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현대차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며 지켜보는 입장이었지만 오늘은 그냥 넘기기 힘든 소식을 듣고 몇 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글을 씁니다. 이미 소식을 접한 분들도 계실 텐데요. 화요일 MBC 저녁 뉴스에서 현대차의 운전대 잠김과 관련한 리콜이 축소된 것 같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이렇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아반떼와 i30 약 4만여 대를 2015년 자발적으로 리콜했습니다. 리콜 이유는 빛을 이용해 조향장치를 움직이는 광학식 MDPS에 결함 가능성을 현대차가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MBC가 입수한 현대차 내부 문건에 따르면, 문제가 된 부품이 장착된 차량은 이보다 훨씬 많은 143만대였고, 기아자동차의 포르테와 쏘울 모델에도 사용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국토부는 리콜하지 않은 다른 자동차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상반기 안에 조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했습니다.
사진=현대자동차
지금부터 무엇이 문제인지를 하나하나 짚어보도록 하죠. 우선 그 전에, 자동차 리콜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리콜이라는 것은 자동차가 안전 기준에 부적합하거나 안전한 운행에 지장을 주는 결함이 있을 때 이뤄집니다. 안전과 관련이 없다고 판단할 때 실시하는 건 무상수리라고 합니다.
리콜은 다시 자발적 리콜과 강제적 리콜이 나뉘는데요. 최근 한국에서도 자발적 리콜이 늘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가 명령에 의한 강제적 리콜이 훨씬 높았습니다. 그에 비해 미국 등에서는 예전부터 자발적 리콜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 일단 제조사가 문제를 인정하고 먼저 리콜을 하는 것은 그 자체를 거부하거나 은폐하려는 것보다 전향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아반떼와 i30 핸들 잠김 관련 리콜도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이후부터가 문제였습니다.
1. 리콜 시기
우선 보도에 따르면 현대가 리콜한 차량은 2009년 11월부터 2010년 4월까지 생산된 4만여 대였습니다. 그런데 리콜 시기는 거의 5년이 지난 2015년이었죠. 운전 중 운전대가 잠긴다는 걸 상상해 보셨나요?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입니다. 다양한 이유로 차량 리콜이 이뤄지고 있지만 운전대 잠김은 그 어떤 것 못지않게 위험합니다.
그런데 이런 위험한 상태에 운전자들은 자신과 동승자의 안전을 수년간 맡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리콜하기 전까지 그사이에 이런 기계적 결함으로 사고가 났다면, 그래서 어떤 피해가 발생했다면, 그 아픔과 억울함은 누가 책임집니까?
2. 리콜하지 않은 139만대 + α
더 큰 문제는 이것인데요. MBC 보도에 따르면 결함 부품이 장착된 차량은 국내 기준 현대차에만 143만 대라고 내부 문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다 기아 포르테와 쏘울 등에도 부품이 들어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몇 대가 지금 핸들 잠김 위험성을 안고 대한민국 도로를 달리고 있는 걸까요?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대량 리콜에 따른 책임을 피하기 위해, 또는 비용 부담을 피하기 위한 이유 등으로 만약 이처럼 현대자동차가 대응을 한 것이라면, 그들은 국민 안전을 버리고 돈 몇 푼을 선택한 기업이 됩니다. 과연 이게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세계 5위 수준의 생산량을 보이는 글로벌 기업의 태도라 할 수 있을까요?
중국 현지 현대차 공장을 둘러보고 있는 정몽구 회장 / 사진=현대자동차
3. 뒷목 잡게 한 대답
MBC는 이 문제를 보도하며 현대차 홍보팀 관계자와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관계자는 "(잠김 현상) 발생 빈도나 산포 등을 보고 (리콜)할 만하다, 문제점이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저희가 (리콜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라고 답했습니다. 한마디로 문제 제기가 많이 된 차량과, 그것이 생산된 시기에만 집중했다고 볼 수 있는 답변입니다.
특정한 부품이 문제가 된다는 걸 인정했으면 그 부품이 들어간 모든 자동차에 대해 리콜을 하는 것이 지극히 상식입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것을 따져 선별적으로 리콜을 했다고 하니, 어떤 운전자가 이런 자동차 회사의 마인드를 공감할 것이며 신뢰를 보낼 수 있을까요?
4. 정부 강력한 조치 내놓아야
개인적으로 징벌만능주의, 좋아하지 않습니다. 문제의 근본이 무언지 찾아 그것을 풀어내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징벌적 처벌을 해야 합니다. 리콜을 은폐하거나, 이처럼 리콜을 축소하는 등의 비윤리적인 행동을 보인 기업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을 통해 몇 배 이상의 금전적, 경영적 손해를 입도록 해야만 합니다.
정부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끔 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훨씬 강력한 차량 안전 관련한 규칙을 마련해 기업들이 꼼수는 꿈도 못 꾸도록 해주기 바랍니다. 한통속이란 세간의 냉소적 시선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의혹에 대한 조사 역시 빨리 마무리되기 바랍니다. 자칫 늑장 대응에 따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야겠습니다.
기업이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란다면 원칙을 지켰을 때 얻는 이익이 크다는 걸, 그리고 그것이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정도임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것은 제도를 통해, 그리고 소비자의 높은 관심 속에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얼마 전 교섭단체 연설에서 안철수 의원이 인용한 링컨의 발언을 저도 인용해 보겠습니다.
'모든 사람을 잠시 동안은 속일 수 있다. 또는 몇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자동차 경주대회에 참가하고, 글로벌 인재들을 영입하고, 소비자와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조직을 새롭게 정비하고, 품질 경영을 주장하고, 미래 시장을 준비하는 등의 여러 노력은, 이런 부도덕한 행위 하나로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거 현대자동차는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신뢰는 쌓기는 힘들어도 무너지는 건 한순간입니다. 한 가지 더. 공익제보로 해고당한 현대차 김광호 부장에 대한 복직이 하루빨리 이뤄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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