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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헤드램프로 차를 훔친다? 갈수록 교묘해지는 자동차 절도

내 차가 도난당한다는 건 생각하기도 싫은 일입니다. 하지만 자동차를 노리는 절도범은 어디에나 있고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인다면 그 기회를 노릴 겁니다. 다만 보안 기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어 차 훔치기도 예전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하죠. 그런데 자동차 회사의 기술이 더 발달하고 복잡해질수록 이에 비례해 절도범들의 훔치는 기술도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해외 언론에 소개된 사건 하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런던에 사는 이안 타버 씨는 어느 날 자신의 자동차 토요타 라브4의 앞범퍼 일부가 찢긴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다시 얼마 후에는 헤드램프 주변 도장이 긁힌 것을 알게 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해드램프가 제대로 되어 있는 줄로만 알았을 겁니다.

 

하지만 사실은 이미 절도범들은 헤드램프를 차체에서 분리한 후였습니다. 그리고 그 경로를 통해 보안 장치를 무력화했습니다. 그러니까 단순 접촉 사고 흔적이 아니라 절도 흔적이었던 것이죠. 결국 이안 타버 씨의 차는 며칠 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는 자동차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보안 전문가입니다. 도난 후 그는 자신의 자동차 텔레매틱스(자동차와 인터넷을 연결해주는 통신 장치 서비스) 데이터를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어 장치에서 잘못된 메시지가 전송되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어둠의 통로인 다크넷 등에서 5천 유로 정도면 구할 수 있는 특수 장치를 이용해 방어막을 무력화한 겁니다.

 

기사에는 캔버스 인젝션이라는 표현이 있더군요. 여기서 말하는 CAN Bus는 호스트 컴퓨터 없이 자동차의 여러 ECU가 서로 통신하며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 (Controller Area Network) 시스템을 가리킵니다.  저도 이쪽에는 문외한이라 정확히 설명 어려우니 이해바라겠습니다. 보쉬가 1983년에 개발하기 시작했고 인텔이나 필립스 등도 칩과 제품 등을 개발했다고 하네요. 이 장치가 처음 자동차에 적용된 건 1992(벤츠 S-클래스,W140)이었습니다.

 

자동차 시스템의 뇌에 해당하는 ECU가 이 네트워크 시스템에 의해 제어도 하고 데이터를 주고받는데 여기에 기계적으로 몰래 개입해 잘못된 정보를 만들어 보안 상태를 해제시켜버린 겁니다. 이를 통해 안전한 도난 방지 시스템이라고 알려진 전자 이모빌라이저 등은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전자 이모빌라이저? 이건 또 뭘까요? 전자 이모빌라이저는 2천 년대 들어서며 유럽 등에서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자동차 보안 시스템 중 하나입니다.

해당 이미지는 사건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콘티넨탈

 

자동차 회사들은 차량 도난 방지 목적으로 스마트키에 고유한 암호를 부여했습니다. 그래서 이 암호가 없는 열쇠나 다른 장비로는 시동을 걸 수 없게끔 막은 건데요. 1994년 콘티넨탈이 개발했고 상당히 유용하다고 해서 유럽은 몇 년 전부터 모든 자동차에 의무 장착하도록 했습니다.

 

이 전자 이모빌라이저는 최근 미국에서 현대, 기아차 때문에 의도치 않게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팔리는 구형 양산형 자동차 상당수는 키박스를 뜯고 선을 연결한 후에 일자 드라이버 등을 꽂아 돌리면 차가 시동이 걸릴 수 있습니다. 흔히 영화 등에서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요즘 차에는 이게 잘 안 됩니다. 전자 이모빌라이저같은 장치 때문이죠.

하지만 미국에서 팔리는 많은 현대와 기아차는 이게 의무 장착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때문이었는지 틱톡에 절도 해시태그까지 등장하며 한국산 자동차가 대책 없이 털리고 말았고 주 정부 장관들이 모여 해법을 내놓으라고 성명을 내는 상황에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2년 사이에 나온 신차에는 거의 의무적으로 달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자 이모빌라이저만 있다면 차량 도난을 막을 수 있을까요? 앞서 소개한 이안 타버 씨의 경우가 바로 이 전자 이모빌라이저가 무력화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수백만 원짜리 불법 장치 하나로 2분 만에 차가 도난당할 수 있다는 것이죠. 독일 등에서는 최근 몇 년간 스마트키 주파수 증폭 장치로 차의 문을 쉽게 열고 시동이 쉽게 걸리는 문제로 계속 시끄러웠습니다. 자동차 단체와 언론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로 일부 브랜드들이 이 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기도 했는데요. 그런데 이번에 또 다른 형태의 절도 방법이 등장한 겁니다.

2인 1조로 움직이는 절도범들이 증폭기를 이용해 스마트키 소지자가 차와 떨어져 있어도 그 신호를 받아 차를 훔칠 수 있음을 독일 자동차 클럽 아데아체가 시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차에서 멀지 않은 카페 등 노출된 공간에 있을 때는 알루미늄 소재의 키커버나 깡통에 스마트키를 담아두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 사진=ADAC

 

이안 타버 씨의 자동차 도난 과정을 함께 추적한 또 다른 보안 전문가는 ECU 암호화 수준을 높이고 하드웨어적으로 도난을 방지하는 새로운 해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염려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자동차는 갈수록 전자적으로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자율주행의 시대가 오면 더 그렇게 되겠죠. 하지만 이런 복잡한 구조 속에 차를 만드는 사람들이 찾지 못하는 허 점 역시 더 많아질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약점을 이용해 차량 도난은 물론 계획된 사고까지도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이미 일부 화이트해커들은 이점을 계속 지적하고 있고 실제 차를 이용해 해킹이 가든하다는 것을 보여주기까지 했습니다. 비싸지는 자동차, 더 화려하고 고급스럽고 편안한 장치로 가득한 자동차만 생각할 게 아니라 소비자들도 더 보안에 철저한 자동차, 해킹에 잘 대응하는 그런 자동차가 나올 수 있도록 계속 관심을 갖고 제조사에 목소리를 높여 보안 문제의 선제적 대응을 요구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