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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사라진 아우디 RS Q3, 5기통 엔진 시대 저무나?

얼마 전 독일 자동차 잡지를 보던 저는 아우디 콤팩트 SUV Q3와 관련한 소식 하나를 보게 됐습니다. Q3 라인업 중 가장 힘이 강한 모델이었던 RS Q3가 2016년 12월을 끝으로 단종됐다는 내용이었죠. 그런데 이 짧은 한 줄짜리 기사가 제게는 묘한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필요에 의해 이뤄지는 자동차 모델 단종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끝없이 나오게 마련이지만 아우디 RS Q3의 단종 소식은 모델 하나의 끝이 아닌, 한 역사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일단 아우디 독일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사실이더군요. 목록엔 Q3만 있었으며, 이미 출시된 잔여분만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RS Q3 / 사진=아우디

피에히가 문을 연 가솔린 5기통 엔진 시대

아우디 하면 여러 기술적 성취를 이뤄낸 제조사인데요. 그중에서 콰트로보다 더 먼저 세상에 빛을 본 것이 있다면 바로 가솔린 5기통 엔진이었습니다. 1976년 아우디 100(C2) 모델에 장착되며 역사가 시작됐죠. 그리고 이 기술은 당시 아우디 기술 이사였던 페르디난트 피에히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피에히는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외손자로, 집안의 포르쉐 경영 참여 문제로 갈등을 빚으며 회사를 떠나게 되죠. 그리고 아우디에 입사하기 전, 30대 초반의 젊은 피에히는 벤츠에 잠시 머물며 디젤 5기통 엔진 개발을 제안하고 시제품까지 만들어 놓게 됩니다. 이후 벤츠는 1974년 5기통 디젤 엔진이 장착된 모델을 내놓고 판매에 들어가는데 이때 시작된 벤츠의 5기통 디젤 엔진은 이후 쌍용차에 한동안 적용되기도 했습니다.

피에히가 포르쉐에서 일하던 시절 처음 눈 뜬 5기통 엔진은 아우디에서 꽃을 피우게 되는데요. 그것도 디젤이 아닌 5기통 가솔린 엔진으로 말입니다. 4기통 엔진보다 출력이 좋고, 6기통보다 작고 저렴해 효율적인 엔진이라 그는 믿었습니다. 반대로 보자면 4기통보다 연비나 배출가스에 손해이고, 6기통에 비해 부드럽지 못하고 발란스가 좋지 못하다고도 할 수 있는 엔진이기도 합니다.

5기통 가솔린 엔진이 장착된 첫 모델 1977년형 아우디 100 / 사진=아우디

하나둘 사라져간 5기통 모델들

콰트로, 알루미늄 차체, 낮은 공기저항, TDI 엔진 등 아우디의 여러 기념적 기술력에 비해 덜 알려진 5기통 엔진이기는 했지만 우여곡절의 시간을 거치며 그 역사는 이어져 왔습니다. 작년에는 5기통 엔진 4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11월까지 독일에서 열리기도 했죠. 

또 10월에는 RS Q3와 벤츠 GLA 45 AMG 등의 비교테스트 결과가 독일 주요 매체에 실리는 등, RS Q3는 계속 그 존재를 이어갈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불과 기사가 나가고 두 달 만에 단종이 되는 운명을 맞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RS Q3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언제였는지도 모를 만큼 조용히 5기통 엔진들이 사라져갔습니다.

우선 콤팩트 고성능 해치백으로 유명한 포드 포커스 RS는 2세대까지 볼보의 2.5리터급 5기통 엔진이 들어갔지만(심지어 ST에까지) 2015년부터는 4기통 엔진으로 바뀌었습니다.  실린더가 하나 줄긴 했지만 마력은 300에서 350PS로 더 강력해졌죠. 

5기통 엔진이 들어가 있던 2세대 포커스 RS / 사진=포드

포드가 가져온 2.5리터급 5기통 엔진의 원산지였던 볼보는 가솔린 엔진과 디젤 엔진 모두에서 5기통이 쓰였던 브랜드였는데요. 언제부터였는지 가솔린 모델에 더는 5기통 엔진이 장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는 2.4리터급 D4와 D5 디젤 엔진만 남아 있을 뿐이죠. 그것도 네바퀴 굴림 모델을 선택해야만 만날 수 있습니다. 

거기다 새로운 드라이브-E 엔진 라인업을 통해 볼보는 4기통 엔진에 집중하겠다고 했죠. 실제로 최근 나오고 있는 S90과 XC90 등에는 예전과 달리 5기통 엔진이 없습니다. XC 60과 V40 등, 역시 새 모델이 출시됨과 동시에 5기통을 빼고 4기통 엔진으로 통일할 것으로 보입니다. 

XC60 / 사진=볼보

아우디의 경우 그나마 5기통 역사를 계속 써나갈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해주는데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가장 최근 RS Q3가 단종되었고, 또 A3 고성능 버전이었던 RS3 스포츠백도 그보다 먼저 자취를 감춘 상태이긴 하지만, RS3 세단형과 아우디 TT RS에는 400마력짜리 5기통 엔진이 여전히 장착돼 판매되고 있습니다. 

또 사라져버린 RS3 스포츠백의 경우 불확실하지만 5기통 엔진을 장착하고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긴 합니다. 어쨌든 볼보가 순차적으로 5기통 엔진을 다 빼버리게 된다면, 포드가 픽업트럭에 디젤용 1개, 아우디가 현재 2개 모델에 가솔린용 5기통 엔진을 장착한 것 외에는 승용차에 더는 남는 게 없게 됩니다.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곳곳에서 쓰이던 5기통 엔진이 이제 멸종 위기까지 몰린 것이죠.

TT RS 5기통 엔진 / 사진=아우디

다운사이징의 시대, 5기통과 결별을 고하다

5기통 엔진은 주로 2.5리터급 배기량을 보이는데 이는 효율이 좋은 조합이었습니다. 하지만 배출가스 문제가 커지고, 연비 문제가 화두가 되면서 작고 출력이 강한 2.0리터급 4기통 엔진에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힘도 비슷하게 낼 줄 알면서 더 배기가스 대응이나 소비자의 연비 문제 등에 유리하게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독특한 (혹은 이상한) 5기통만의 사운드나 토크감은 더는 매력적인 요소가 되지 못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과연 5기통 엔진의 역사는 이대로 스러지는 걸까요? 아우디의 한 5기통 모델 단종 뉴스 때문에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어졌는데요. 5기통만이 아닌, 내연기관의 생명력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 그 부분까지도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엔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사라지고 있는 5기통 엔진은, 내연 기관의 미래를 슬쩍 보여주는 건 아닌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