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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유럽에서 현대 기아의 엔진 자동차 과감히 버리기

몇 년 전부터 저는 유럽에서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하루라도 빨리 전기차에 전념하길 바란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 평범한 개인이 이런 공간에 남기는 의견을 관심 가질 리도 만무하고, 한편으로는 늘 발 빠르게 시장을 살펴 준비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알아서 잘 대처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 유럽에서 현대와 기아의 전기차 포지션은 나쁘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기아

 

하지만 그럼에도 제 눈에는 더뎌 보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전기차에 힘을 쏟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계속하게 됩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우선 현대자동차나 기아나 다른 곳은 몰라도 유럽에서 내연 기관 자동차 브랜드로는 이제 올라올 만큼 올라왔습니다. 다르게 얘기하자면 이 한국의 자동차 기업이 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 최대치가 현재 수준이라는 것이죠.

 

판매량을 지금보다 크게 올릴 만한 기대 요인이 잘 안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서 마진이 좋은, 그런 차를 판매하는 브랜드로 갑자기 만들 수도 없습니다. 연간 판매량 변동 폭이 크지 않고, 브랜드 이미지 조사에서도 엔진 자동차 회사로는 큰 성과를 이 이상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엔진 자동차 만드는 회사로는 유럽에서 이미지가 이미 고착화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은 지금 그 어느 지역보다 빠르게 전기차로 시장이 재편 중입니다. 제도를 통해 전기차 중심의 유럽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고, 유럽에 본사를 둔 자동차 회사들 또한 이런 정책에 맞춰 전기차에 전념하겠다고 이미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유럽 브랜드들이 전기차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하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전환 속도가 느립니다.

 

회사들 덩치도 크고, 내연기관 자동차에 오랜 세월 뿌리를 두고 있다 보니 막상 전기차 전환을 빠르게 가져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엔진 내성에 깊게 젖었다고나 할까요? 유럽인들 마인드도 변화보다는 전통을 이어가는 쪽으로 강하게 자리잡혀 있기 때문에 이런 지역 특성이 사업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현대자동차 그룹의 경우 전기차와 수소전기차에 노하우가 상당합니다. 수년 전부터 독일의 많은 언론이 현대차의 수소전기차와 그 기술력에 관심을 보여왔고,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현대차와 기아가 내놓는 전기차 또한 평가도 좋고 소비자의 반응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전의 엔진 자동차로 공을 들일 때와는 상황이 아주 많이 다릅니다.

유럽에서 평가와 판매 모두 긍적적인 아이오닉 5 / 사진=현대자동차

 

브랜드에 새로운 힘, 이미지, 가치를 부여하기에 좋은 시점이 지금입니다. 간단하게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최근 독일 자동차 매체 아우토차이퉁이 '아우토 트로피 일렉트로(Auto Trophy Elektro)라는 제목으로 전기차 관련 독자들 대상의 조사를 실시해 카테고리별 우승자를 발표했습니다.

 

전기 시티카 / 소형차 / 콤팩트카 부문, 전기 세단 부문, 5만 유로 이하 전기 SUV 부문, 5만 유로 이상 전기 SUV 부문, 전기 밴 부문, 가장 지속 가능한 브랜드 부문을 전체와 수입 브랜드로 나눠 총 12개의 결과를 공개했는데요.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 6가 전기 세단 수입 카테고리 부분에서 15.0%의 지지로 3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1위는 폴스타 2(22%)였고 2위는 테슬라 모델 3(15.1%)였습니다. 또 현대 아이오닉 5 5만 유로 이하 전기 SUV 카테고리에서 15%의 지지를 받아 2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1위인 폴크스바겐 ID.4(18%)와는 그리 큰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같은 카테고리에서 수입차 부분에서는 현대차 아이오닉(22%) 시리즈와 기아 EV6(8%)가 각각 2위와 3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지속 가능한 브랜드 부문 (수입 카테고리)에서 현대가 8%의 지지를 받아 쿠프라(11%)와 테슬라(10%)에 이어 3위에 올랐다는 게 인상적입니다.

사진=현대자동차

 

지금까지 현대차와 기아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가성비 브랜드로만 높은 순위를 주로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전기차는 다릅니다. 가성비 카테고리를 뛰어넘어 전기차 그 자체로 충분히 시장에 강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조사 결과가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죠.  좋은 전기차를 만드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로 새롭게 자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럽에 한 번 뿌리 내린 이미지, 그 인상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요. 지금이 그걸 할 수 있는 적기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염려할 부분은 작년부터 중국산 전기차가 유럽에 엄청나게 몰려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장은 가성비를 앞세우고 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싼 모델만 들여오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아주 작은 전기차부터 전기 밴까지 수입되는 전기차 종류도 다양합니다. 이런 중국산 전기차들이 유럽에 단단히 자리잡기 전에 현대와 기아는 브랜드 차별화와 함께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전기차에 대한 전략이 있어야겠습니다.

 

내연 기관에 대한 미련은 이제 유럽에서 버려야 합니다. 기존의 좋은 반응 받고 있는 아이오닉 시리즈와 EV6 EV9과 같은 모델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동시에 현지 전략형 모델들을 빠르게 전기차로 교체해 시장을 선점해야 합니다. 물론 수소전기차 분야에서도 토요타에 밀리지 않게끔 신경을 쓸 필요가 있습니다.

유럽 기준에서는 덩치카 상당히 큰 모델이지만 요즘 분위기로 봐서는 기대해도 좋을 만한 EV9 / 사진=기아

 

그리고 제네시스 또한 욕심을 버리고 전기차 럭셔리 브랜드로 빨리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GV60 같은 전기차 모델 종류를 늘리고 내연기관의 경우 SUV 모델 외엔 시장에서 빼도 문제 될 게 없다고 봅니다. 지금은 엔진 모델에 투자할 에너지와 자본을 제네시스 전기 모델에 몰아줄 때입니다.

 

판매량을 지탱해 주는 핵심 엔진 모델들은 최대한 이어가야겠지만 그 외의 모델은 과감하게 단종시키고 전기차 모델로 모두 바꾸는 결단이 필요해 보입니다. 유럽 시장 보고서 많이 받고 있겠지만 경영진도 페이퍼에만 의존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찾아 듣길 바랍니다. 유럽에 살면서 오랜 시간 유럽 자동차 시장을 지켜봐 온 이가 한국 기업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조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