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전과 함께 자동차 열쇠 형태와 기능 발전이 눈부십니다. 열쇠라고 하면 자물쇠 구멍에 꽂아 돌리는 것이 기본이었지만 스마트 키(Smartkey)가 등장하면서 이제 원격으로 차의 문을 열고 잠글 수 있게 됐고, 키를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동을 걸 수 있게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키레스 고(Keyless Go) 기능이 있는 스마트키의 경우 주머니에 키를 넣고 있어도 잠긴 차의 문을 열 수 있으며, 최근에 디스플레이가 내장된 최신형의 경우 차량의 상태나 주행 가능 거리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자동차 키를 사용해 차량의 원격 주차도 가능해지게 됐습니다.
첨단의 자동차 키 / 사진=BMW
치명적 약점이 있는 스마트키
하지만 이런 멋진 스마트키는 그 작동 방식으로 인해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는데요. 자동차에 있는 안테나, 그리고 스마트키에 내장된 안테나가 상호 주파수를 주고받으며 기능이 활성화되는데, 이때 주고받는 주파수를 중간에서 확장해 운전자가 없는 사이 차의 문을 열고 시동을 걸어 훔쳐가는 절도 사건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보통 스마트키 증폭기라는 것을 이용하는 절도범들은 2인 1조로 움직이는데, 한 명은 자동차 키를 가지고 있는 운전자 곁에, 다른 한 명은 자동차 옆에 있게 됩니다. 운전자의 키에서 나오는 주파수를 증폭해 차량 옆에 있는 수신기로 보내면 순식간에 잠긴 차 문이 열리게 되고, 그대로 시동을 걸고 차량을 훔쳐 달아나게 됩니다.
어둠의 경로로 얼마나 유통되나 알 길 없어
서류가방 안에 들어가는 크기에서부터 스마트폰 크기만 한 수신기가 나오는 등, 불법 장비의 형태도 계속 발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해킹용 소프트웨어나 불법 하드웨어 거래가 이뤄지는 블랙마켓에서 최고 수천만 원에 증폭기가 거래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해커 등, IT 쪽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우리 돈으로 십만 원 정도에 이 불법 장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수요가 많다면 가격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스마트키 해킹 장치가 만들어지고 있고 거래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독일 자동차 잡지의 관련 기사 / 사진=이완
며칠 전 독일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빌트는 스마트키로 인해 차량을 도난당한 사람들의 사연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매년 독일에서만 약 19,000대의 차량이 도난을 당하는데 그 중 스마트키를 해킹해서 도난된 차량의 정확한 수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게 독일 경찰의 고민이라고 매체는 전했습니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차량을 손쉽게 훔칠 수 있고, 이런 이유로 독일 경찰은 스마트키 해킹을 통한 차량 도난의 숫자는 결코 적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한 중년의 독일인은 포르쉐 카이엔 두 대와 BMW 5시리즈를 모두 스마트키 해킹을 통해 도난을 당했다며, 현재 그는 자동차 키를 냄비 등에 보관하고 있다고 매체는 전했습니다. 사라진 차량 중 SUV 한 대를 경찰이 찾아냈지만 차 안에 있는 내비게이션은 이미 뜯겨 나간 뒤였습니다.
잡지가 소개한 또 다른 여성 운전자는 역시 5시리즈를 스마트키 해킹으로 도난당했고, 결국 그녀는 E클래스를 새로 구입하며 키를 꼽아 돌려야 문을 열고 시동을 걸 수 있는 옛날 방식의 자동차 키를 선택했습니다. 이미 해당 매체는 오래전부터 스마트키 해킹 문제를 다뤘습니다. 올 초에는 직접 여러 대의 자동차를 대상으로 테스트를 실시해 90% 이상의 자동차의 문을 열고 시동을 걸기도 했죠.
ADAC가 공개한 해킹 테스트 결과
사진=ADAC
역시 스마트키 해킹 문제를 수년째 연구하고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독일 운전자 클럽 아데아체(ADAC)는 지난 5월 그동안 테스트를 진행한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스마트키 해킹 테스트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자체적으로 제작한 작은 크기의 해킹장치를 이용해 자동차 108대, 오토바이 3대 등, 총 111대를 대상으로 실험했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공개된 명단부터 보겠습니다.
아데아체 스마트키 해킹 테스트 결과 / 자료=PDF 캡처
판매량이 일정수준 이상인 대부분의 자동차 브랜드가 대상이었죠. 해당 모델의 최초 등록일, 그리고 차량 문을 열 수 있는지, 또 시동을 걸 수 있는지 등으로 나뉜 결과를 보면 한 대의 예외도 없이 해킹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중 BMW 전기차 i3의 경우 초기 모델은 시동은 걸리지만 문을 열리지 않았고, 인피니티 Q30의 경우 반대로 문은 열렸지만 시동은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 두 개 모델을 제외하고는 테스트 전 모델이 도어 및 시동이 해킹 프로그램에 의해 작동됐습니다.
해킹을 예방하려면 냉장고를 이용하라?
그렇다면 이렇게 속절없이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요? 완벽한 방법은 아니지만 현재까지 가장 확실한 것은 알루미늄 캔, 혹은 알루미늄 포일 등으로 키를 넣거나 감싸는 것입니다. 실제로 독일 주간지 슈피겔에서도 직접 실험을 통해 그 효과를 확인시켜주기도 했습니다.
집안에 있다고 안심할 수 없습니다. 최소 7~8미터에서 최대 100미터에 이르는 거리를 증폭기가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집에 돌아오면 현관 등에 키를 방치하지 않아야 합니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캔에 넣어 보관하거나 알루미늄 포일로 감싸 보관하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냄비 속이나 냉장고 안에 보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이쯤 되면 휴대하기 편한 스마트키 해킹 방지 전용 케이스나 보관통이 애프터마켓에 등장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사진=이완
문제 해결 의지 안 보이는 자동차 회사
스마트키 해킹 관련해서는 개인적으로도 예전부터 문제를 지적하는 글을 썼습니다. 미국과 독일에서 실제 도난 장면이 담긴 영상이 유튜브 등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여러 언론이 꾸준하게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처음 소식을 접한 것만 6년 전입니다. 그런데 제조사들은 이런 약점이 있음을 뻔히 알면서 아직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한때 유력하게 논의되던 대책이 있었다고 하죠. 스마트키의 이동을 감지하는 센서를 통해 움직임이 없다고 판단되면 자동으로 주파수를 차단해 기능을 일시 멈추게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제조사들이 적용하려고 검토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떤 곳도 이런 비슷한 방법으로라도 스마트키 해킹 대응 솔루션을 소개하거나 제품화한 곳은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라도? / 사진=ADAC
자율주행 시대다, 커넥티드카가 어떻다 등의 말 그대로 첨단을 이야기하는 요즘, 자동차 키의 보안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어떻게 자신들 자동차에 신뢰를 보내달라 소비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걸까요. 그리고 계속해서 제조사가 이 문제를 방치한다면 정부라도 나서야 합니다. 법으로 강제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또한 이 문제에 대해 소비자들의 관심도 지금보다 더 높아져야 합니다. 더 자주, 지속해서 언론도 다룰 필요가 있겠습니다. 아무쪼록,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자동차 회사들의 자발적 노력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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