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SUV, 난 이래서 싫어요" 비판의 목소리들

 

 

최근 자동차 관련 소식 중 제 눈길을 끈 단신이 하나 있었습니다. 폴크스바겐이 지금의 브랜드가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자동차 비틀의 SUV 모델이 몇 년 후에 출시가 될 거라는 내용이었죠. 비틀의 SUV라... 선뜻 느낌이 오지 않는데요. 과연 어떻게 나올까 하는 궁금증도 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유럽에서만 판매가 되는 VW 그룹 내 브랜드인 스페인 세아트와 체코 스코다에서도 폴크스바겐 티구안을 베이스로한 콤팩트 SUV를 내놓을 계획을 이미 다 짜놓은 상태고요. BMW가 X7을, 아우디가 Q9 등을 또 내놓고, 최근엔 메르세데스 M클래스의 쿠페모델인 MLC 컨셉카를 선보이며 SUV 쿠페 시장에 발을 담글 것으로 보입니다.

 

메르세데스 MLC 컨셉카. 사진=netcarshow.com

 

이것 뿐만이 아니라 럭셔리 브랜드들도 SUV 시장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를 마친 상태죠. 재규어가 C-X17이란 컨셉카를 선보인 바 있고, 마세라티가 쿠방을, 벤틀리와 이태리 브랜드 알파 로메오까지 SUV를 내놓을 계획입니다. 이렇게 크고 화려한 SUV 뿐만 아니라 소형부터 경차급 SUV들도 속속 마련되고 있는데요. 한마디로 <SUV 전성시대>가 왔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중국에선 작년에 팔린 차의 20%가 SUV이고, 왜건과 해치백의 천국 유럽 역시 SUV는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독일도 2000년부터 계속 판매량이 증가하더니 2009년 이후부터는 급격하게 그래프가 하늘을 향하고 있더군요. 현재 독일에서 250만대의 SUV가 돌아다니고 있는데 매년 50만 대씩 늘어날 거라고 합니다. 가히 폭발적인 성장세입니다. 이는 주요 자동차 소비국들 대부분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라고 하는군요.

 

(그것이 알고싶다 어투로) 그런데 말입니다. 독일에서는 이런 SUV의 급성장세를 마냥 반기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독일에서 최대의 발행부수 (1주에 대략 80만부 발행)를 보이는 '아우토빌트'가 이런 SUV 대세론, 또는 긍정론에 제동을 거는 듯한 기사를 올려서 관심을 끌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4명의 독자가 왜 SUV에서 다른 차로 돌아섰는지를 다루고 있지만 잡지는 SUV가 과대평가 된 자동차가 아니냐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실은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더군요. 그러면 4명의 독자들이 SUV에서 어떤 차로 바꿨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간단하게 이야기를 해드리고, 그 다음에 아우토빌트가 말한 SUV의 성장 이유, 그리고 단점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독일이라는 나라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니까요. 그 점은 감안하고 읽으셨음 좋겠습니다.

 

<나의 새로운 생활에 SUV는 없다>

 

*게르노트 플릭크(44세) : "전 메르세데스 GLK를 구입했습니다. 그 이유는 캐나다에서 살 때의 기억 때문인데요. 그곳은 넓은 땅에 큰 차들이 선호됩니다. 독일로 돌아와 GLK를 타는데 일단 기름가격이 그 곳과는 다르고(비싸다는 의미겠죠?) 독일 북부(함부르크)의 강한 바람이 불어 차의 옆을 때리면 내 SUV는 불안해집니다. 커브 시 불편한 점도 있고 해서 지금은 E클래스로 바꾼 상태입니다."

 

*구이도텐 브링크(38세) : " 전 3년 동안 폴크스바겐 티구안을 끌고 다녔어요. 하지만 지금은 골프 왜건 모델을 탑니다. 일단 티구안은 지금 타는 차(티구안은 골프를 기초로 만들어진 SUV)에 비해 연비가 떨어집니다. 서스펜션도 딱딱하고요. 거기다 트렁크도 작죠."

 

"알렉산터 마르코프(23세) : "현대 (구형)투산을 탔었어요. 지금은 (구형) 파사트를 운전합니다. 일단 투산(가솔린)은 기름을 너무 많이 먹네요. 하지만 이 세단 디젤 (2.0 TDI)은 투산의 절반이면 됩니다."

 

*살리히 툰크(25세) : "포르쉐 카이엔에서 BMW 640i로 바꿨습니다. 사실 카이엔 탄 5년 동안 SUV로 도심이나 아우토반 이외의 레져용 길을 달린 게 세 번 정도 될까요? 그런 제게 SUV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네 명 모두 다양한 이유로 SUV에서 세단으로 갈아탄 상태입니다. 그리고 아우토빌트는 이들의 말 속에 SUV의 단점들이 담겨 있다고 했죠. 이 잡지가 말하는 SUV의 단점은 무엇일까요? 크게 4가지로 나눠 설명했는데, 과연 공감을 하실 수 있는 주장인지 한 번 잘 읽고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격 : SUV는 가격이 훨씬 (세단 동급에 비해) 비싸다. 덩치가 더 클 뿐만 아니라 더 무겁기 때문에 기름을  많이 소모한다. 특히 속도를 높여 달릴 때 세단에 비해 소비량은 더 증가하게 된다. SUV는 타이어 교체나 관리 비용도 더 든다. 보험사들은 SUV의 보험료 등급을 높여 놓고 있다. 사고 났을 때 상대 차량을 더 크게 망가뜨린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세금도 더 내야 한다.

 

가격의 부분은 이렇습니다. 우선 여긴 세단들도 디젤이 일반화 되어 있는 나라죠. 우리나라처럼 가솔린 중심으로 세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연료비 비교가 비교적 설득력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또 배기량 +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내는 독일에서는 당연히 SUV가 세금을 더 냅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승용차 보다 평균적으로 높으니까요.

 

저는 앞으로 우리나라도 이런 비교가 가능해지리라 봅니다. 세단에 디젤이 점점 더 많이 달려 나올 것이고, 환경 규제에 따른 이산화탄소 부담금 같은 게 어떤 형태로든 적용이 될 테니까요. 전 세계적인 추세인지라 이 흐름은 한국도 예외가 아닐 것으로 보이네요.

 

편안함 : SUV는 높은 지상고로 인해 타고 내릴 때 더 편한 것이 맞다. 또 앉았을 때도 안락함 느낌을 준다. 하지만 편안함의 측면에선 그것이 전부다. 서스펜션은 딱딱하고 많은 이들이 타는 왜건 보다 트렁크 높이가 높다.

 

성인을 기준으로 보면 타고 내리기는 SUV가 편한 것이 맞습니다. 의자가 더 편안한지는 잘 모르겠네요. 서스펜션은 차의 무게감 때문에 고급 서스를 쓰지 않는 이상 단단하게 세팅이 됩니다. 트렁크의 경우는 대형이 아닌 이상 콤팩트 SUV들은 생각 만큼 트렁크 공간이 크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티구안도 그 트렁크 좁은 것 때문에 구입을 못하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무거운 짐을 싣고 내리기엔 트렁크 높이가 높다는 건 여성이나 장년층 이상에겐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미쓰비시 아웃랜더. 사진=netcarshow.com

 

안전 : 사고가 났을 시 타고 있는 운전자에겐 좀 더 안전함을 줄지 몰라도, 크면 클수록 상대에겐 위협과 위험이 될 수 있다. 고속 주행에서의 안전성과 코너링에서의 안정감도 세단에 비해 떨어진다.

 

공감합니다. SUV가 이기적인 차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런 사이즈에서 오는 다른 차량이 느끼는 불편함, 그리고 사고 시의 위험도 때문인데요. 제조사들은 보행자 충돌 안전성 면에선 많이 보완을 해 설계를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다른 차량과 보행자에게 SUV는 조금 더 부담스러운 차량임엔 분명해 보입니다.

 

시야 : 높은 의자에 앉아 전방을 시원하게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창문과 차체 등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 부분은 의견이 분분할 거 같습니다. SUV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 이유 중 하나가 운전석에 앉았을 때 느끼는 개방감 때문이거든요. 하지만 아우토빌트는 A필러의 구조나 창문 등은 오히려 시야를 가리는 부분도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일부 SUV의 경우 뒷 창문이 아주 좁고, 지붕이 쿠페형태로 누워 있어서 SUV의 시인성의 장점이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 차들은 전후방에 360도 카메라까지 장착해 시야 확보의 어려움을 기술적으로 극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요즘 나온 혹은 나올 모델들은 지상고가 그리 높지 않게 설계되고 있습니다. 주행성능을 높이는 대신 개방감의 만족도를 줄인 것이죠. 다음 주에 소개해 드릴 메르세데스 GLA 같은 차는 A클래스를 베이스로 해서 만들어졌는데, A클래스 보다 고작 5센티미터밖에 높지가 않아 이를 과연 SUV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전방의 시야는 분명 좋지만 그 외 나머지에서는 그렇게 드러낼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거죠. 특히 이 잡지는 현재 SUV가 많이 팔리는 이유 중 하나로 제조사들의 마케팅을 꼽고 있습니다. 대당 이익이 큰 SUV가 많이 팔리는 것이 그들에게 돈이 되고, 그렇기에 어마어마한 비용을 광고 등에 쏟아 붓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 흐름에 동참하게끔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주요 이유로는 소비자들이 SUV가 자신을 드러내는 데 더 유용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오펠 모카( 한국으로 치면 트랙스가 되겠죠?)는 코르사 (소형 B세그먼트)를 베이스로 만들었지만 모카가 더 비싸고 무겁고 더 화려합니다. 그래서 더 고급스럽게 여기게 됩니다. 준중형 골프를 베이스로한 티구안도 마찬가지고, 프리미엄급인 베엠베나 아우디 등도 그렇습니다.

 

같은 급이라도 세단 보다는 SUV가 자신들 드러내는 것에 더 효과적이란 얘기죠.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과시용으로 SUV가 더 적합하다는 것입니다. 아우토빌트는 이를 '신분상승'이라는 표현을 써 일종의 돌직구를 날렸는데요. 자동차 잡지가 이렇게 SUV에 비판적일 수도 있구나 싶어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마세라티 쿠방. 사진=netcarshow.com

 

잡지는 '비록 요즘 트렌드가 SUV라고는 하지만 과연 이 무거운 차들이 언제까지 성공할지, 그 미래는 알 수 없다'고 끝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몇몇 모델을 제외하면 메이커들이 내놓은 SUV는 대체로 판매가 성공적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죠. SUV가 크게 망했다고 할 만한 게 그러고 보면 별로 많지 않은 거 같네요.

 

저는 SUV의 성공의 이유 중에 하나로 스타일도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큰 사이즈에, 압도하는 강한 힘을 느끼게 하면서 스타일까지 점점 갖춰가기 때문에 앞서 얘기한 소비자들의 '신분상승' 욕구와 맞물려 '시각적 만족감'을 높여 주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또 한국만 놓고 보면, SUV는 출퇴근용, 가족용, 레저용 등의 1차량 다용도의 의미로 사용이 된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유럽처럼 왜건이 활성화 안되었기에 이 점은 더 커보입니다. 아 물론 과시용으로 이용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죠.

 

안전이나 안락함, 탁 트인 개방감은 앞서 보여드린 것처럼 온전히 SUV만의 장점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이나믹한 드라이빙의 맛을 느끼기엔 SUV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많고, 좁은 골목 끌고 다니기도 상대적으로 불편하죠. 이렇듯 단점도 따지고 보면 많은 게 SUV입니다. 또 그 특징이 부풀려져 마케팅이 이용되는 측면도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SUV는 시장에서 그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고, 이런 상승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자동차 회사들은 새로운 SUV를 경차급에서 대형급까지, 쿠페형에서 럭셔리형까지 빠져나갈 틈 없게끔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안 사고는 못 버티게 그물망을 짜 놓은 느낌까지 줍니다. 자동차 회사들은 수많은 SUV를 내놓고 "이래도 안 살 거야?" 라며 우릴 유혹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SUV가 정말 나에게 맞는 자동차인지 한 번쯤은 냉철하게 따져보는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우린 스마트한 소비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