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VW '골프'는 어느 말(馬)의 이름이었다

'해치백의 교과서' '유럽에서 매년 가장 많이 팔리는 자동차' 등으로 잘 알려진 폴크스바겐 골프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유명한 자동차입니다. 디젤 게이트 파동으로 체면을 구기긴 했지만 골프는 역시 골프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한데요. 그런데 이 골프라는 이름 유래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1978년 골프 GTI / 사진=폴크스바겐


바람명으로 이름 짓기


폴크스바겐은 자사 자동차 모델명의 상당수를 바람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유명합니다. 중형차 파사트는 독일어로 무역풍을 뜻하며, 준중형급 세단 제타는 제트 기류, 시로코는 아프리카와 유럽 남부로 불어오는 지중해성 열풍을 뜻하죠. 또 '보라'는 아드리아 해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차고 건조한 바람을 말합니다. 


오랫동안 딱정벌레 비틀로 특히 미국 등에서 성공을 거둔 폴크스바겐은 1973년 새로운 해치백 타입의 작은 차를 만들고 이름 짓기에 골몰합니다. 처음에 얘기된 것은 '블리자드(Blizzard)'. 블리자드는 미국 북, 중부에 부는 강풍의 이름으로 심한 눈보라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고 경영진은 맘에 들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나온 것이 카리브(Caribe)였죠. 남미 대륙에 살던 종족의 이름이기도 하고 우리에겐 대서양과 멕시코 만에 접한 바다 카브리 해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영어로는 캐리비언. 하지만 이것 역시 썩 내키진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폴크스바겐 구매 및 물류를 책임지고 있던 호르스트 뮌츠너(Horst Münzner)는 같은 회사 임원인 한스 요아힘 짐머만(Hans Joachim Zimmermann)을 만납니다. 당시 한스 요아힘 짐머만은 말을 한 마리 가지고 있었는데요. 호르스트 뮌츠너가 말 이름을 묻자 한스 요아힘 짐머만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Golf"


한스 요아힘 짐머만의 증언에 따르면 말 이름을 들은 호르스트 뮌츠너는 계속해서 '골프'를 되뇌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새로운 해치백 이름이 결정됐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바로 골프였습니다. 그는 2014년 한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90년대 중반 호르스트 뮌츠너가 자신에게 한 이야기를 털어놨습니다.

"호르스트 뮌츠너는 내게 말했어요. 당신의 말 이름을 회의에서 내가 꺼냈고 이 이름이 채택됐다고 말이죠. "

자신의 말 'Golf' 사진을 들고 있는 한스 요아힘 짐머만의 2014년 모습 / automuseum.volkswagen.de에서 캡처


흔히 골프가 북대서양 난류를 뜻하는 걸프 스트림(Gulf Stream)과 관련 있다고 알고 있지만 2014년 한스 요아힘 짐머만의 증언으로 그 유래가 새롭게 외부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름을 제안한 호르스트 뮌츠너는 2009년 84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되는데요. 30년을 이사회 임원으로 활동한 폴크스바겐맨에겐 자신의 이름보다 더 유명한 자동차 이름을 남겨놓았다는 자부심 같은 게 혹시 있지는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담을 좀 하자면, 당시 한스 요아힘 짐머만의 말 골프는 1993년 27년을 살고 죽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95세의 나이 정도 된다고 하는군요. 또 골프 1세대와 5세대는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는 골프가 아닌 래빗(Rabbit, 토끼)이란 이름으로, 또 멕시코에서는 1세대 골프가 폴크스바겐 카리브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e-골프 / 사진=폴크스바겐


이제 내년에 신형 8세대가 공개됩니다. 벌써부터 독일에서는 신형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를 놓고 자동차 매체들이 여러 정보를 내놓고 있는데요. 말도 죽고 이름을 제안한 사람도 떠났지만 골프라는 이름의 자동차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선택을 받을 것입니다. 골프, 어떠세요 이름 괜찮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