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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독일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중단하자 생긴 일

유럽은 전기차 성장세가 가파른, 말 그대로 전기차 미래가 창창한 시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성장세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죠. 독일 정부는 지난 12월 중순 전기차를 구매할 때 받게 되는 보조금을 중단한다고 밝혔습니다. 전기차 활성화에 사활을 건 유럽에서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요? 그리고 발표 후 어떤 상황이 펼쳐지고 있을까요?

사진=푸조

 

▶ “응. 예산안 이용 그거 위헌이야~”

앞서 얘기한 것처럼 독일 정부는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했습니다. 사회적 갈등이나 부정적 여론에 밀린 게 아닌, 갑작스럽다고 느낄 만한 조치였습니다. 돈이 없어서? 아닙니다. 유럽이 가난해지고 있다고들 말해도 독일 같은 나라는 아직 아닙니다. 경제력 4강 수준인데 그럴 리가요.

 

독일 정부는 이미 몇 년 전(2016)부터 전기차를 사면 최대 9천 유로( 1200만 원)를 정부가 지원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금액이 2023년부터 줄었죠. 최대 6,750유로가 됐습니다. 줄였어도 한화 천만 원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다만 함께 보조금을 받던 플러그인하이브리드(배터리 전기차보단 적은 액수) 2023년부터 보조금을 중단했습니다.

 

또 리스 전기차에 대해서도 보조금을 줬고, 중고 전기차를 사도 보조금을 줬습니다. 중고 전기차 보조금은 4,500유로. 이것도 약 650만 원 수준입니다. 자동차세도 10년까지 면제입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혜택이 더 있습니다. 이렇게 진심을 담아 보조금 제도를 활용했으니 전기차 판매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갑자기 이를 중단한 겁니다.

 

그런데 이런 결정은 독일 연방정부도, 주정부의 결정도 아닙니다. 헌법재판소 판결입니다. 코로나19 대응하기 위해 쓰려던 기금이 우리 돈으로 약 88조가 있었습니다. 이 기금을 2023년과 2024년까지 보조금으로 사용하려고 했죠. 2024년은 2023년보다 보조금이 줄게 되지만 전기차 전체 판매량이 늘면서 많은 세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으니 유용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예산, 그러니까 코로나19를 위한 기금을 전기차 보조금으로 쓰는 게 위헌이라고 본 겁니다.

 

갈리는 찬반 여론

ID.7 실내 / 사진=VW

 

보조금이 사라졌으니 전기차를 팔고 있던 자동차 회사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업계 거센 반발’ ‘국내 완성차 유럽 수출 비상’ ‘날벼락등의 표현이 관련 기사 제목으로 사용됐습니다. 보조금이 있으니 그걸 활용해 전기차를 사려고 했던 소비자의 당혹감도 제조사 못지않을 겁니다.

 

특히 중국산 자동차들이 거세게 유럽 전역으로 침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보조금 중단은 유럽에 뿌리를 두고 사업을 펼치고 있는 자동차 회사들에겐 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 독일 뿐인가요? 프랑스도 같은 결정을 내렸죠. 유럽 최대 시장의 이런 결정은 타격이 아닐 수 없고, 당연히 유럽 브랜드들의 반발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결정으로 2024년 독일에서만 최대 20만 대나 전기차 판매가 줄 것이라는 독일 전문가의 분석이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전기차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보조금이 없다면 판매량이 뚝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또한 환경부와 환경단체들의 반발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됩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를 지상 과제로 놓고 있는 EU 입장에서도 답답해하지 않을까 합니다.

 

반대로 보조금 지금 중단을 찬성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독일의 한 여론조사에서는 이번 결정을 거의 절반에 가까운 독일 국민들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금을 전기차 구매 보조금으로 쓰는 것 자체를 마뜩잖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미 독일은 고가의 전기차에 보조금 주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고, 그래서 일정 금액 이상의 전기차는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테슬라 모델 S 같은 게 그 대상이어서 일론 머스크가 독일 정부를 맹비난하던 기억이 납니다.

 

“손님, 일단 사세요. 우린 보조금 드려요~”

그렇다면 보조금 사가는 이렇게 엔딩인 걸까요? 아닙니다. 독일 정부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지만 일부 자동차 회사들은 보조금을 계속 지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것도 정부 몫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푸조, 시트로엥, 피아트, 오펠 등의 스텔란티스 그룹, 폴크스바겐, 아우디, 메르세데스, 그리고 한국의 기아 등입니다.

 

예를 들어 기아는 2023 12 31일까지 니로 전기차, EV6, EV6 GT 등을 산 고객에게는 최대 6,750유로 전부를 보조하기로 했습니다. 1 1일부터 2024 3 31일까지 전기차를 사면 (e-쏘울 포함) 원래 독일 정부가 약속했던 2024년 최대 보조금 4,500유로까지 주겠다고 밝혔습니다. 폴크스바겐도 거의 비슷해서 2024 3 31일까지 차량 등록을 한 고객들, 그러니까 번호판을 받은 고객들에게 최대 4,500유로의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홈페이지 등을 통해 알렸습니다.

독일 번호판을 달고 있는 EV6 / 사진=기아

 

그래서 언론 등을 통해 보조금 지급 소식이 나온 브랜드 외의 곳들은 어떤지 한 번 찾아봤습니다. BMW, 볼보, 현대차 등의 독일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는데 해당 브랜드 홈페이지에선 이와 관련한 내용을 아직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치열한 시장에서 경쟁자들의 이런 결정을 그냥 두고만 보진 않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이대로 끝나진 않을 것

그렇다면 어떻게 제조사들은 이런 통큰결정을 할 수 있었던 걸까요? 사실 독일 정부의 보조금은 100% 세금으로만 구성되지 않았습니다 완성차 업체 몫도 포함되어 있었던 건데요. 2023년 줄 수 있는 보조금이 최대 6750유로였다면 이중 2,250유로가 제조사 몫입니다. 제법 비중이 크죠? 이런 구성은 2016년 처음 보조금을 지급할 때부터 상호 약속되었던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제조사들은 2024년 전기차 보조금을 준비해 놓았을 것이고, 이제 그 돈을 독일 정부의 몫까지 늘려 지급하기로 한 것이죠. 이로써 계약을 끝냈는데 보조금을 받지 못할 상황에 처한 고객, 그리고 전기차 구매를 준비하고 있던 고객들까지 다 보듬을 수 있게 됐습니다.

 

현재는 1분기까지만 보조금 혜택을 주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독일 정부가 새로운 해법을 내놓을 수도 있고, 또 보조금 지급을 통해 고객이 몰릴 경우 제조사 자체적으로 보조금 액수를 조금 줄이더라도 계속 구입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전기차 판매량을 끌어 올려야 하는 독일 정부와 EU, 그리고 전기차 중심으로 사업을 전환하기로 한 완성차 업체들 모두의 해결해야 할 문제이니 이렇게 보조금 중단으로 끝이 나진 않을 거란 얘기죠.

사진=아우디

 

맨 앞에 밝혔지만 유럽의 전기차 시장은 그 어떤 곳보다 쾌청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올해부터 여러 이유로 전기차 판매량이 줄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프랑스와 독일처럼 유럽 최대 시장이 보조금을 중단하면서 유럽의 전기차 성장은 일단 위기를 맞게 됐습니다. 과연 이 얽히고 꼬인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갈까요? 이후 대응을 유심히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