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수염과 의외(?)로 웃는 얼굴이 귀여운 다임러 회장 디터 체체(Dieter Zetsche)의 재밌는 인터뷰가 공개됐습니다. 독일의 유력한 자동차 포털사이트 편집장과 자동차 거래 사이트 대표 등이 그에게 여러 질문을 던졌고, 그중 '죽기 전에 꼭 타봐야 할 다섯 가지 자동차'를 이야기한 부분이 가장 눈에 띄었는데요.
우선 그가 어떤 차를 꼽았는지 알려드리기에 앞서 디터 체체 회장에 대해 먼저 간단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53년 터키에서 태어났으니 만으로 64세네요. 아버지가 터키에서 댐 프로젝트를 이끌 때 태어났다고 합니다. 2년 만에 독일로 돌아온 그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근처에 있는 오버우어젤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닙니다.
1971년 칼스루에 대학에서 전기기술을 전공한 후 76년부터 지금까지 다임러 한 곳에서 일한, 한 우물 파기의 전형과도 같은 사람입니다. 2006년 다임러 그룹의 회장 자리에 올랐으며, 2019년 12월까지 회장직을 수행하게 됩니다. 좀 다른 얘기지만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그를 디터 제체라 대부분 쓰고 부르는데 정확하게는 디터 체체가 맞습니다.
디터 체체 회장과 그가 사랑하는 베니 / 사진 제공=mobile.de
2020년까지 BMW와 아우디를 제치겠다는 목표를 세울 당시만 하더라도 고개를 갸웃하게 했지만 지난해 실적만 놓고 보면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독일에서는 차기 회장에 대한 구체적 기사 등이 나오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회장직을 조금 더 수행해도 좋겠다 싶은데 디터 체체 회장 자신이 그럴 마음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 그럼 그가 죽기 전에 꼭 한 번 타보기를 권한 5대의 자동차가 뭔지, 지금부터 확인해 볼까요?
비틀 1200
1966년형 비틀 / 사진=위키피디아, Vwexport1300
비틀은 크게 3세대로 나뉘죠. 1938년부터 2003년까지 만들어진 Type 1, 1997년부터 2011년까지 생산된 뉴비틀, 그리고 현재 판매되고 있는 비틀까지. 하지만 1세대 안에서도 비틀은 여러 번 연식 변경을 거쳤고 그때마다 제조명이 달라졌습니다. 디터 체체 회장이 첫 번째로 꼽은 '비틀 1200'은 1962년부터 1972년까지 생산된 모델로, 경제적이었고 무엇보다 디터 체체 자신이 운전했던 첫 번째 자동차이기도 했습니다.
매우 좋은 자동차였으며 많은 운전자가 생의 첫 번째 차로 선택했었던 인기 모델이라며 그는 이 차를 가장 먼저 추천했습니다. 독일 등에서는 지금도 많이 돌아다니고 있고 상태에 따라 최소 우리 돈 백만 원부터 최고 2천만 원이면 구매 가능합니다. 옛 비틀을 원형 그대로 경험해본다는 거, 자동차 팬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바라는 바가 아닐까 싶네요.
애스턴 마틴 DB5
DB5 / 사진=favcars.com
1963년부터 1965년까지 딱 1,059대만 생산된 고급 GT카 DB5를 추천했네요. 이 아름다운 자동차는 애스턴 마틴이 생산하고 이태리 코치빌더 '카로체리아 투어링 수퍼레제라'에 의해 디자인됐습니다. 소량의 수제차를 생산하거나 디자인을 외주 받아 스타일링 작업을 하는 곳을 코치빌더 혹은 카로체리아로 부르는데요. 이태리 디자인은 자동차 역사에서 수많은 모델에 반영됐고 영향을 끼쳤습니다. 콧대 높은 영국 럭셔리 브랜드도 이태리 감성에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무엇보다 DB5는 1964년 제임스 본드 '골드핑거'에 본드카로 등장하며 유명해졌습니다. 숀 코너리가 영화 속에서 탔던 본드카는 1964년 실제로 판매용으로 생산되기도 했죠. 2012년 개봉한 007 스카이폴에서 다니엘 크레이그가 스코틀랜드의 황량한 자연을 배경으로 이 차를 다시 한 번 몰고 나타나 팬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디터 체체는 본드카의 원형으로 꼭 한 번 경험해 볼 가치가 있다며 칭찬했는데요. 하지만 매물도 많지 않을뿐더러 제대로 된 것을 구입하려면 우리 돈으로 10억 이상을 줘야만 합니다. 어쨌든 멋진 차임엔 분명합니다.
프라이트라이너 롱 컨벤셔널 슬리퍼 트럭
카스카디아 / 사진=다임러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을 하고 있는 프라이트라이너사의 트럭을 그는 세 번째로 추천했습니다. 유럽형 트럭과는 달리 보닛이 SUV처럼 길고 그 안에 엔진이 들어 있는 것을 컨셉셔널 타입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 트럭 안에 별도의 침대 등이 마련돼 잠을 잘 수 있어 슬리퍼라는 표현이 덧붙여졌죠.
영화 트랜스포머에서도 컨벤셔널 트럭이 등장하고, 좀 된 영화로는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오버 더 탑에도 많은 컨벤셔널 트럭이 등장합니다. 프라이트라이너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컨벤셔널 트럭을 파는 회사이기도 한데요. 그런데 왜 독일 차 회장이 뜬금없이 이 미국 트럭을 추천한 걸까요?
카스카디아 실내.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 사진=다임러
프라이트라이너는 다임러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입니다. 이미 1981년에 인수했죠. 네바다주에서 다임러가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이 허락된 번호판을 받았던 컨셉트 트럭이 바로 프라이트라이너의 것이니, 왜 추천했는지 감이 잡히실 겁니다. 자사 트럭을 깨알처럼 홍보한 것이 아닌가 볼 수도 있지만 디터 체체 회장 자신이 이런 부류의 차를 좋아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로 보입니다.
그는 "이 차를 타면 고속도로의 왕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라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는데요. 거대한 트럭을 몰고 대륙을 며칠에 걸쳐 가로지르는 모습, 한 번쯤 상상해 보지 않으셨나요?
램 픽업
램3500 / 사진=Ramtrucks.com
"픽업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 합니다" 디터 체체 회장이 램 픽업을 추천하며 한 말이었습니다. 1914년 닷지가 세워지고, 이후 1929년 크라이슬러에게 인수되죠. 그리고 다시 1998년 다임러와 합치며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됐다가 2011년 피아트 그룹과 합쳐지며 현재의 피아트크라이슬러 자동차 그룹의 자회사로 남아 있습니다. 파란만장한 역사가 아닐 수 없는데요.
과거 다임러와 함께했던 이유도 있었을까요? 램 픽업을 추천하며 다시 한 번 프라이트라이너 트럭과 함께 미국적 모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포드나 쉐보레 GMC 등과 북미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고, 양머리 앰블럼과 그릴 디자인 등은 램 픽업 특유의 강한 인상을 심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메르세데스 300 SL 로드스터
사진=다임러
메르세데스가 힘든 시기였던 1950년대 중반 새로운 돌파구가 되어준 모델이 바로 300 SL이죠. 경주용 모델을 양산형으로 가져왔고,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 특히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6세대까지 이어지며 역사는 계속되고 있는데요. 걸윙 도어로 유명한 쿠페가 아닌 로드스터를 추천한 것은 아무래도 클래식카로서 로드스터가 더 낭만적이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쿠페와 로드스터를 포함 현재 독일에서는 12억에서 20억 사이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는데 매물도 10여 대 이상 나와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총 5대의 추천 모델을 살펴봤습니다. 개인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차부터, 자동차 회사를 이끄는 회장답게 자기 브랜드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 안에서 보여진 개인의 취향까지, 골고루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목록을 보면 아무래도 죽기 전에 꼭 타봐야 하는 자동차라기보다는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타봤으면 하는 자동차라고 제목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쨌든 앞으로도 같은 주제를 가지고 다른 최고경영자들에게도 질문을 한다고 하니, 또 누가 어떤 차를 추천할지 기대해 봐야겠습니다. 인터뷰 나오는 대로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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