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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보행자 사망 반으로 줄인다는데, 의무화해야죠"

자동차 안전장치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기본적인 것으로는 안전띠와 에어백이 있을 겁니다. 안전하게 멈춰설 수 있게 해주는 ABS도 필수가 됐죠. 또 차체자세제어장치나, 타이어 압력을 확인하는 TPMS, 또 사각지대 감지 시스템, 차선이탈 방지 시스템 등, 다양한 안전장치가 계속해서 자동차에 달려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자동긴급제동장치(Autonomous Emergency Braking, 이하 AEB)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독일에서 발표된 AEB 관련 자료 두 가지를 먼저 소개해드릴 텐데요. 하나는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였고, 또 하나는 사고분석전문가 그룹에서 조사한 내용이었습니다.

사진=볼보


기본사양이었으면 하는 보조장치 1위

안전, 환경 분야 등에서 감사 및 인증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데크라에서 독일 운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작년에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자동차에 달려 나오는 첨단 장치 중 기본 사양, 그러니까 무조건 장착되어 출시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게 뭐냐는 물음에 자동긴급제동장치가 69%로 1위를 차지했는데요. 


응답자의 21%는 옵션으로라도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필요 없다 답한 비중은 10%로 매우 낮았습니다. 이처럼 많은 운전자가 꼭 있었으면 하는 자동긴급제동장치라는 어떤 걸까요? 차량에 장착된 카메라나 레이더 등을 통해 앞서 달리는 차량과의 거리를 측정하거나 움직이는 대상 (사람이나 동물)을 감지해 충돌 위험이 있을 때 자동차 스스로 급제동을 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몇 년 전 처음 상용화 되었을 때만 해도 주행속도가 낮았을 때 효과를 볼 수 있었지만 조금씩 개선이 되면서 요즘은 시속 60km/h 정도로 달리다가도 이 장치가 작동할 수 있게 됐습니다. 갑자기 앞차가 멈춰서거나, 아니면 고장 등으로 멈춰서 있는 자동차, 또 골목길에서 주차된 차들 사이로 갑자기 뛰어나오는 아이들 경우 운전자에겐 반응하기 쉽지 않은데, AEB는 사람의 반응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럴 때 그 가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행자 사망 사고 50%까지 줄인다?

아데아체 AEB 테스트 장면 / 사진=ADAC


또 하나 자료는 독일 자동차클럽 아데아체가 설립한 아데아체 재단의 최근 심포지엄에서 나왔습니다.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에서 활동하는 교통사고 분석 전문가들은 차량 전후방에 보행자 감지 센서가 있는 자동긴급제동장치가 모든 차에 장착된다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보행자 수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분석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독일의 경우 1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보행자가 약 500명 전후, 자전거 운전자의 경우 300-400명 수준인데, AEB가 모든 차에 달렸다고 가정한다면 그 수는 절반으로 준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얘기된 30% 선을 뛰어넘는 결과였죠. 그러면서 이들은 제조사가 모든 신차에 에어백처럼 기본 장착시켜야 한다고 의견을 냈습니다.


2만 건 이상의 보행자 관련 교통사고 내용을 분석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보행자 교통사고의 경우 대부분 차량 앞부분에 부딪혔고, 충돌 시 70%가 중상이나 사망에 이르렀다고 전했습니다. 사고의 대부분은 승용차였으며 트럭의 경우 12%, 8%는 도로 위의 전차인 트램과의 충돌이었습니다. 또 후진하는 차량에 치인 경우는 주로 노인들이었고, 중상 이상의 경우 골반, 머리, 가슴 등에 손상을 주로 입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AEB  장착 자체가 안 되는 차들 너무 많아

사진=다임러


이처럼 보행자 교통사고는 굉장히 치명적이기 때문에 특히 자동긴급제동장치의 역할이 중요함에도 현재 이 안전장치를 옵션으로도 선택할 수 없는 차들이 너무 많습니다. 제조사들은 주로 중형급 이상에 적용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비용 등의 문제 때문에 고급 차종부터 첨단 기술이 적용되는 흐름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최근 자료를 보면 이 장치가 장착된 자동차가 1%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얘기되고 있는데, 역시 중형급 미만에서는 아예 적용조차 할 수 없어 공정하지 않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법을 통한 의무화가 답

아시다시피 미국은 2022년부터 모든 신차에 긴급자동제동장치가 의무적으로 장착이 되게끔 제조사들과 정부가 합의를 봤습니다. 보행자의 사고는 물론 차와 차 사이의 추돌 사고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연구보고가 있었기 때문이죠. 유럽은 2015년부터 대형차 중심으로 의무화가 되었고 우리도 2017년 1월부터 대형승합차와 트럭 등에 의무적으로 장착하게 했습니다. 다만 아직 유럽과 한국은 미국처럼 모든 승용차에 의무 적용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계획이 나와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시장에만 맡기기엔 현재 AEB 장착 속도로는 일반화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따라서 미국처럼 법으로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출시된 차들의 경우 AEB 장착 시 보조금 지급도 논의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의무화를 하면 많은 차에 적용이 되기 때문에 지금보다는 원가를 낮출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운전자들도 사고로 인해 받을 더 큰 피해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의 투자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장착하면 끝? 

별도 테스트 통해 인증 작업 있어야

사진=ADAC


그렇다면 이 자동긴급제동장치를 장착할 수 있게 되면 그것으로 충분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에도 한 번 소개해드린 적 있지만 독일 등에서는 AEB 관련 테스트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죠. 그리고 조건에 따라 그 성능의 차이가 천차만별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속도별, 보행자 타입별(성인이냐 아이냐), 또 보행 타입별 (횡단이나 차도 따라 보행이냐), 주간이냐 야간이냐 등. 


따라서 만약 정부가 의지를 갖고 AEB 의무화를 추진하겠다면 그와 함께 자동긴급제동장치에 대한 테스트를 별도로 진행해 모델별 성능을 소비자가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인증 작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자동긴급제동장치의 의무화, 그리고 각 모델별 성능 인증 작업이 함께 이뤄진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고 예방이 가능해지리라 봅니다.


늘 잔소리처럼 드리는 얘기이지만 안전에는 타협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관련 부처 역시 도로 안전을 위한 이런 논의에 훨씬 더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제조사 스스로 하지 못하거나 않는다면 정부가 나서 안전한 도로가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발로 뛰어야 합니다. 더 안전한 도로를 만드는 일, 모두에게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