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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독일인들이 2035년 내연기관 퇴출을 반대하는 이유

‘EU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유럽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중요한 한 축이자 많은 자동차 브랜드의 고향이 유럽이고, 또 유럽과 우리나라는 거리는 멀지만 자동차시장의 경우 밀접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관련해서 유럽에 법이 생기거나 바뀌면 우리나라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치기도 하죠.

 

지금까지의 과정 

EU 집행위와 유럽의회 27개 회원국으로 구성이 된 이사회는 지난한 협상 과정을 거쳐 2035년부터 신차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금지하는 법안 시행에 합의했습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오래전부터 외쳤던 유럽인지라 이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동차부터 방향을 잡지 않으면 안 됐죠. 유럽연합이 여기에 화답을 한 겁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일단 법안 시행에 합의를 했지만 EU 회원국들과 유럽의회의 최종 승인 절차가 남아 있었고, 이 승인 과정에서 최종단계로 나아가지 못한 채 현재 일시 멈춤상태가 됐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요? 가장 큰 이유는 회원국들 중 일부가 이 합의에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그리고 불가리아 등입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큰 목소리로 반대를 외친 건 독일이었습니다. 독일은 EU에서 큰 힘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 독일에서 버티고 있으니 진통은 클 수밖에요.

 

독일의 반대 이유는 간단합니다. e-연료, 그러니까 수소와 이산화탄소를 합성해 제조한 합성연료(e-fuel)도 이산화탄소 배출이 매우 적으니 판매 금지 항목에서 예외로 해달라고 주장 중입니다. 이 합성연료는 엔진 자동차 구조를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연료만 바꾸면 되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큰 이점이 있습니다. 물론 e-연료가 최종 목표는 아닙니다. 배터리나 수소 전기차로 가는 과정에서 경제적인 부담을 줄이며 연착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독일 등의 주장입니다.

사진=칼스루헤대학교

 

전기차 시대로의 급격한 전환으로 해고자가 늘고 산업 전반에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는데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그러면서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e-연료 찬성파의 목소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목소리가 특히 독일에서 강하게 나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포르쉐와 같은 독일 자동차 회사는 물론 보쉬 등 독일 부품 그룹은 이미 수년 전부터 e-연료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고, 현재 독일 일부 지역에서는 이 연료를 실제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최근 BMW 회장 또한 e-연료에 찬성의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기도 했죠. 독일 산업의 핵심인 자동차 업계 목소리를 정부가 외면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또한 현재 교통부장관인 폴커 비씽은 친기업 정당 소속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의 이런 저항(?)은 당연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반대하는 이유에 대한 추측

그런데 최근 독일 제1공영 방송인 ARD 한 정보 프로그램을 통해 독일인의 2/3, 67% 2035년부터 내연기관 판매 금지 합의에 반대한다는 설문 조사 결과가 소개됐습니다. 환경 문제에 있어서 독일은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이기 때문에 이런 정도의 높은 비율로 반대표가 나왔다는 것이 좀 의외였습니다. 심지어 가장 환경 정책에 진보적이라는 독일 녹색당 지지자들 내에서도 과반을 조금 넘는 수준만이 EU의 정책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두 가지로 이런 반대 분위기를 해석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일단 2035년까지 전기차로 일괄 전환한다는 것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지 않는 듯합니다. 과연 그때까지 전기차가 내연기관이 없는 자리를 별문제 없이 채울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죠. 또 하나는 실제로 많은 독일인이 합성연료가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환경적으로도,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말이죠.

 

여기서 말하는 경제성은 전기차 유지 비용과 전기차 구매 비용 등을 모두 고려한 표현입니다. 실제 유럽에서는 여전히 경차와 소형차 등이 많이 팔립니다. SUV도 작은 급이 판매 비중이 훨씬 높습니다. 구입 비용이 상대적으로 덜 부담되고 유지비도 그렇습니다. 초저가 브랜드라는 루마니아산 다치아의 경우 매년 놀라운 성장을 유럽에서 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싸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경제적 부분에 민감한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비싼 전기차로 일괄 전환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독일에서는 이런 염려의 목소리를 관련 기사 댓글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환경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국가 경제나 개인 경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 유럽의회에서도 투표 당시  반대표를 던진 수가 상당히 많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토록 외치는 e-연료에 대해 EU 차원에서 객관적 조사를 해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신뢰할 만한 위원회를 구성해 여기서 정말로 e-연료가 환경에 유의미한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큰 도움이 되는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를 기초로 최종 결정을 하는 것이죠. 과연 유럽은 타협점을 찾을까요? 또한 독일은 끝까지 e-연료를 밀어붙일 수 있을까요? 결과가 무척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