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피아트크라이슬러를 둘러싼 두 가지 소문

포드, GM, 그리고 크라이슬러를 보통 Big 3이라고 부르죠. 이들은 미국이 자동차 산업과 문화를 지배하던 환경에서 함께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오일쇼크, 그리고 일본 및 한국 등,의 아시아 자동차의 공격이 시작되며 과거와 달리 힘을 잃고 맙니다.


뿐만 아니라 고급 차 시장은 여전히 독일 브랜드가 단단하게 움켜쥐고 있어 미국 차에겐 좀처럼 반등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있는데요. 최근에 전통적 자동차 산업을 지지하는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 기대를 갖게 하지만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 그리고 자율주행 등으로 대표되는 거대한 새 흐름은 Big 3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사진=FCA


피아트크라이슬러의 등장과 위기

2009년이었죠. Big 3 중 하나였던 크라이슬러가 파산보호 신청을 하자 이탈리아 자동차 그룹 피아트가 손을 내밀었고, 2014년 결국 크라이슬러의 잔여 주식을 사 모으며 두 회사는 FCA(Fiat Chrysler Automobiles) 그룹으로 하나가 되기에 이릅니다. 당시 이태리는 물론 미국에서도 두 기업의 합병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는데 새로운 성장동력이 마련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익을 좀처럼 내지 못하며 재정난을 겪게 되고, 페라리를 미 증권시장에 상장해 지분 매각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게 됩니다. 이렇게 페라리 주식을 팔아 피아트크라이슬러는 자금을 만들었지만 이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CEO인 세르지오 마르치오네는 경쟁업체에 FCA의 인수를 꾸준히 타진하게 됩니다.

페라리 뉴욕증시 상장 당시의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오른쪽 세 번째) / 사진=페라리


뒤처지고 있는 FCA

피아트와 크라이슬러의 합병은 그렇지 않아도 실적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피아트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연구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는 경쟁 업체들과는 달리 FCA는 기술에 대한 투자도 마음껏 하기 힘든 상황이었죠.


투자가 없으니 기술에서 앞서가기도 어렵고, 남들이 전기차다 자율주행이다 하며 미래를 준비할 때에도 FCA는 이렇다 할 청사진을 제시할 수 없었습니다.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은 FCA만이 아니라 미국의 Big 3 전체가 다른 완성차 업체와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고 분석하며, 특히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CEO를 향해서는 모던한 기술에 투자를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나마 GM은 볼트와 같은 전기차를 내놓으며 경쟁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있지만 피아트크라이슬러의 경우는 내세울 만한 전기차도, 구체적인 자율주행 관련 계획도 거의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SUV의 인기에 힘입어 미국에서 버티고는 있지만 언제까지 픽업과 SUV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피아트 공장 / 사진=FCA


두 가지 소문, 과연 이뤄질까?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CEO는 잘 알려진 것처럼 2015년 매리 바라 GM 회장에서 FCA 합병을 제의했다 단칼에 거절을 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상황이 변해 최근 GM이 오펠을 푸조 시트로엥 그룹에 넘기며 FCA의 합병을 GM이 시도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철저하게 이익을 따지는 매리 바라 회장의 경영 스타일상 그룹 전체를 합병하는 건 쉽지 않아 보입니다.


또 독일 폴크스바겐 그룹도 FCA와 연결이 되어 있는데요. 폴크스바겐의 경우 과거 그룹을 이끌던 페르디난트 피에히 전 의장이 이태리 자동차 산업에 관심이 컸고, 무엇보다 그는 알파 로메오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까지도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알파 로메오 계속 인수를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피아트가 알파 로메오만 따로 떼어 폴크스바겐에 넘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궁극적으로 그룹 전체를 폴크스바겐과 합병시키는 것을 원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거대한 두 그룹이 통째로 합병을 할 수 있을지는, 다소 회의적입니다. 따라서 그룹 vs 그룹의 통합이 어렵다면 뭔가 다른 형태의 살길을 찾아야 할 텐데요. 현재 피아트크라이슬러 그룹에 대해 떠도는 소문 두 가지를 보면 이런 다른 형태의 생존법이 가능해 보입니다.

할리데이비슨과 파트너십을 체결한 지프 / 사진=FCA


첫 번째 소문은 피아트와 크라이슬러를 분리해 유럽과 미국에 각각 새 주인을 갖게 한다는 것인데요. 오펠을 최근 인수한 푸조시트로엥 그룹과 피아트가 합치고, 크라이슬러는 GM에 포함하되 픽업과 상용차, SUV 등을 생산하는 GMC에 램을 흡수시킨다는 시나리오입니다. 그룹 전체가 한 몸으로 움직일 수 없다면 시장 상황에 맞게 피아트와 크라이슬러를 분리 매각해서라도 어려움을 타개하겠다는 복안이 아닌가 합니다.


두 번째 소문은 합병과는 좀 다른 형태로, 앞서 설명한 것처럼 FCA는 전기차나 자율주행을 위해 자금을 넉넉히 투자할 상황이 못 됩니다. 그래서 폴크스바겐에게 FCA의 미국 내 딜러망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대신 자신들은 VW의 전기차 노하우를 얻는 것이죠. 전략적 제휴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을 텐데 이런 방식으로 FCA의 위기가 해결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어떤 결정이 나든 거대한 변화는 불가피

피아트, 크라이슬러, 지프, 닷지, 램, 알파 로메오, 마세라티 등, 쟁쟁한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FCA. 4년이 넘는 기간 동안의 협상을 통해 피아트크라이슬러 자동차 그룹이 탄생했지만 시작과 함께 우울한 소문들이 계속 FCA 주변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일 텐데요. 


FCA의 바람대로 유력 경쟁사와의 온전한 통합을 이뤄내든, 아니면 피아트와 크라이슬러가 각자도생의 길을 가게 되든, 현재 상황만 보면 어떤 형태로든 피아트크라이슬러에겐 변화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최근 미국 정부는 디젤차 배기가스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FCA에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또 독일 정부도 배기가스 조작이 있었다며 이탈리아 정부와의 마찰까지 감수하며 이 문제를 그냥 넘기지 않을 분위기입니다. 여러 면에서 피아트크라이슬러는 위기상황입니다. 과연 안팎의 이 난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