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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자동차 디자인, 헝그리정신으로 해야 한다?

 

이 차는 오펠이 새롭게 내놓은 경차급 모델 아담(Afam)입니다. 아담하죠? ㅡㅡ;;

 

1.2리터 엔진부터 1.4리터 가솔린 엔진으로 라인업이 짜여져 있구요. 70마력에서 최대 100마력까지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유럽에선 피아트500이나 BMW 미니, 폴크스바겐 업, 기아 모닝 등과 경쟁을 할 예정입니다. 1월부터 판매가 시작이 됐다고 하는데, 아직 본격적인 단계는 아닌 거 같더군요.

 

제가 이 작은 차를 소개하며 오늘 내용을 시작한 이유는, '디자인'과 '절박함' 사이에 과연 상관 관계가 있는지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죠? 그런데 저는 좀 다르게 보려 합니다. 우선 오펠은 요즘 최악의 위기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회사 전체 역사 중에 이번 만큼 위태로운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기본적인 이유는 판매량이 계속 감소하는 거고, 이익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 등입니다.

 

모회사인 GM이 이 적자투성이의 메이커의 여러 공장과 시설들을 사 들으면서 부채를 처리하는 방법도 고려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일부 모델은 푸조에 넘기는 방안도 검토 중이란 얘기가 있었죠. 과연 오펠이 위기를 잘 극복할지 지켜 볼 일입니다. 어쨌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오펠은 모카라는 소형 SUV와 위에 보여드린 아담을 야심작으로 내놨습니다.

 

특히, 아담의 경우는 대대적인 광고를 현재 진행 중입니다. 오펠이 새로운 모델을 내놓으면서 이처럼 요란하게 소비자들에게 " 이 차를 사주세요!" 라고 한 적이 없었던 거 같아요. 그만큼 이 차의 성패가 오펠 전체에 미칠 영향이 크다는 거겠죠. 오죽하면 독일 언론들이 '아담이 오펠을 구원할 것인가?' 라는 기사들을 쏟아냈겠습니까? 참고로 이 차의 이름은 오펠사의 창립자인 아담 오펠의 이름과 같습니다.

홍보 사진들을 보면 이 차의 방향이 보입니다. 좁은 프랑스나 이태리, 혹은 스페인이나 이런 유럽의 골목 등을 헤치고 다니는 젊은이들을 위한 모델이라는 거죠. 어차피 오펠은 독일 보다는 기타 유럽국에서 얼마나 선전을 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상황입니다.

 

일단 차에 대한 평가는 대단히 좋습니다. 최근 비교테스트에서는 성능만 놓고 본다면 함께 테스트했던 스코다 시티고, 미니, 모닝, 르노 트윙고 등을 제치고 1위에 올랐습니다. 미니 보단 주행성에선 좀 떨어졌고, 공간이 부족한 것이 단점이긴 하지만 의외로 편안하고 잘 달리는,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 품질이 좋은 차로 평가됐습니다.

 

가격은 미니 다음으로 비쌌지만 전체적으로 차는 고급스럽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차에 대한 관심은 디자인이 잘된 이쁜 차라는 점입니다. 전문가들이나 일반인들 모두 아담의 스타일을 굉장히 좋게 평가하고 있는데요. 제가 봐도 이쁩니다. 오펠의 차라고 생각이 안 들 정도로(죄송) 차가 야무지고 스타일이 살아 있습니다. 

아담은 모든 파트들이 정말 벼랑끝에 서 있다는 심정으로 작업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판매에서도 기대를 하게 하는데요. 판매는 시작이 되었으니 머지않은 시점에 성패의 분위기가 가늠이 되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어쨌든 디자인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디자이너들의 얘기가 눈으로 봐도 느껴지는군요. 

 

그런데 이와는 좀 다른 얘기를 하나 해드릴까 합니다.

 

한국의 모 자동차 회사 얘깁니다. 어느 특정 모델과 관련된 일화인데요. 한국에서는 기대만큼 판매가 잘 된 편은 아니지만 현재 해외에서는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자동차를 앞에 두고 관계자들이 모였던 모양이에요.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왔겠죠? 그러다 디자인에 대한 지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좋지만 여러 의견들을 반영해 좀 더 가다듬는 게 어떠냐? 그런데, 담당 디자이너가 한 마디를 하더랍니다.

 

" 잘 팔리는데 왜?"

 

더 이상 대화가 진전이 안됐습니다. 어느 부분을 놓고 비판적 의견이 나오면 "설득력이 약해."라는 식이었다는군요. 물론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가장 잘 압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디자이너들이 반대로 가장 모를 수도 있다 봅니다. 이건 기아의 K9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이죠. 기어봉 디자인이 모 회사의 디자인을 베낀 거라고 여론이 들끓었을 때 억울했던 모양이에요.

 

정말 베낀 게 아닌데 속상하다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오랜 시간 파고들다 보면 가끔 객관적인 시각에서 못 볼 때가 있을 겁니다. 그럴 때 이런 것을 지적하고 조율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디자이너가 (혹은 파트 엔지니어가) 안 받아 들이면 하는 수 없는 거죠. (모두가 이러진 않겠지만 해당 메이커 관계자에게 직접 들은 얘기니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요즘은 자동차 디자이너들의 영향력이 예전에 비해 많이 높아졌다고 하네요. BMW는 디자인이 우선이라고까지 하는데, 그거야 제가 알 길이 없으니 그런가 보다 하고요. 암튼 그래서 디자이너들은 엔지니어들과 의견을 조율하는 게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합니다. 그럴 때 서로 디자인에 대해, 엔지니어링에 대해 의견을 마을을 열고 나눌 수 있어야 하는데, 근데 그게 의외로 말처럼 잘 안되는 모양이에요.

 

앞서 "잘 팔리는데 왜 디자인을 건드려?" 라고 말한 디자이너는 좋게 보면 확신일 수도, 아니면 고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본차들 보세요. 토요타, 닛산, 혼다, 미쓰비시, 스즈키, 스바루... 그나마 마쯔다 정도나 좀 디자인에서 신경 쓰고 (TV 광고 자체에 여기에 촛점이 맞춰져 있음) 있지 나머지는 좀 아니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일본의 빅3의 경우 차가 잘 팔리거든요. 특히 미국 같은 곳이나 동남아를 비롯한 곳곳에서 '디자인 좀 별로라도' 차가 좋으니까 잘 팔려 나가는 겁니다. 그러니 애써 디자인에 목숨 걸 필요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쓰비시 아웃랜더

혼다 어코드 PHEV

토요타 벤자

디자인이란 게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 의견이 모두 같을 순 없지만, 토요타를 비롯해 일본차들이 디자인에서 명함 잘 못 내미는 현상은 유럽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의 반응을 봐도 알 수 있죠. 일본차들 차 잘 만드는데 왜 디자인이 그걸 못 받쳐 주는지, 왜 나아지는 기미가 안 보이는지 하는 소리들이 계속되고 있는 거죠. 토요타의 새로운 전면부 디자인이 밤에 보면 무서운 느낌까지 준다고 말하는 이도 있으니까요.

 

저는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이 차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우리나 유럽과는 달라서 그런가 보다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론 정말 절박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해도 팔려나가는데 뭐하러 굳이...라는 식의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는 건 아닌가 추측을 하게 됩니다. 토요타가 능력이 없어서 디자인에 신경을 안 쓰는 건 아닐 텐데 말이죠.

 

저는 요즘 오펠의 절박함, 그 간절함을 잘 보고 있습니다. 디자인 개발 과정의 인터뷰를 봐도 정말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고 조언을 받아내려 했습니다. 저는 이게 맞다고 봅니다. 얼마나 많은 돈을 들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차 한 대를 만들어 내는데, 보편타당한 의견들까지도 '니들이 뭘 알아?' 라는 식으로 무시된다면, 저는 아무리 차가 좋아도 그 속내를 안 이상은 손을 내밀기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설령 헝그리 정신까지 안 가더라도, 최고의 산업제품을 디자인한다는 자부심과 함께 다양한 의견들을 겸허히 들으려는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더 멋진 작품이 나올 겁니다. 좀 주제 넘게 얘기를 했는데요. 디자이너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특정한 모델, 특정한 디자이너만의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우린 자동차에 디자이너들의 영혼이 흠쩍 담겨져 있길 바랄뿐이니까요. 

 

오펠 아담의 절박함이 꼭 좋은 보상을 받았음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