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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테슬라 보조금, 한국과 독일의 다른 선택

며칠 전이었죠? 환경부가 '전기자동차 보급 대상 평가에 관한 규정'이라는 이름도 긴 개정안을 19일 행정 예고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좀 쉽게 풀자면, 전기차 구매보조금 지급을 위한 그동안의 법적 기준을 현실화하려는데 그 계획을 먼저 국민에게 알린다는 것입니다. 그간 기준은 배터리 완속충전 시간이 10시간을 넘어가면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는데 개정되는 법에는 이 10시간이 빠지게 됩니다. 


이로써 본격 판매될 테슬라 모델 3도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참고로 모델3의 완속충전 시간은 10시간이 넘는다고 하죠. 그런데 모델 3만 혜택을 받는 게 아닙니다. 모델 S와 모델 X 등, 테슬라 상위 모델들도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모델 S / 사진=테슬라


정부 "환경성 개선이 목적이다"

사실은 무역 마찰 우려?

이처럼 1억이 넘는 고가의 전기차에 보조금, 그러니까 세금이 투입되는 것에 대해 정부 내부적으로 논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보조금 지급 대상에 제한을 두지 않기로 한 이유는 뭘까요? 정부 측은 배기가스 배출이 없는 전기차를 늘려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본래 취지에 맞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차 판매가와 상관없이 목적에 부합하면 보조금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무역 관점으로도 기술 문제 외적인, 그러니까 충전 시간이나 차량 가격 등으로 제한을 두거나 결과적으로 차별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의견이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모 언론은 전했는데요. 이것은 한미 FTA 체결에 따른 미국 측의 혹시 모를 무역 마찰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사실 두 번째 발언이 법 개정을 위한 현실적 이유로 느껴진 것은, 작년에 한 차례 정부는 테슬라 모델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에 부정적 의견을 내비쳤습니다. 물론 테슬라가 한국 상륙하기 전이었고, 따라서 실체가 없는 상황에서 섣부르게 보조금을 언급하는 게 맞지 않아 보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관련한 보도를 한 언론의 기사를 보면 국내 제조사 보호 차원에서라도 가급적 보조금 지급 없이 영업할 수 있게 하려는 게 정부의 의도로 읽혔습니다.


그게 이번에 보조금 지급, 그것도 1억이 넘는 모델들까지 모두 혜택을 받는 쪽으로 결정이 난 것이죠. 중앙정부 보조금 1,400만 원에 지자체별로 따로 나오는 보조금, 여기에 세금 혜택 등으로 지역에 따라 최고 2,600만 원에서 3,000만 원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런 큰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고 했을 때 테슬라 측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결국 무역 마찰을 피하기 위해 정부가 방향을 튼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이오닉 전기차 / 사진=현대자동차


이번 법 개정의 결정적 이유가 무엇인지는 정부만 알 겁니다. 그러니 추측은 이 정도로 끝내야겠죠. 결국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환경부는 여러 의견을 모은 뒤 9월 중 확정 공포할 것입니다. 테슬라 모델 S나 모델 X 구매를 고려 중인 소비자들에게는 그 어떤 소식보다 반가운 뉴스가 될 텐데요. 그렇다면 이번엔 제가 살고 있는 독일로 와 보겠습니다. 왜 독일이냐? 전기차 보조금 관련, 우리 정부와는 전혀 다른 기준과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보조금 지급 시작한 독일의 현재 상황

독일은 그동안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애써 거부한 국가 중 하나였죠. 기껏해야 2015년 법을 하나 만들어 무료 주차와 버스전용 차로 이용 등의 혜택을 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물론 세금 혜택도 있긴 했습니다만 결국 그다음 해인 2016년, 정부 내의 반대, 그리고 정부 밖에서의 반대 목소리가 있었음에도 메르켈 정부는 보조금 지급을 결정하게 됩니다.

사진=다임러


알려진 것처럼 메르켈 총리는 2020년까지 전기차 보급 100만 대를 공약으로 내건 바 있는데요. 이 공약을 위해 정부 입장에서는 더 강력한 전기차 보급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조금만큼 성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없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물론 현재까지 상황으로 봐서 목표치 달성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국민에게 보일 필요는 있었을 겁니다.


2020년까지 한정된 보조금 정책을 위해 연방 정부와 제조사들은 총 12억 유로 (약 1조 5천억 원) 예산을 절반씩 마련했습니다. 세금만이 아닌, 제조사 비용이 절반 가까이 투자된 것이 눈에 띄는데요. 순수 전기차의 경우 4,000유로 (약 5백만 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3,000유로를 보조금으로 쓰게 됩니다. 우리와 비교하면 순수 전기차 보조금에서 차이가 큰 편이죠?


어쨌든 그 덕인지 독일의 2017년 상반기 전기차 판매율은 전년 동기 대비 134%나 늘었습니다. 상반기에만 10,189대가 팔렸는데 이 수치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 제외된 순수 전기차만의 판매량이죠. 둘을 합치면 총 22,453대가 판매됐습니다.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 독일 내 주요 전기차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판매량 간단히 확인해 볼까요?

2017 상반기 전기차 및 PHEV 모델별 판매량

1위 : 르노 ZOE (총 2,429대)

2위 : BMW i3 ( 전기차 1,317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743대, 총 2,060대)

3위 : BMW 2시리즈 PHEV (총 1,626대)

4위 : 테슬라 모델 S (총 1,263대)

5위 : 폴크스바겐 골프 (전기차 532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636대, 총 1,168대)

6위 : 기아 쏘울 EV (총 991대)

7위 : 테슬라 모델 X (총 632대)

8위 : 폴크스바겐 E-UP (총 568대)

9위 : 닛산 리프 (총 521대)

10위 : 메르세데스 B 클래스 전기차 (총 416대)

ZOE / 사진=르노


현대 아이오닉과 스마트 포투와 포포 전기차도 의미 있는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전반적으로 골고루 시장에서 전기차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 중에서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모델이 있는데 바로 테슬라 모델 S와 모델 X입니다. 독일 정부는 6만 유로 이상 되는 고가 모델에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죠.


일부 독일 모델 (X5 PHEV)도 제외됐지만 테슬라의 경우 주력 모델 두 가지가 혜택을 받지 못해 일론 머스크 회장이 자국 제조사를 보호하려 한다며 독일 정부에 드러내놓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꼭 그 이유만은 아닙니다.


세금 아껴 쓰라는 강력한 반대 여론

처음 보조금 지급 확정 소식이 독일 언론을 통해 전해졌을 때 반대 여론이 비등했습니다. 국민 세금이 모두에게 혜택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제조사와 부자들 주머니만 도와줄 것이라고 불만이 대단했습니다. 차라리 친환경 연구개발에 자금을 쓰든가 아니면 대중교통 활성화 등에 돈을 투자하라는 얘기도 끝없이 나왔습니다.


메르켈이 속한 여당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있었는데 메르켈 정부의 핵심 장관인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당시 가장 큰 이슈였던 난민에 대한 예산이 추가되는 등, 재정에 부담이 된다며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정부 정책의 질서를 생각해서라도 세금을 보조금에 쓰기보다 제조사 스스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변하기도 했죠.


그 외에도 각계에서 찬반 의견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중 고가 전기차에 보조금을 주지 않도록 차이를 둔 것은 잘한 것이란 얘기도 있었습니다. 테슬라 입장에서는 독일 정부를 대상으로 차별이라며 다툴 수 있는 문제였지만 우리와는 달리 EU와 미국은 오바마 마지막 임기 때 FTA 논의가 결렬됐고, 결국 차기 미국 정부와 협상하기로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되며 FTA 협상 타결은 더 어려워진 상황입니다.


결국 테슬라 입장에서는 독일 정부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됐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모델 3의 경우는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어 본격 생산이 되면 2020년까지 어느 정도 혜택을 기대할 수 있을 듯합니다.

i3 / 사진=BMW


보조금 정책 독일에서 큰 성과 못내 

돈 쓰는 데 까다로운 독일인들 입장에서 전기차 보조금 혜택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판매 성장세도 분명 컸습니다. 보조금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것이죠. 하지만 냉정하게 상황을 보면 보조금 혜택이 기대만큼 시장의 판을 흔들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12억 유로의 보조금 중 실제로 집행된 금액은 2017년 1분기까지 총 550만 유로뿐이었습니다.


1년이 조금 안 된 기간이긴 하지만 현재까지 보조금을 통해 전기차를 구입하려는 움직임이 정부나 제조사의 예상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3년 반 남은 기간 동안 보조금을 다 소진할 수 없을 가능성이 커보이는데요. 역시 충전의 문제 등 인프라 구축, 그리고 더 다양한 전기차 모델이 나와야 전기차 시장이 탄력을 받지 않을까 합니다. 그나마 테슬라 모델 3, 그리고 폴크스바겐이 준비하는 새로운 전기차, 또 좀 더 저렴한 순수 전기 SUV 등이 등장하게 되면 다른 분위기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까지 내용을 보면 독일과 한국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은 조건과 놓인 상황 등,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가 자동차에 보조금을 주는 일 역시 두 나라는 차이를 보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독일의 차등 보조금 정책에 그나마 마음이 가는데요. 하지만 우리 정부의 결정이 혹,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한 것이었다면 아쉽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이제부터라도 국민 세금과 관련이 있는 전기차 보조금 문제,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