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중고차 딜러는 어떨까요? 자동차를 사고 판다는 큰 틀에서는 우리나라와 다를 게 없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조금 다른 면이 있습니다. 오늘은 시승과 관련해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한 중고차 딜러와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할까 합니다.
제가 이 인터뷰에서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은 중고차 사고 파는 것에 대한 TIP 같은 게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한국 분들에게 독일 중고차 구매 시 요령 같은 거 시시콜콜 알려드려 봐야 큰 의미도 없을 테고요. 그보다는 자동차에 대해, 자동차 문화에 대한 전반적 시각이 궁금했습니다.
차를 사고 파는 것이 직업인 사람의 시각에서 본 독일 차와 독일의 자동차 문화는 또 어떤 모습일까요? 사실 딜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 얼마나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줄까라는 의심을 안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막상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기대 이상의 좋은 이야기와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얻을 수 있었는데요. 프랑크 골드베르그(Frank Goldberg, 47) 라는 독일 중고차 딜러를 통해 본 독일의 또 다른 자동차 문화, 한 번 경험해 보시죠.
Q : 반갑습니다. 간단히 자기 소개 먼저 해주시겠어요?
A : 저는 작은 개인 중고차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자동차 세일즈 생활 23년이 넘었네요.
Q : 골드베르그 씨는 좀 특이한 딜러시죠?
A : 그런가요? 보시다시피 저는 BMW 한 브랜드의 자동차만 취급합니다. 인디비주얼 모델들을 주로 사고 팔고 있죠.
*인디비주얼 : 자동차 색상과 인테리어 등을 고객이 원하는 대로 맞춤 판매하는 방식.
Q : 특별히 BMW라는 자동차를, 그것도 일반적이지 않은 모델들을 판매하는 이유가 있나요?
A : 제 개인적이 이야기를 좀 해야 될 거 같은데요. 직업에 대한 고민을 17~18살쯤 본격적으로 했습니다. 그 당시 친구랑 같이 오래된 차 한 대를 구입했는데 그 때 만난 자동차 딜러가 일하는 걸 가만히 보니까 왠지 저랑 잘 맞을 거 같았어요. 그래서 이거다 싶어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에 아인첼한델(Einzelhandel) 관련한 아우스빌둥(Ausbildung) 신청을 했고 BMW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 아인첼한델 : 소매점. 고객에게 직접 물건을 파는 상점을 의미함
* 아우스빌둥 : 독일의 직업교육 시스템. 기업이 일정 수의 학생들을 선발해 실무교육을 시키고, 나머지 시간은 학교에 학생을 위탁해 이론 교육을 받게 한다. 3~4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고 자동차 정비에서 굴뚝 청소, 제과에서 미용까지, 수백 가지의 직업군에서 활용되고 있음.
Q : 그러니까 BMW에서 판매 교육부터 시작을 한 것이군요?
A : 그렇죠. 일단 합격 후에 군대를 다녀와야 했어요. (독일은 2011년부터 징병제가 폐지된 상태) 제대 후, 그러니까 1991년부터 주니어 세일즈맨으로 판매 업무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경쟁 차량들을 타보며 장단점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죠. 어쨌든 적성에 아주 잘 맞았습니다. (웃음) 그러다 1995년 스칸디나비아 여행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어요.
Q : 스칸디나비아 여행에서요?
A : 네, 1995년이었습니다. 여행 겸 자동차 세일즈 관련해 견문도 넓힐 겸 북유럽을 방문했는데 그 때 인터넷으로 자동차를 사고 파는 걸 봤어요. 와~ 이거 괜찮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죠. BMW 매장에서 세일즈 일을 하면서 시험삼아 인터넷으로 자동차를 사고 파는 걸 해봤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대히트였죠!
독일은 그 때 큰 매장 전시장에 차량을 깔아 놓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면서 파는 게 붐이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그렇게 해도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가격과 옵션 등의 차량이 없으면 차를 안 샀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은 물리적인 거리, 시간에 구속되지 않고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차를 찾을 수 있는 시스템 아니겠어요? 답은 명확해 보였어요. 그래서 그 후 BMW를 나와 인터넷을 통한 중고차 매매에 집중하게 됐습니다.
Q : 그러면 BMW만 딱히 판매하겠다 고집을 한 이유는 뭔가요?
A : 선택과 집중이라고 할까요? 제가 BMW에서 일을 배웠고 그쪽과 네트워크가 형성이 되어 있었어요. 그리고 BMW 판매량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었고요. 제가 잘 아는 차, 좋아하는 차를 집중해서 팔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거죠.
Q :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차를 사러 온다고 하셨는데 왜 굳이 독일까지 차를 사러 오나요?
A : EU에 속한 나라들끼리는 차를 사고 파는 것이 아주 간단합니다. 여권만 가지고 오면 되니까요. 199유로만 내면 차량 등록과 번호판, 보험까지 모두 딜러가 다 대행을 해주니까 고객은 그냥 키만 받아서 자기 나라로 돌아갈 수 있죠.
또 독일은 유럽 내에선 어쨌든 제일 큰 시장입니다. 물건이 많기도 하고, 워낙에 독일 사람들이 차를 좋아해서 (차에 미친사람들이라고 말했음) 좋은 옵션은 물론 관리도 상대적으로 훨씬 잘된 차들이 많은 편입니다. 그러니 가격 문제만 없다면 독일로 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Q : 전체 거래량 중 독일 외 비중은 얼마나 됩니까?
A : 30% 이상 될 거예요.
Q : BMW 전문 중고차 딜러시니까 BMW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도 잘 아시겠군요.
A : 어...단점은 없는데요? (웃음) 일단 장점이라면 시간이 지나도 멋스럽다는 겁니다. 10년이 넘은 차라도 오리지널 상태라면 여전히 매력적이죠. 옛날 차라고 해서 촌스럽거나 그러지 않아요. 또 BMW는 인디비주얼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도 즐거움입니다. 물론 드라이빙이 즐겁다는 것은 다 아실 테고요. 하지만 역시 새차 가격이 너무 비쌉니다. (그가 중고차 딜러라는 걸 잊지 마시라) BMW가 좋아 사고 싶어도 가격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Q : 그럼 본인이 좋아하는 BMW 차는 뭔가요?
A : 옛날 모델인데 저는 Z1이 저의 드림카예요. 지금도 그렇습니다.
BMW Z1. 사진= favscar.com
* BMW Z1 : 1989년부터 생산해 1991년까지 약 8천 대 가량 판매가 이뤄진 Z 시리즈의 원조. 특이하게 문이 아래로 내려가 열리는 구조를 하고 있음. (사진 속에선 Z1은 문이 열려 있는 상태) 독일 내에서도 구하기가 쉽지 않음.
Q : 그럼 본인이 타고 다니는 차는 뭔가요?
A : 전 BMW 640d 모델을 타고 있습니다.
Q : 고급스러운 쿠페 오너시네요. 돈을 많이 버셨나 봅니다. (웃음)
A : 저는 이 일이 여전히 즐겁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해요. 일이 짜증나거나 하기 싫은 적이 거의 없었어요. 어쩌면 저의 그런 태도가 경제적으로 여유를 얻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어요.
Q : BMW 말고 다른 관심 있는 브랜드는?
A : 포르쉐와 애스턴 마틴을 좋아해요. 두 메이커 모두 제대로 길을 가고 있다고 봅니다. 페라리 같은 경우는 이와는 반대인데요. 오너들께는 미안한 얘기지만 이 차에 대한 오래된 편견이 독일에 하나가 있어요. 홍등가에서 돈을 번(윤락업 관련) 사람들이 타는 차라는 그런 인식이죠. 또 페라리 몰고 아침에 빵을 사러 가는 건 이상한 일이지만 포르쉐를 타고 가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스포츠카가 갖는 일상성을 저는 좋아합니다. 애스턴 마틴 경우는 그런 걸 좀 뛰어넘는 무언가 가슴을 때리는 게 있어 좋아하고요.
Q : 아까 여행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했다.
A : 여행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같은 일을 매일 같이 반복하다 보면 집중력도 떨어지고 초심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여행은 휴식과 함께 나를 다시 초심으로 돌리는 역할을 해줍니다. 11월부터 1월까지 저는 그래서 일을 안 해요.
Q : 네?
A : 정말이에요. 1년에 짧게는 3개월, 많게는 4개월 동안 휴식을 취합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기간 동안 열심히 일을 합니다. (돈을 잘 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겠냐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Q : 좀 어려운 질문이 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독일 차의 경쟁력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A : 좋은 이미지가 구축되어 있어서 그게 더 큰 경쟁력을 만드는 거 같아요. 그리고 그 이미지라는 건 오래 전부터 쌓여왔고, 그건 결국 좋은 평판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년밖에 안된 프랑스 차를 팔고 10년된 BMW를 사겠다고 오는 고객이 제게 해준 이야기이기도 하죠. 저는 스위스 시계로 비유를 해보면 어떨까 해요. 더 저렴하고 스타일도 나쁘지 않은 시계들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스위스 시계를 사는 이유는 5~6년을 만족하려고 사는 게 아니라 평생을 만족하기 위해서죠.
Q : 그럼 한 가지 더, 아우토반이 독일 자동차 발전에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시나요?
A : 물론이죠. 속도의 제한이 없다는 건 모든 기술이 이 기준에 맞춰 발전을 해야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속도, 안전성, 제동력, 이산화탄소, 연비 모두 다, 결국은 스피드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어느 미국인이 저한테 차를 사러 와서 이런 얘길 한 적이 있어요. " 아우토반에서 검증받은 브랜드니까 난 믿고 삽니다." 라고요.
Q : 이런 아우토반의 속도를 제한한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A : 정치적으로 이걸 추진하긴 어려울 겁니다. 모든 것이 규제되어 있고 규칙 안에 있는 독일이지만 유일하게 한계가 없는 것이 딱 하나 있죠. 바로 아우토반의 무한질주예요. 유일한 자유, 마지막 자유라고나 할까요? (이 표현은 꼭 써달라고 했음) 그리고 이렇게 달리지만 사고율은 주변 어느 나라 고속도와 비교해도 높지 않은 수준입니다.
Q : 요즘 가장 핫한 주제는 아우토반에 통행세를 부과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A : 솔직히 독일인들은 다른 나라를 갈 때 다 통행료를 내지만 반대로 다른 나라 사람들은 독일로 올 때 비용이 들지 않죠. 아우토반 관리하는 비용도 천문학적인데 이게 결국 다 세금이잖아요? 그래서 저도 처음엔 통행세에 찬성을 했었어요. 그런데 지금음 생각이 다릅니다. 독일은 지정학적으로 유럽의 중심에 있어요. 이 곳을 통해 다른 곳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독일이 유럽연합의 회원국으로서 통행세에 관련해 좋은 롤 모델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더 큰 시각으로 보면 이게 독일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Q : 난 한국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 차에 대해 물어 보지 않을 수 없네요.현대와 기아차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A : 기아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지난 몇 년 간 상당한 발전을 이뤄왔죠. 특히 디자인의 경우 다른 메이커들에게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차들은 앞으로 더 유럽 시장에서 더 큰 영역을 차지할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 차를 직접 타 본 적은 아직 없네요.
Q :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일을 하다 보면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났을 텐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뭔가요?
A : 음...동유럽에서 온 고객이 있어요. 그는 갖고 있던 땅이 개발되면서 갑자기 돈이 많이 생긴 사람이었죠. 인터넷으로 제가 내놓은 차를 보고 맘에 든다면서 사러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가 무더운 여름이었는데 이 사람이 아주 창백하고 지친 몰골로 사무실로 들어서는 겁니다. 그러더니 잠시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고선 20분이 지나도 나오질 않더군요.
걱정이 돼 가봤더니 기절을 해 있었어요. 더위를 먹었던 거죠. 나중에 들은 얘기가 놀라왔어요. 이 양반이 차를 현금으로 사겠다고 했죠. 그런데 차 가격이 56,000유로(약 8100만 원)정도 됐어요. 그 돈을 막상 현금으로 찾고 보니까 걱정이 된 거죠. 그래서 아내 되는 분이 현금을 랩으로 감싸 남편 몸에 두른 겁니다. 하루 반을 여행용 버스를 타고 왔는데 에어콘이 고장이 난 차였어요. 화장실 가면 곤란하니까 물도 안 마셨고 하루 반 동안 돈 걱정 때문에 잠도 안 잤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안 쓰러지고 버티겠어요? 일단 제가 호텔을 잡아 주고 다음 날 건강을 확인한 후에 차를 팔았습니다.
Q : 세상에...무슨 차를 구입해 갔던가요?
A : 335 쿠페 인디비주얼 모델이었어요. 또 하나 잊혀지지 않는 손님은 남스페인에서 온 남자였는데요. X5 인디비주얼 모델이 맘에 든다면서 현금으로 사겠다고 독일로 왔어요. 그런데 타고 온 일본 SUV에서 보디가드로 보이는 남자가 내리더니 먼저 저에 대해 확인을 하는 거예요. 잠시 그렇게 시간을 보내더니 차 안에 신호를 보내더라고요.
실 구매자가 그 때 내리는데 몸무게가 150kg 정도는 되었을 거예요. 거구의 사내가 내리더니 10유로 20유로짜리를 트렁크에서 쏟아내는 겁니다. 이 돈을 은행에서 전부 확인하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차 안에 보디가드 같은 남자들이 세 명이나 더 있는 거예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해서 직업을 슬쩍 물어 봤죠. 그랬더니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 나와 함께 온 사람들은 사제들이고 난 신이 보낸 사람입니다. " 도대체 무슨 소린지 원...아무리 봐도 종교인 같지는 않았는데, 좀 특이한 정신세계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Q : 재밌는 세상이네요.
A : 재밌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한 일들이 많았어요.
Q : 제가 너무 오랜 시간 붙잡았네요. 마지막 질문은 제가 늘 묻는 걸로 하겠습니다. 당신에게 자동차는 무엇인가요?
A : 저에게 자동차는... 자유입니다.
Q : 자유라...혹시 아우토반에서...
A : (무슨 의미인지 알아 듣고는) 당연히 슈넬파러(빨리 운전하는 사람)죠! (웃음)
처음엔 '장사꾼이니 걸러 들어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인터뷰가 1시간 내내 즐거운 자동차에 대한 수다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차를 좋아하고 자기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죠. 앞으로도 이런 평범한 독일인들과의 인터뷰는 계속 될 겁니다. 물론 여러분이 즐겁게 읽어주신다면 말이죠. 좋은 한 주의 시작 되시길 바라며 오늘 내용 마치겠습니다.
아, 그리고 인터뷰 말미에 "중고차 살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건 흔히 얘기하는 허위 매물입니다. 사진과 실제 차량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서류 상 차량과 실제 차가 같은지 차대번호를 확인하는 등의 기본적인 사실 확인을 꼭 하세요." 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고 해줬습니다. 독일에서도 이런 경우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모양이더군요.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 비슷한 거 같죠?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셔서 인터뷰이의 홈페이지 주소를 알려드립니다. www.mgb24.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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