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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독일 자동차 업계 담합 의혹 누가, 왜 폭로했나?

독일 자동차 업계가 담합 의혹으로 뿌리째 흔들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지난 금요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우리로 치면 공정거래위원회 격인 연방카르텔청에 폴크스바겐이 보낸 서류를 입수해 공개했는데요. 독일의 자동차 회사 5곳인 폴크스바겐, 아우디, 포르쉐, 벤츠의 다임러, 그리고 BMW가 20여 년 동안 여러 분야에서 담합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사진=포르쉐


내용을 보면 그간 200여 명이 60여 차례에 걸쳐 비밀스러운 만남을 갖고 각종 기술, 그러니까 엔진은 물론 변속기부터 심지어 컨버터블의 지붕, 그리고 요즘 민감한 이슈인 디젤차 배기가스 문제 등, 가리지 않고 협의를 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단순히 제조사 관계자들끼리 만나 의견을 교환한 것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런 수준이 아닌, 부품업체 선정이나 가격 협상까지도 의견을 나눈 것으로 현재 의심받고 있습니다.


그중 디젤 배출가스 관련 부분이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올랐는데요. 질소산화물 배출가스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진 것은 선택적환원촉매(SCR)법입니다. 요소수를 분사해 이것이 질소산화물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무해한 질소와 물로 환원시키는 것으로, 이 요소수를 독일에서는 애드블루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애드블루를 담는 요소수 탱크 크기를 가격 부담을 이유로 담합해 줄임으로써 질소산화물을 효과적으로 줄이지 못했고, 이것은 디젤 게이트와 무관하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슈피겔은 봤습니다. 


BMW 가장 먼저 부인하고 나서

사진=BMW


보도가 되자 일요일 BMW는 공식적으로 담합은 없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자신들의 질소산화물 저감 기술은 경쟁사들과는 다르며, 모임은 있었지만 애드블루 인프라 확장을 위한 토론이었다고 했습니다. 반면 혐의를 받고 있는 다른 자동차 기업들은 아직까지 BMW처럼 공식 반박을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왜 자백서를 냈을까?

이 거대한 카르텔 의혹을 슈피겔이 터뜨릴 수 있었던 것은 폴크스바겐이 연방카르텔청에 낸 서류를 입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카르텔 의혹에 대해 밝힌 것으로 보이는 서류로, 빌트지 역시 슈피겔의 또 다른 기사를 인용해 폴크스바겐이 이번 5대 제조사 담합 의혹에 관한 자료를 이미 약 1년 전에 제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슈피겔은 월요일(24일), 독일 현지 시각으로 오후에 올린 최신 기사에서 쥐트도이체차이퉁 보도를 인용, 메르세데스 벤츠의 모기업인 다임러 그룹 측이 오히려 폴크스바겐보다 먼저 서류를 제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언론마다 조금씩 얘기가 다르니 어느 곳이 먼저 제출을 했는지는 더 확인해 봐야 할 거 같습니다만, 그렇다면 왜 독일 언론들은 누가 먼저 서류 제출했는지를 따지고 있는 걸까요?

디터 체체 회장 / 사진=다임러


EU는 반독점법 위반과 관련해 대상 기업 중 먼저 자백하는 곳에는 벌금을 물리지 않는, 일종의 관용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확실한 사례가 작년에 있었죠. EU는 수년 전부터 유럽 내 트럭 제조사들에 대한 반독점법 위반 행위를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최종 결정이 나왔는데요.


EU는 MAN, 다임러, 볼보와 르노, 이베코, 그리고 DAF 등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프랑스 등에 적은 둔 트럭 회사들에게 총 30억 유로(3조 9천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다임러가 가장 많이 벌금을 맞았고 폴크스바겐 그룹의 자회사인 MAN은 벌금을 면했습니다. 면한 이유는 당시 1990년대 중반부터 이어져 오던 카르텔을 자백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의 경우 만약 카르텔이 사실로 드러나게 되고, 그래서 한 해 수익의 최대 10%까지 벌금을 물릴 수 있다는 규정을 적용받는다면 폴크스바겐은 (자회사인 아우디, 포르쉐 포함) 2016년 총매출 기준으로 약 28조 2천억, 다임러는 19조 9천억, BMW는 약 12조 2천억이라는 상상하기 어려운 벌금을 내야만 합니다.


따라서 카르텔에 대해 최초 자백을 하는 쪽은 최소한 10조 수준의 벌금을 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다임러와 폴크스바겐이 면책 특권을 얻기 위해 발 빠르게 대응을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자료를 두 번째 제출했더라도 중요한 정보가 인정된다면 50%의 벌금을 면할 수 있습니다. 

사진=아우디


 현재 독일 분위기는 침통함 그 자체

독일 언론들은 계속해서 대대적으로 카르텔 의혹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수십 조의 벌금은 물론, 경쟁을 통해 자동차 가격을 낮출 수 있음에도 담합을 한 제조사들에 대한 유럽 소비자들의 수많은 소송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오는 중입니다. 거기다 독일 자동차 회사들은 2021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 평균 95g을 유지해야 한다는 기준을 현재로서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보고서가 공개되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따른 제조사별 벌금액 역시 2021년 한해에만 약 2조 3천억 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디젤 게이트 문제가 여전히 해결이 안 된 폴크스바겐의 경우는 카르텔 담합과 배기가스 감축 어려움에 따른 벌금까지 더해져 버티기 어려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가 독일 자동차 산업을 뿌리째 흔들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물론 소비자들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벌금만이 아니라 책임자들에 대한 사법 처리도 강하게 요구할 것입니다. 또 독일 디차이트 설문에서는 이번 사건이 다음 차 구매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응답자의 70%가 넘게 답했습니다. 당장 판매에도 영향을 받을 수도 있어 보입니다. 

마티아스 뮐러 폴크스바겐 그룹 회장 / 사진=폴크스바겐


요즘 독일 자동차 업계는 그야말로 코너에 몰린 양상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는 누구도 아닌 자신들 스스로 만든 것이라는 점에서 더 곤혹스러울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프랑크푸르트모터쇼와 큰 게이트가 연결되는 듯한데요. 2015년 디젤 게이트가 터진 날도 모터쇼 일반 개장 첫날이었고, 이번 카르텔 담합 의혹이 터진 것도 9월 모터쇼를 눈앞에 둔 시점입니다. 


겨우 디젤 게이트 이후 추스르는가 했던 업계는 카르텔 담함 의혹으로 다시금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게 됐습니다.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동차 역사를 이끌며 독일 산업의 중심축이 되어준 자동차 산업이 어쩌다 이런 지경에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독일 국가 이미지의 하락도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 과연 이 의혹은 어떻게 결말을 맺게 될까요? 담합 의혹을 벗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독점적 사업을 펼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될까요? 독일 자동차 산업은 지금 큰 위기에 빠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