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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독일 자동차 전문지가 이슈에 대응하는 방법

오늘 이 글은 한 장의 사진, 정확하게 말하면 한 꼭지의 기사 때문에 적게 됐습니다. 지난주 독일의 한 자동차 전문지는 좀 이색적인 기사를 올렸는데요. 대표적 자동차 매체 중 하나인 아우토빌트가 독자들이 질문하고 전문가들이 응답하는 시간을 만든 것입니다.

아우토빌트 관련 기사 캡처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보면요. 최근 독일 연방정부는 유로5 이하의 노후 디젤차에 대해 제조사들이 하드웨어 개조(SCR 장착을 의미)를 하거나 아니면 디젤차를 처분하고 신차나 중고차를 살 때 비용 일부를 보존하도록 결정을 내렸습니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아래에 제가 쓴 글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칼럼 '새 창'이 열립니다.)



이 결정으로 디젤차를 소유하고 있는 천만 명 이상의 독일 운전자들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더 궁금해졌죠. 단순히 개조나 처분만이 아닌, 갈수록 늘어나는 노후 디젤차 진입 금지 결정과 디젤의 미래 등, 포괄적인 부분에 대한 궁금증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디젤차를 사도 되는 건지' '내가 가지고 있는 디젤차는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는지' 등, 여러 질문이 나올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아우토빌트는 자매지 빌트와 함께 이벤트성 행사를 가졌습니다. 10월 22일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독자들의 전화를 받고, 각 전문가가 대답을 한 건데요. 


행사에 참여한 전문가 중에는 안드레아스 쇼이어 신임 교통부 장관, 그리고 베른하르트 마테스 독일 자동차산업협회장 등이 포함됐습니다. 일개(?) 자동차 매체의 이벤트에 장관까지 참여하다니, 좀 놀랍죠? 물론 빌트라는, 독일 최대 부수를 자랑하는 일간지(아우토빌트와 빌트는 같은 언론 재벌 아래 속해 있습니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겁니다.

노란색 화살표로 표시된 사람이 독일 연방 교통 및 인프라부 장관 안드레아스 쇼이어입니다 / 캡처화면 출처=아우토빌트


하지만 아우토빌트 단독으로 이와 비슷한 일을 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 최대 자동차 기업인 VW 임원과 핵심 엔지니어들을 사무실로 초대해 어떤 문제를 놓고 토론해 개선 약속을 이끌고, 그런 다음 그 과정과 결과를 기사로 독자들에게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부러움, 그리고 안타까움


저는 이 기사를 보면서 솔직히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자동차 매체들 규모가 작고, 고정된 독자층이 얇은 환경에서는 사실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 문화가 얼마나 활성화되어 있고, 또 매체들 영향력이 얼마나 있으면 막강한 제조사를 움직이고 정치인을 불러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내 줄까 싶더군요.


독일의 자동차 전문지는 자체적으로 특정 이슈에 대한 캠페인을 벌이는 등, 자신들의 주장을 강력하게 펼치며 독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지지층은 매우 두텁고, 그렇게 기반이 단단하다 보니 업계 관계자나 정치인들이 자동차 전문지에 자주 모습을 드러냅니다. 부러운 부분입니다. 


오래전부터 이야기 드렸던 부분이죠.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를 가지고 있고, 1년에 150만 대 이상의 신차가 판매되고 있고, 2천만 대 이상의 자동차가 굴러다니고 있고, 그러면서도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에서는 왜 제대로 된 자동차 문화가 마련되지 못하고 단단하게 성장하지 못하는지 아쉬울 뿐입니다.


자동차 매체들이 자신들만의 콘텐츠를 개발하고 그렇게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을 찾는 게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시승기나 행사장 스케치, 보도자료 전달 등이 중심인데, 냉정하게 보자면 이런 것은 자동차 매체들이 전하는 내용의 일부일 뿐입니다. 자동차나 교통 문화와 관련해 할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데 하고 있는 얘기는 왜 이토록 제한적일까요?


사실 사석에서 아는 자동차 기자들을 만나면 독일 매체들이 펼치는 여러 기획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기도 합니다. 다들 마음은 있죠. "우리도 그렇게 하고 싶다." "아, 정말 좋은 아이디어네요."라고 응답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하기 쉽지 않습니다. 현실이 그렇습니다. 물론 의지의 문제도 있겠죠.  좋은 독일의 자동차 잡지들을 매일 보며 콘텐츠에 대해 눈만 높아졌는지 자꾸 우리나라 매체들의 현실이 대비되며 안타깝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독자들의 엄청난 구독료가 힘이 되는 독일과 달리 광고나 기획 기사 등이 아닌 이상 자생력을 키울 수 없는 우리나라 자동차 매체들 환경에서 좋은 자동차 전문가를 발굴하고, 클릭에 연연하지 않고 다양한 정보를 만들어내는 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이해는 됩니다. 그렇다고 이런 현실을 소비자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척박한 환경일지라도 의지와 열정을 가진 자동차 기자 그리고 영리한 기획자와 투자자들이 함께 하지 못하는 업계에 대한 아쉬움도 분명 있습니다.


이게...사실 더 솔직하게,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오늘 여기에 다 쏟아내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대신 앞으로는 속에 담아둔 이런 이야기들 자주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이것만 우선 이야기 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자동차 관련 기사가 보이면 더 적극 응원해주세요. 뭔가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지 않고 좋은 콘텐츠 만들려는 곳이 보이거든 지지를 보내주세요. 그 응원이 더 좋은 콘텐츠가 나오는 토대, 좋은 자동차 매체가 나오는 힘이 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