타 / 사진=폴크스바겐


조용히 유럽 시장에서 사라지다

제타는 폴크스바겐이 해치백 모델보다 노치백 세단형을 선호하는 미국 등 해외 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준중형(C세그먼트) 모델입니다. 골프의 세단형으로 기대가 컸던 자동차였죠. 실제로 1979년 이후 1,400만 대 이상 팔렸습니다. 한국에서도 판매 중지되기 전까지 판매량도 괜찮았고 호감도 또한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달랐습니다. 골프가 지배하는 유럽 대륙에서 제타는 아무리 골프의 형제 차니 어쩌니 해도 관심 밖이었죠. 앞서 언급했듯 올 4월에는 단 3대만 독일에서 팔려나갔을 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제타가 인기 없다 해도 이 지경(?)까진 아니었습니다. 2017년 1월부터 3월까지의 총판매량을 확인해 봤더니 48대로, 월평균 16대 수준이더군요.


궁금한 마음에 독일 폴크스바겐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습니다. 그런데 제타가 판매 모델 카테고리에서 빠져 있었습니다. 프랑스 VW 홈페이지에서도 제타의 이름을 볼 수 없었죠. 나중에 확인했지만 이미 2016년 말로 유럽에서의 판매는 중단이 된 상태였습니다. 딜러가 소유한 잔여분만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제타의 판매 중단을 전한 기사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소리소문없이 고향 땅에서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혹시 디젤 게이트 파동으로 제타 생산 공장이 가동을 멈춘 것은 아닐까요? 미국 VW 홈페이지에는 여전히 제타를 사라는 달콤한 문구가 떠 있었습니다. 디젤 게이트로 홍역을 치른 미국에서는 오히려 제타가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유럽에서 제타는 왜 판매가 중단된 걸까요?

제타 실내 / 사진=폴크스바겐


‘콤팩트 클래스=해치백’ 공식이 지배하는 곳

유럽은 콤팩트 클래스 이하는 해치백이라는 공식이 강력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소형급에서 세단을 찾는 것은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수준이라 보면 될 정도죠. 그나마 준중형급(C세그먼트)에서는 몇몇 노치백 (트렁크와 좌석 공간이 분리된) 모델을 유럽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시트로엥이 2014년에 C엘리제라는 세단 모델을 내놓았는데 이 차는 사실 중국 시장이 핵심이고 유럽은 C4 같은 해치백이 핵심 모델입니다. 이러한 C엘리제와 제타, 그리고 메르세데스의 CLA와 스코다 라피드, 토요타 코롤라 정도를 제외하면 별도의 이름을 부여한 노치백 모델은 없습니다. 그나마 이것도 제타를 제외하면 2010년 이후에 유럽에 선보인 것들이었습니다.


그밖에는 아우디 A3 세단, 피아트 티포 세단, 포드 포커스 세단, 혼다 시빅 세단, 오펠 아스트라 세단 등, 별도의 이름 없이 해치백의 파생 모델 정도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이들까지 모두 포함해도 종류는 11개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5억 시장에 콤팩트 세단이 10여 종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아예 현대와 기아, 르노 등은 C세그먼트 이하에서 세단형 모델을 내놓지 않고 있죠. 왜 이렇게 빈약한 걸까요?

C-엘리제 / 사진=시트로엥


민망한 판매량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는 코롤라의 경우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몇 년 전부터 다시 유럽에서 판매되고 있는데요. 2016년 독일 판매량을 살펴보니 총 358대였습니다. 월이 아닌 1년 동안의 판매량입니다. 토요타가 유럽에서 파는 모델이 대략 14가지 정도인데 그중 뒤에서 세 번째였죠.


시트로엥 C엘리제는 어떨까요? 2016년 독일에서 285대가 팔려 코롤라보다 더 못한 결과를 얻었는데요. 해치백 C4가 1만대 이상 팔린 것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그나마 메르세데스 CLA가 23,000대를 넘겨 체면을 세웠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제타는? 그래도 독일의 국민차 브랜드 폴크스바겐이며, 골프의 형제 차라고 불리는 제타는 체면을 좀 세웠을까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연도별 판매량을 확인해 봤습니다.

제타 독일 연도별 판매량

2014년 : 940대

2015년 : 1,142대

2016년 : 646대

제타가 독일에서 이런 민망한 수준으로 팔려 나갈 때 골프는 매년 25만 대 수준을 넘나들었습니다. 그나마 이 정도 판매량을 보인 것도 독일이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을 정도입니다. 엔진도 디젤보다는 가솔린이, 높은 마력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마력의 모델이 더 팔렸죠. 이는 회사에서 업무용으로도 거의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제타의 독일 내 주요 소비층이 장년층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제타 / 사진=폴크스바겐


그들의 문화, 그들의 취향

제타가 골프보다 차가 못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타 이미지는 유럽에서 (좋게 말해)점잖게 여겨집니다. 역동적 운전을 즐기는 유럽인 취향에는 콤팩트 세단이 맞지 않습니다. 거기다 트렁크와 뒷좌석 공간을 연결해 쓸 수 있는 해치백의 공간 개념은 유럽의 생활 문화와 더 어울립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제타 할아버지가 와도 승부를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폴크스바겐이 처음부터 제타에 시큰둥했던 것은 아닙니다. 1세대부터 4세대까지는 독일과 슬로바키아 등 유럽 공장에서 제타를 생산하며 판매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그러다 5세대부터 멕시코와 중국 등에 생산력을 집중하게 되죠. 제타는 이때부터 좀 더 저렴한 소재와 구성으로 변화를 맞게 되었고 이런 흐름은 6세대로 이어집니다.


다만 유럽으로 오는 제타는 북미형이나 중국형보다는 고급 소재를 썼습니다. 서스펜션만 하더라도 후륜의 경우 멀티링크형을 장착하는 등, 차이를 뒀죠. 하지만 골프를 사면 샀지 제타를 왜 사냐는 유럽인들의 선택에, 제타를 향한 여러 노력도 소용없었습니다. 천하의 폴크스바겐도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고, 결국 독일에서도 철저히 외면받았던 제타는 조용히 사라져갔습니다.

사진=폴크스바겐


다시 도전을 꿈꾸다

현재 유럽에서 제타는 공식적으로 판매가 중단된 상태입니다. 딜러 잔여분을 제외하면 구매가 불가능하죠. 하지만 이대로 제타가 유럽 시장에서 철수하거나 제타 자체의 단종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2018년쯤 제타는 좀 더 역동성이 가미된 디자인과 성능으로 무장한 채 세상에 공개될 거라는 소식이 나왔습니다. 7세대는 미국 등에 우선 출시되고 유럽에는 2019년에 출시될 것이라는 얘기도 퍼졌죠.


하지만 새로운 제타가 어떻게 나오든 유럽에서 유의미한 판매 결과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유럽인의 취향, 유럽의 생활 스타일이 바뀌지 않는 한 해치백 수십 종이 경쟁을 펼치는 유럽에서 제타는 낯선 콤팩트 세단으로 계속해서 머물지 않을까 합니다. 제타에게 고향 유럽은 가장 낯설고 먼 땅이 되어 버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