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현기차는 언제쯤이나 재밌어지려나요?

 

오늘은 넋두리를 좀 할까 합니다. 제목처럼 "왜 현기차는 재미가 없는 걸까?" 하는 점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자동차는 철저히 산업적인 관점에서 시작됐습니다. 자동차에 미친 사람들이 견디다 견디다 자동차 만드는 걸 밥벌이로 삼아 차를 뚝딱거리고 만들었다기 보다는 국가 기간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정부와 기업의 의지가 맞아떨어져 나온 결과물이란 얘기죠.

 

그러니까 우리나라 자동차 메이커들은 성장주의 경제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들이었고 이는 지금도 변함없어 보입니다. 사실 이 작은 나라에 현기차 그룹 같은 (규모면에서) 세계적인 메이커가 있다는 건 한편으로 보면 뿌듯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뭐 요즘 동네북이 돼 욕을 있는 대로 먹고 있지만, 외국에선 현기차가 새로운 자동차를 내놓으면 '한국의 00차' 라고 꼭 표현을 합니다. 원하든 원치않든 대한민국표 자동차가 되는 거죠.

 

그러니, 거창한 애국주의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냥 한국인으로 현기차가 여러 면에서 박수받고 존경받는 그런 기업으로 커주는 게 외국살이 하는 저 같은 이의 입장에선 나쁠 게 없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계속해서 자동차 관련한 잡지나 정보들을 접하면서 한국 차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 마다 허전함을 느끼게 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한국을 대표할 만한 '재미진' 차가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 차 어때? 라고 말하기 전에 알아서 세계 각국의 팬들이나 전문가들이 이구동성 "따봉"을 외쳐줄 그런 차 말이죠. 왜 그럴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사실 앞 내용에 있습니다. 한 마디로 "돈 되는 차" 외엔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위험부담이 큰, 그리고 마이너 시장용이 아니되는, 그런 대량 생산, 대량 판매 되는 차만이 유일한 관심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처음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을 때의 비루함이나, (당시) 배고픔을 뛰어넘어줘야 했던  무거운 의무감을 무시하자는 건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요즘 신차 내놨다 하면 "독일 차 보다 우리 게 좋아요~"를 외치는 지금까지도 굳이 '얼마 벌어 얼마 남았니?' 식의 차량에만 매달리는 건 현기차 스스로 갖는 자부심과는 뭔가 궤적이 안 맞아 보인다는 그런 얘기죠.

 

 

디자인과 마력이 전부는 아니다

요즘 현대 기아차가 내놓은 모델들 중에 생각해보세요. 일종의 펀 카(fun car)라고 할 만한 게 있습니까?  어떤 분들은 벨로스터 같은 게 그나마 펀 카에 가깝지 않냐며 또 저에게 '자동차 사대주의자'라고 힐난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제네시스 쿠페 3.8 같은 건 대접을 해줘야지 이 사람아." 라고 할지도 모르겠네요.

 

특히 벨로스터는 미국에서 디자인에서 높은 관심을 끌고 있고 판매 역시 괜찮은 것으로 압니다. 벨로스터 터보 같은 경우 186마력에 최대토크 27.5kg.m 정도의 상당히 괜찮은 스펙을 갖고 있기까지 하죠. 디자인, 3도어라는 독특한 구성, 마력 등이 매력적인 건 사실입니다.  터보까지 안가더라도 1.6GDI만 해도 충분히 괜찮다고 얘기를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제네시스 쿠페의 스펙은 말할 것도 없고요.

 

하지만 저에게 만약 위에 언급한 스타일리쉬한 두 현대차와 토요타 GT 86 같은 차 중에 어떤 걸 선택하겠냐고 하면 토요타에 한 표를 주겠습니다.

이 블로그 처음 들어오시는 분들께 말씀을 드리자면, 저는 일본차를 별로 안 좋아합니다. 관심이 없다고 하는 게 솔직한 표현일 겁니다. 요즘 나오는 토요타, 혼다, 닛산 등의 차량들 못생긴 건 둘 째치고, 너무 얌전하고 편안해서 도무지 끌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GT 86과 같은 차를 토요타는 만들 줄 안다는 거죠.

 

뭐 일본 메이커들의 스포츠카에 대한 열정을 역사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고 현기차는 더더욱 할 얘기가 없어질 테니까 지금 나와 있는 최근 차들에만 국한을 시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건데요. 이 토요타  GT 86의 경우 작년 여름부터 지난 주까지 본 평가 자료를 보면 '가성비' 아니 '가락비(價樂費, 가격 대비 재미)' 면에서 단연 으뜸이라는 게 결론이었습니다.

 

비슷한 체급의 BMW 125i와 같은 3000cc 차량과 견주어도 성능에서 크게 밀리지 않고, 여기에 가격을 평가 기준에 덧입히게 되면 결과는 바로 역전이 되어버렸다는 독일 최고 잡지의 평가도 있었고요. 엊그제 6대의 준중형급 모델들의 특징을 평가한 내용에서도 재미 항목에서 유일하게 만점을 획득한 모델이 GT 86이었습니다.

실내는 보시다시피 볼 게 별로 없죠. 하지만 낮은 무게중심에 불필요한 것 최소화해서 200마력의 엔진과 수동 기어와의 '최적화'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핸들링이나 코너링 등에서 차체의 움직임이 좋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 됩니다.

 

마력과 토크가 높고 생김새가 수려한 점은 분명 중요한 요소이지만 이것만 가지고 차가 재밌는 차라고 평가될 수 없다는 걸 GT 86과 같은 차들이 보여주고 있는 건데요. 저는 최적화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면 이쯤에서 현기차에 대한 독일 자동차 전문지들의 '주행성(Fahrdynamik)' 평점을 몇 개 보도록 하겠습니다.

 

벨로스터와 씨드에 대한 아우토차이퉁이라는 잡지의 평가 중 핸들링/ 슬라롬/ 조향성 부분만 제가 붉은 박스에 넣어 봤습니다. 물론 마력와 토크 등의 변수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힘과는 상관없는 부분,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하체(섀시)에서 전반적으로 현기차는 여전히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요건 아우토모토운트슈포트가 오펠 아스트라와 벨로스터를 비교테스트한 최종 평가 부분인데요. 다른 건 다 넘겨도 das unausgewogene Fahrwerk(균형이 안 맞는 하체)라는 부분은 차의 성격상 가장 가슴 아픈 지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하나 보여드리죠.

 

 

이건 아우토빌트 잡지에 실린 비교테스트에서 주행성 평가 항목만 따로 사진을 찍어 본 겁니다. 각각 세아트 레온/ 혼다 시빅 / 현대 i30 / 볼보 V40 / 스코다 라피드로 모두 준중형 모델들입니다. 핸들링과 조향성을 붉은 박스에 넣었습니다. 둘 다에서 최저점을 받았습니다. 아우토빌트는 2점 정도면 조금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으니까, 최고 점을 받은 16점을 기준으로 보면 세아트 레온(골프 플랫폼)과 볼보 등과는 분명 '운전의 재미' 면에서 차이가 있다는 단적인 예가 아닐까 합니다.

 

예전에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현기차 엔지니어 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비싸고 좋은 부품들 사다가 세팅하면 우리도 지금 보다 더 좋은 차 만들 수 있다. 또 그렇게 해보고 싶다." 고요. 확실히 비교 모델들과 비교하면 현기차의 모델들이 대체로 쌉니다. 물론 이 싸다는 건 유럽 기준에서고요. 어쨌든 가격 생각 안하고 만들면 정말 지금 보다는 좋은 차가 나올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일정부분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차의 '재미'는 단순히 돈을 더 쓴다고만 성취될 수 있는 건 아니라 생각됩니다. 토요타 GT 86과 같은 차가 그걸 증명해주고 있죠. 또 마쯔다 MX-5 같은 모델도 비싸야지만 로드스터, 즉 오픈카를 타고 바람을 가르는 맛을 누릴 수 있는 게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쯔다 MX-5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이 차 역시 벨로스터 터보와 가격 차이가 그리 크지가 않습니다. 오픈카는 비싸다는 생각을 깨뜨려준 고마운 모델이죠. 마력도 160마력까지 나옵니다. 수동 변속기의 변속감도 좋고 핸들링 쫀득한 그런 차가 MX-5죠. 기아차가 오픈카를 양산할 것이란 얘기를 들은 적 있지만 가격적인 부담과 기술적인 부담을 모두 안고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쉬운 여정은 아니라 보입니다.

 

토요타 GT 86이나 마쯔다 MX-5 같은 모델들은 또 단순히 가격 대비 재미가 있는 차로만 평가되는 게 아니라 매니아적인 면과 대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으면서 나름 자신들만의 문화와 전통을 형성시켜 가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될 겁니다. 기계적 성능에서의 비교 우위뿐 아니라 그 기계덩이를 향한 사람들의 문화적 접근까지 모두 갖고 있는 모델들이란 거죠.

 

이처럼 펀 카는 양산되어 많이만 팔리는 목적을 갖고 있는 차들이 얻어낼 수 없는 가치들을 품고 있습니다. 과연 벨로스터나 제네시스 쿠페 같은 차들이 이런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요? 그나마 유럽전용 모델로 이번에 선보인 기아의 씨드 GT 같은 게 현기차가 운전의 재미라는 면에서 얼마나 다가서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보여줄 거라 봅니다. 기대 해보겠습니다.

 

 

재미를 위한 길

사실 토요타 GT 86이나 마쯔다 MX-5 같은 차 말고 재미를 위해 태어난 차들은 많습니다. 정말 많죠. 미국의 재밌는 차들은 거친 야생마의 느낌을 주고, 유럽의 펀 카들은 정교함과 단단함으로 무장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본의 두 모델을 따로 언급한 이유는, "일본의 차들은 이제 우리의 경쟁 상대가 아니라 본다." 라고 호기 있게 한 말 때문입니다.

 

정말로 이런 자신감이 증명되려면, 디자인, 마력과 토크의 우위 외에도, 운전을 하는 이들이 정말 재밌어 죽겠다며 행복한 비명을 지를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차들을 만들어, 그게 고객들에게 인정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닛산 GT-R 같은 차가 디자인이 멋져서 수퍼카 소리를 듣는 건 아니잖겠어요? 혼다 CR-Z와 같은 칼 같은 움직임을 넘어서는 차들을 만든 후에 그런 얘기를 해도 늦지 않아 보입니다.

 

 저는 현기차가 좀 더 다양성을 발휘하는 메이커, 뭔가 자신들만의 색깔과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그런 메이커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선 절대적으로 경영자의 마인드, 철학부터 바뀌어야 할 겁니다. 계속 말씀 드렸듯 재무적 관점에서 얼마에 만들어 얼마에 팔아 얼마를 남기는지가 아닌, 돈과 상관없이 우리도 운전자들이 즐거워할 수 있는 차를 한 번 신명나게 만들어 봅시다! 라고 직원들을 독려할 수 있는 그런 경영 철학 같은 거 말이죠.

 

"현기차는 딱 팔릴 만큼만의 차를 만든다."


저는 아직도 독일의 유력 자동차잡지가 현대차를 두고 쓴 이 표현이 마음 속에서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언제쯤 현기차는 팔릴 만한 차가 아닌, 재밌는 차도 만들 줄 아는 회사가 될 수 있을까요? 언제쯤 우리는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현기의 펀 카를 만나게 될 수 있을까요? 차를 팔아 돈을 벌고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것도 좋지만, 돈을 따라가지 않고 가치를 좇아 달려가는 그런 현기차를 또한 보길 바랍니다. 이런 노력이  현기차의  미래를 풍요롭게 해주는 진짜배기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현대차 그룹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