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는 유럽의 자동차공업협회(ACEA)의 자료를 인용해 자동차 회사들이 신연비 측정법 도임을 늦추기 위한 로비에 한창이라고 보도를 했습니다. 2017년에 유럽연합에서 새롭게 도입하려는 '국제통합자동차시험법(Worldwide Harmonized Light Vehicles Test Procedures , 이하 WLTP)'을 4년 정도 늦추려고 갖은 힘을 동원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왜 이런 로비 총력전을 기울이는 걸까요?
현재 유럽 연비 측정법 엉망!
사실 현재 유럽에서 사용되는 연비측정법 (NEDC)은 문제가 많습니다. 70년대 만들어진 것이니까 정말 오래 되었기도 하고, 그만큼 현실성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죠. 물론 부분적으로 개선을 하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실연비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달라진 게 없습니다.
몇 년 전부터 유럽의회는 이 문제를 개선하려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 만들어진 연비법을 유럽 전체에 맞춰 새롭게 바꾸는 게 쉬운 일이 아닌가 봅니다. 그러다 드디어 WLTP라는 이름의 신연비측정방법을 올 해 말까지 마무리를 지으려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죠. 얼마나 유럽의 연비 측정법이 문제가 있냐면요.
작년에 ICCT라는 비영리 단체가 유럽의 각 자동차 클럽과 여러 전문지 등에서 실시한 연비테스트 자료 50만개를 받아 조사를 해봤더니, 실연비와 공인연비와의 차이가 25%나 평균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독일 차 프랑스 차, 수입 차 할 것 없이 다 연비가 과장되었는 것이죠. 이렇게 과장된 연비는 년간으로 계산했을 때 차량 한 대당 제조사가 주장보다 약 45만 원 정도의 기름값을 더 내야 하는 수준이라고 하는군요.
에코모드로 주행 중인 BMW 320d의 계기판. 사진=스케치북
특히 현재 측정 방식에는 아주 웃지 못할 편법들이 동원이 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요. 구름 저항이 적게 타이어를 부풀린다든지, 아니면 보닛이나 헤드램프 등에 특수 윤활유를 바르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하는군요. 왜 윤활유를 바르는가? 공기저항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죠.
뿐만 아니라 배터리를 분리해 로딩이 안되게 하거나 실험실을 바람이 한 점 없는, 그러면서 온도가 아주 이상적인 상황을 만들어 어떻게 해서든 최적의 연비효율성을 끌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놀라운 건, 이 모든 희한하게 동원된 방법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는 합법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새로운 연비법은 이런 것들을 다 못하게 막고, 실연비에 가까운 조건들로 테스트를 진행하게끔 만들게 됩니다. 실제로 유럽의 연비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는 우리나라의 공인연비와 비교해 봐도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최근 연비와 유럽 복합연비로 측정된 BMW 320d 오토매틱 결과는 이렇게 차이가 납니다.
한국 : 리터당 18.5km
유럽 : 리터당 22.2km
한국의 연비도 여전히 불신을 받고 있는데 유럽의 경우는 더 현실이 반영이 안되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그나마 우리나라의 경우는 공인연비 보다 실연비가 더 잘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유럽 기준에선 같은 모델의 실연비가 공인연비 보다 잘 나올 수 없는 수준입니다. 이건 제가 몇몇 차들을 시승했을 때에도 경험했던 부분입니다.
발등에 불 떨어진 제조사들
그런데 이게 실연비로 바꾸면 당장 무슨 문제가 생기느냐? 일단 제조사들이 유럽이 내세우는 이산화탄소 평균 배출량 기준에 못미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연비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건 같은 거리를 더 많은 기름을 태워야지 갈 수 있는 것이고, 기름을 더 태운다는 건 그만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늘어난다는 걸 뜻하는 것이죠.
기존의 연비측정법으로 기준을 삼으면 통과될 수 있는데 신연비법으로 바뀌면 통과를 못하는 것입니다. 통과를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 벌금을 두들겨 맞는 거죠. 그것도 천문학적인 액수로 말입니다. 유럽연합은 내년부터 자동차 메이커가 내뱉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평균 130g/km에 맞추게끔 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부터( 이것도 로비로 1년 늦춘) 95g/km로 맞추게끔 됐습니다. 평균 95g을 넘기는 메이커들은 그 양만큼 벌금을 물어야 하는데 그게 만만치 않은 금액인 것이죠.
간단하게 얘기해서 현재 연비법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30g/km인 차량의 경우 신연비법을 적용하면 160g/km가 되니, 제조사들이 난리가 나지 않겠어요? 특히 2017년 기준에 맞추기 위해선 제조사들이 약 13조 3천억 원의 비용을 든다는 보고서까지 나온 상황입니다.
당장 독일부터 난리입니다. 독일 자동차협회의 수장인 마티아스 비즈만 같은 사람은 메르켈 총리에게 "기본적으로 유럽의회의 방향에 동의하지만 co2 목표치에 도달하기 쉽지 않습니다." 라는 글을 보내는 등, 전방위 로비를 펼치고 있습니다. 과연 메르켈이 이를 들어줄지는 미지수이지만 어쨌든 큰 차를 주로 만드는 독일 메이커들로서는 신연비법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거로 보입니다.
AVL에서 연비 측정 중인 아우디. 사진=spiegel.de
그 동안 잘 해먹지 뭐
자동차 회사들은 대체로 EU의 요구가 너무 무리라는 데에 뜻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연비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기괴한 방법을 동원해 왔고, 그것으로 소비자들에게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제공해 이익을 취한 것을 생각하면, 이들의 불만은 배부른 자들의 투정 정도로 밖에 안보이는군요.
물론 쉽지 않은 일은 맞습니다. 예전에도 소개해드렸지만 2020년 이산화탄소 기준 95g/km를 맞추려면 리터당 연비가 가솔린의 경우 24.39km, 디젤은 27.77km가 되어야 합니다. 현재 연비측정법 기준으로도 쉽지 않은 도달지점인데 연비측정법을 현실화하게 되면 더 힘들어지겠죠.
그러나 EU의 의지는 굳건해 보입니다. 메르켈까지 동원해 로비를 대대적으로 독일 차들이 펼쳤지만 2020년에서 2021년으로 이 기준을 1년 늦추는 것에 만족해야 했으니까요. 그리고 유럽의 다양한 전문가와 그 외 국가의 전문가들이 모여 만들고 있는 WLTP가 올해 말에 완성이 되면 이 역시 2017년에 적용하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장담은 못합니다. 로비에 의해 어떤 타협점이 마련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동안 너무 제조사들의 연비장난질(?)에 당해 왔다는 분위기가 소비자들 사이에서 팽배하기 때문에 과연 제조사들이 이런 여론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킬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유럽의 신연비법을 우리나라도 2017년에 적용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기 때문에 한국의 소비자들도 이 약속이 꼭 지켜지길 바래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아주 비판적으로 보자면, 그동안 자동차 회사들이 연비 좋은 차를 만드는 게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가 아니었다는 거죠. '어쩔 수 없이 규제에 대응을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라고도 볼 수 있겠다는 것이죠. 아무쪼록 유럽연합이 로비에 힘없이 넘어가지 말고 강하게 제조사들을 몰아가주길 바랍니다. 제조사 입장에서도 당장은 힘들겠지만 기술발전을 이뤄낼 수 있고, 더 친환경적인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사회적 책무를 다한다는 생각으로 (과연?) 받아들여줬음 좋겠네요.
요즘 글의 분위기가 좀 딱딱하죠? 내용들도 대체로 안전이나 어떤 시스템에 관련된 것들로 방향을 잡아서 쓰고 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런 글을 쓰는 것도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그래도 최대한 국가적인 슬픔을 해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소식 전하는 게 저의 작은 역할이 아닌가 싶네요. 그런 점 이해바라겠습니다.
추가 : 댓글을 보니 내용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있는 분들이 계신 거 같아서 덧붙이겠습니다.
한국의 공인연비로 측정된 유럽 차의 경우 한국 내에서 실연비가 공인연비 보다 더 잘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네, 이건 한국이 기준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측정된 공인연비, 혹은 실연비 수준의 유럽 차가
이 곳 유럽에서는 더 과장되게 표시되어 팔리고 있습니다.
그 차의 실제 연비효율 능력이 달라진 게 아니라, 그 차의 연비를 측정하는 방법이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인 겁니다.
이를 수정해 현실을 반영하고, 유럽의 고객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주겠다는 것이 내용의 주요 골자입니다.
특정 브랜드를 저격하려고, 사기를 치는 거라고 말하는 분들,
또 근거 제시하라는 등의 억지식 댓글을 다는 분들이 계셔서
부득이하게 추가로 설명 다시 드려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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