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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어느 독일 자동차 딜러의 크리스마스 선행

크리스마스가 얼마 안 남았습니다. 2018년 한 해도 이렇게 저무네요. 오늘은 이 겨울, 독일에서 들은 훈훈한 이야기 한편을 들려드릴까 합니다. 유럽의 겨울은 유독 어둡습니다. 밤이 길어서도 그렇지만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더 들죠. 

12월의 프랑크푸르트 / 사진=이완


이런 겨울에는 많은 사람이 스키장이나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취하는 것으로 위로(?) 삼습니다. 특히 크리스마스시장에서 따뜻한 글뤼바인(Glühwein) 등으로 몸과 마음 달래기를 좋아들 하는데요. 오늘 소개할 사람 역시 이곳과 관련이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시의 크리스마스시장 / 사진=이완


이야기의 주인공은 토마스 바그너(Thomas Wagner) 씨로 BMW에서만 17년째 자동차 딜러로 일하고 있습니다. 독일 남서부 바덴 뷔르템베르크주 출신으로, 이곳은 벤츠와 포르쉐, 부품회사 보쉬나 ZF 등이 있는 슈투트가르트가 주도(州都)이기도 합니다. 이웃한 바이에른주(뮌헨이 주도)와 함께 독일 자동차 산업을 대표하는 곳이죠.

차 색상과 옷 색깔이 너무 똑같지 않냐며 쑥스러워한 토마스 바그너 씨 / 사진=이완


과거에는 바덴 뷔르템베르크 사람들과 바이에른 사람들이 지역 갈등을 겪기도 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옛날얘기고, 요즘은 이렇게 벤츠로 대표되는 지역 출신이 아우디와 함께 바이에른을 대표하는 자동차 회사인 BMW에서 일도 하고 그렇습니다. 제가 자동차 딜러이자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바그너 씨를 소개하려는 이유는 그의 선행 때문인데요.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독일도 생활이 어려운 이들, 또는 고아, 노숙자와 같이 사회적으로 돌봄이 필요한 이들에게 겨울은 더 춥고 더 쓸쓸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그너 씨는 그런 이웃을 돕기 위해 12년 전 지인들과 함께 작은 크리스마스시장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글뤼바인과 각종 먹을거리, 그리고 기념품을 판매한 수익 일부를 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웠어요. 제대로 홍보하기도 쉽지 않았고, 우리의 행동을 오해하는 이들도 있었죠. 시에 몸담은 일부 정치인은 자기 도시의 공원을 더럽히니 다른 곳으로 가라며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지역 방송국이나 신문에서도 다룰 정도로 알려졌죠."

토마스 바그너 씨는 프랑크푸르트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뤼셀스하임시에 허락을 받아 올해도 크리스마스시장을 열었습니다. 뤼셀스하임은 오펠 자동차 본사와 공장이 있는 곳이며, 또 현대자동차 유럽과 독일 법인이 위치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역시 자동차와 관련이 깊은 곳이죠?

바그너 씨와 지인들이 함께 기획하고 운영하는 크리스마스시장에서 연주 중인 사람들 / 사진=Thomas Wagner


그가 직접 현장에서 음식이나 물건을 판매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시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며칠의 휴가까지 써가며 기획하고 허가를 받는 등, 준비에 최선을 다한다고 합니다. 사실 그 시간 한 명의 고객이라도 더 붙잡고 상담을 해야 하는 영업사원 입장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회사 내에서도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하는 동료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바그너 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 일에 열정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마켓에서도 상인들과 협의해 나흘 동안 벌어들인 수입을 기부할 예정입니다. 보육원, 병원, 소방서, 장애인 시설 등, 가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매년 찾아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사진=Thomas Wagner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근검절약으로 유명한 독일인들조차 혀를 내두르는 구두쇠 슈바벤(바덴 뷔르템부르크 많은 지역과 일부 바이에른 지역의 사람들을 일컫는 표현) 출신답게(?) 꼼꼼하게 모든 수입과 지출 내역을 온라인에 투명하게 공개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차를 팔기 위해 크리스마스마켓 행사를 이용한 적 역시 한 번도 없다고 하네요.


어떤 오해나 의심 없이 처음 시작했을 때의 그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시장을 운영하는 게 중요하다고 그는 이야기했습니다. 가족의 응원도 이 일을 매년 계속해나갈 수 있는 힘이 아닌가 싶었는데요. 이야기를 쭉 듣고 나니 이런 영업사원이라면 믿고 차를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그너 씨의 크리스마스마켓을 찾은 사람들 / 사진=Thomas Wagner


대부분의 독일인이 그렇듯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 마지막 주를 바그너 씨는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낼 예정입니다. 아무리 영업이 중요하고 선행이 보람되어도 가족과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겁니다. 해가 바뀌면 또 다른 크리스마스 시장을 아마도 준비하겠죠? 내년에는 어떤 소박한 그의 크리스마스시장이 열릴까요? 


자신이 판매한 자동차를 타고 기뻐하는 고객들을 보는 것처럼 크리스마스시장을 운영하는 것도 행복한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토마스 바그너 씨. 그의 이런 기쁨이 계속될 수 있기를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참! 내년에는 초대를 받아 찾아가려고 합니다. 가서 글뤼바인도 마시고 작은 기념품도 하나 사 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