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헐리웃 최고 감독의 자동차 샀다 도둑맞은 사연

오늘은 황당하고, 속상하고, 그러면서도 혼자만 알고 있기엔 좀 아까운(?) 그런 사연 하나를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썩 좋은 일도 아니고 해서 고민도 많았는데, 사연의 주인공과 대화 끝에 이젠 좀 시간도 지났고, 마음이 어느 정도 추스려져서 공유하자는 쪽으로 제가 부탁을 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이야기 허락해준 롱버텀님께 고마움과 위로의 말씀 전합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미국에서 작년 말에 벌어진 실제 사건을 각색한 것입니다.

 

정신 없이 바빠 자동차에 대한 관심도 못 갖고 있던 어느 날, 친구이자 자동차 딜러인 존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잘 지내고 있지?" 짧은 내 인사에 약간 상기된 목소리의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 이봐 친구, 나 지금 딜러들 자동차 구입하는 옥션 현장에 와 있어. 근데 여기 재밌는 차가 하나 나와 있어서 전화를 한 거야. 왠지 니가 찾던 차가 아닐까 싶어서 말야."  

 

일하던 중 받았던 전화라 조금은 형식적으로 전화를 받던 난 살짝 호기심이 발동했다. "뭔데 호들갑이야?" " 어 그게, 헐리웃 감독 M 선생이 타던 차라는데 자네 생각이 나는 거야." 뜬금없는 얘기였다. "영화 감독은 또 뭐고, 그 차는 또 뭐야?" 유명 감독이 타던 차라는 말이 재밌긴 했지만 굳이 그런 이유 때문에 차를 산다는 건 애들도 아니고, 살짝 올랐던 흥이 내려 앉았다. 그런 내 기분을 알았는지 존이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마이클 베이 알지?"

 

마이클 베이? 의외의 이름에 웃음이 터졌다.

 

    (마이클 베이. 사진 = 위키피디아, Daum 영화)

 

마이클 베이

1965년 생으로 처음엔 텔레비젼 시리즈물인 마이애미 바이스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다 1995년에 만든 '나쁜 녀석들'이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며 영화 감독으로 자리잡게 되고, 그 후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더 록', 브루스 윌리스와 함께 한 '아마겟돈', 밴 애플렉 주연의 '진주만', 그리고 샤이아 라보프와 로봇들이 힘을 합쳐 지구를 구하는 '트랜스포머'등을 계속해서 히트시키게 된다.

 

그가 제작하거나 직접 메가폰을 들고 찍은 영화들의 총 매출이 우리 돈으로 3조가 넘을 정도로 엄청난 흥행  감독이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마음을 잡아 끈 건 그가 유명 감독이어서가 아니라 내놓았다는 자동차때문이었다. "무슨 차야?" " 어, 메르세데스." "벤츠? 나 별로 안 좋아하는데. " "알아. 근데 이건 지난 번에 호기심 간다고 했던  CLK 63 AMG 블랙 시리즈야. 2008년 식이고 3,600킬로미터밖에 주행을 안했더라고."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생산된 CLK 63 AMG 블랙 시리즈. 벤츠의 고성능 버젼을 만드는 AMG의 모델들 중에서도 특히 이 녀석은 당시 포뮬러1에서 세이프티 카로 활약한 것을 그대로 양산형으로 만든 것이다. 2008년 기준으로 미국 내 신차 가격이 125,000달러 정도했는데, 지금 중고차로 사려고 해도 9만불 이상은 줘야 한다. 그냥 CLK 63 AMG의 경우 4만불 정도면 중고로 살 수 있지만 이건 미국에 150여 대밖에 안 들어와 있고, 일반 AMG 보다 좀 더 손을 본 모델이라 가격이 비쌀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자연흡기 엔진 모델이 아닌가.

 

"아~ 블랙시리즈네? 트랜스포머 감독다운 걸? " "차 상태는 아주 좋은데 어때, 경매에 한 번 참여해 볼까?" 고민스러웠다. 순전히 개인적 아픈 경험 때문에 벤츠를 한 번도 구입을 한 적이 없었지만, 왠지 이 녀석은 그런 옛 기억을 떨쳐낼 수 있게 해 줄 것만 같았다. 우연히 길에서 듣게 된 엔진음에 마음을 빼앗긴 후, 존에게 이런 연락이 온 것이다. '악마의 유혹'

 

4인승 모델이라고는 하지만 뒷좌석은 애들도 앉기에 부족할 정도다. 그래서 그냥 성인 2명이 타면 딱 좋은 차다. 버킷시트에 5점식 벨트라면 밟지 않고 얌전히 탈 이유가 없다. 제로백은 4초 초반에 507마력, 토크는 64kg.m 수준. 요즘은  C63 AMG 쿠페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나오고 있다.

 

요즘은 C63 AMG 쿠페 블랙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나오고 있다.

고민 끝에 친구에게 전화를 다시 걸어 구매 의사를 밝혔다. " 얼마 정도를 원하는데?" "그 감독이 말야, 차를 내놓으면서 조건을 하나 달았다네... 새 차 가격 이하로는 팔지 않겠다고." "헛!..."  뜻밖의 얘기에 좀 당황스러웠지만, 워낙 차 상태가 좋고 나름 의미도 있다고 생각해 125,000달러를 써냈고, 낙찰을 받게 됐다.

 

바로 문제의 그 차. 스마트폰으로 찍은 이 사진이 유일한 흔적이다. ㅜ.ㅜ

기분 좋게 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자동차가 인도되고 난 후 며칠 동안은 일에 치어 이 차를 끌고 다닐 상황이 못 되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드디어 이 녀석을 타게 된 날. 마침 시내에서 점심 약속이 있어 CLK를 끌고 나가게 됐다. 운전석에 앉아 듣는 엔진음은 기대했던 것만큼 좋았고, 전체적인 움직임도 나쁘지 않았다. 친구 덕에 좋은 차를 구매했구나 싶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기분을 내는 건 거기까지였다.

 

길가에 차를 주차하고 지인과 약속한 식당으로 향했다. 슬쩍 뒤돌아본 CLK AMG 블랙 시리즈의 모습을 보며 벤츠에 대한 개인적 트라우마를 떨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 오래오래 함께 잘 달려보자꾸나.' 그러나 그게 마지막 시간이 될 줄이야.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차 있는 곳으로 갔지만 CLK가 있어야 할 자리는 비어 있었다. 처음엔 '내가 주차를 잘못해 견인된 건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곧이어 파악했다. 식은땀이 순간 흘렀다.

 

경찰에 신고를 했고 바로  도난 신고가 접수됐다. 하지만  이 차가 미국 내에서 발견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해외 어딘가로 팔려나가지 않을까 생각하니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아~ 벤츠와의 인연은 왜 이리도 꼬이고 안 좋은 건지. 며칠 뒤 보험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보상을 중고 시세로밖에 해 줄 수 없어 미안하다는 얘기였다. 돈을 손해 본 것도 마음이 아팠지만, 벤츠와 나 사이에 왠지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막혀 있는 거 같아 마음이 더 무거웠다.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차를 찾았다는 연락은 없다. 혹시 이 녀석 트랜스포머의 그것들처럼 지 스스로 어딘가로 간 건 아니겠지?... 이렇게 해서 마이클 베이와의 인연도, 그리고 CLK 63 AMG 블랙 시리즈와의 짧은 인연도 끝이 났다. 언제 내가 또 벤츠를 사게 될지 모르겠지만, 한동안은 차를 잊고 일에 몰두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마음 한 쪽에 자리한 이 씁쓸함이 사라져 있겠지' 지금 내게 CLK의 흔적이라곤 주인을 잃은 자동차 열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