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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독일의 횡단보도 VS 한국의 횡단보도


당신의 횡단보도 이용은 어떠신지요?

오늘은 자동차 운전자의 입장에서 횡단보도 이용과, 보행자 입장에서 횡단보도 이용에 대한, 양자 입장에서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그 전에,  제가 독일에서 경험한 몇 가지 작은 에피소드부터 보시죠. 



독일 횡단보도에서의 추억 #1


독일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혼자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 상황이었죠. 저는 신호기 없는 횡단보도 앞에 섰습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갈고 닦은 능숙한 몸놀림으로 지나가는 차가 없는 틈을 이용, 재빨리 횡단을 할 생각이었죠. 그런데 상황이 너무 시시하게 끝나버리고 말았네요. 그냥 차들이 알아서 서더군요. '아~ 외국인에 대한 배려인가 보구나' 라고 생각을 한 저는 한국식(?)으로 오른 손을 살짝 들며 운전자에게 가벼운 목례와 함께 아이컨택을 시도했습니다. ' 나란 인간 참~ 매너도 좋지'... 하지만 뿌듯한 표정의 저와는 달리 운전자는 '쟤 뭐니?'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죠.


마침 길 건너 편에서 이런 저의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아내는 어이 없다는 듯 피식 웃더군요.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집사람에게 "아니 독일 사람들 너무 무뚝뚝한 거 아냐? 고맙다고 인사하는데 웃어주지는 못할 망정 말야" 라고 소심하게 툭 한 마디 던졌습니다. 그런 제게 아내는 말했습니다. " 아니 당연한 상황인데 자기가 눈웃음을 보내니 저 독일 아주머니가 이상하게 생각 안 하겠어? 여기선 횡단보도에 사람이 서 있으면 차는 무조건 서는 게 기본이야. 그냥 자연스러운 행위라고..." 


아우토반에서의 무한 질주 보다 개인적으로 독일에 와서 느낀 가장 큰 문화적 충격은 바로 이 대목이었습니다. 한국에선 당연히 늘 좌우를 살피고 또 살핀 후에 차가 없으면 뛰듯 건너갔던 곳이 횡단보도였는데, 여기서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죠. 이런 경험은 그 때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독일 횡단보도에서의 추억 #2


아마 이 이야기는 예전에도 한 번 드린 적이 있을 텐데요. 역시 독일 생활 초기 때 일입니다. 길을 걷던 저는 무언가 생각을 하느라 길에 멈춰 섰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게 됐죠. 쏴한 기분에 고개를 들었더니 공교롭게도 제가 횡단보도 건널목 쪽을 향해 서 있더군요. 보기에 따라선 길을 건너려는 사람으로, 또는 그냥 잠시 서 있는 사람 정도로 여겨지는 그런 모호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곳을 지나가려던 운전자들은 제가 길을 건널 것으로 판단을 했던 모양이에요. 모든 차들이 저 하나 때문에 다 서 있었습니다. '아~ 이거 도저히 길을 안 건널 수 없는 분위기네.' 이런 생각이 들자 마치 가려던 곳이 거기였다는 듯 태연하게 길을 건너 바로 앞 우체국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예전 누군가의 말처럼, 정말 사람냄새만 나면 자동차들이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섰던 것이죠. 꼭 그 장면은 어렸을 때 친구들과 했던 '얼음땡 놀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독일 횡단보도에서의 추억 #3


이번엔 제가 운전자의 입장에서 겪은 일인데요. 굳이 일이라고 표현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찰나 경험이었지만, 제게는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편도 1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었죠. 저녁에 맛있는 걸 해먹자며 아내와 이런 저런 수다를 떨며 운전을 하던 저는 횡단보도 앞을 지나게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이며 좌우 인도를 살피는데 그 순간 우측에서 한 여성이 걷던 탄력 그대로 횡단보도로 들어섰습니다.


한 번의 멈칫함도 없이 마치 인도를 따라 걷듯 그대로 차도를 횡단하더군요. 좌우에서 차들이 오고 있었음에도 단 한 번도 시선을 우리 쪽으로 돌리지 않았죠. 곁에 있던 아내 조차 "뭘 믿고 저렇게 길을 건널까?" 라고 말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너무 뻔뻔해서 얄미울 정도였지만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하면 얼마나 믿기에 저럴까? 하는 생각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 여성분 만큼은 아니지만 횡단보도 앞에서 많은 보행자들은 운전자의 눈치를 살피지 않았고, 운전자는 그런 보행자를 당연하다는 듯 보호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결국 우리는 운전자이며 보행자이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내 집 화장실 들어가듯 자유롭게 이용하는 태도가 모든 횡단보도에서 통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독일 횡단보도에서의 추억 #4


이번엔 꽤 복잡한 시내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왕복 4차선 차도의  횡단보도였고 그곳은 신호기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보행자 신호등은 아직 빨간불 상태. 하지만 양방향으로 차들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어요. 아무 생각 없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제 곁에 한 남자가 있었고 그 사람은  좌우를 몇 번이고 두리번거렸습니다. 딱 봐도 곧 튀어나갈 그런 모습이었죠. 그 사람은 차가 없는 걸 다시 확인하곤 첫 발을 떼려 했습니다. 그 순간 어디선가 깊은 울림의 단호한 소리가 들려 오더군요.

" 나인!(Nein)" 

"안돼!" 


나이 지긋하게 자신 독일 할아버지 한 분이 출발 자세의 그 남자를 멈춰 세웠습니다. "여기는 보행자 신호가 들어와야 건너는 횡단보도인 거 모르시오? 곧 신호가 바뀔 테니 급하더라도 참고 안전하게 신호 떨어지면 건너세요." 워낙 할아버지의 말씀이 단호해서 법원에서 최종 판결을 받은 듯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 그러해야 한다는 표정으로 그 남자를 바라 봤습니다.  결국 남자는 무단횡단을 포기했고, 보행자 신호가 들어오자 총알처럼 그곳을 벗어나 점이 되어 사라져갔습니다.




▶ 독일의 횡단보도



독일 횡단보도 모습. 우측 건물은 '칼 벤츠' 가 태어난 집. 사진=위키미디어


독일의 횡단보도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뉘는데요. 위 사진에 보이는 횡단보도는 우리나라의 횡단보도처럼 흰 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흰 줄이 그어져 있는 횡단보도는 보통 신호기가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노란색 원으로 표시한 저런 횡단보도 표지판이 설치돼 있습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에피소드 1~3번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독일 도로 풍경. 사진=스케치북


반면에 이 사진은 신호기가 있는 횡단보도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보시는 바와 같이 줄무늬는 없고 그냥 흰색 점선으로만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그 앞에 흰 실선은 정지선이죠. 보통 신호기가 있는 횡단보도엔 노란색의 버튼이 있어서 보행자는 그걸 누르고 신호를 기다리면 됩니다. 버튼이 없는 경우는 우리나라처럼 자동으로 바뀌게 되어 있죠.


철저하게 보행자가 횡단보도에서 그 권리를 보장받는 곳이 독일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보행자에게만 절대권을 주지도 않습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횡단보도 신호가 아직 빨간 불임에도 한 사람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습니다. 이런 보행자를 발견한 차량이 급정거를 했고, 아쉽게도 뒤 차가 추돌사고를 일으켰습니다. 이런 경우 보행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네, 보행자는 사고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독일 법은 보행자는 사고차량 운전자에게 자신의 연락처를 남겨야 합니다. 만야 그렇지 않고 그냥 자리를 뜨면 일종의 뺑소니처럼 위법 행위로 보고 처벌을 가하게 됩니다. 또 설령 차가 오지 않았다고 해도 신호를 무시하고 빨간불에 횡단하다 걸리면 벌금 5유로를 물어야 하죠. 혹 사고의 영향을 끼치는 행위로까지 연결되면 10유로의 벌금을 일단 내게 돼 있습니다.


횡단보도 아닌 곳에서도 비슷한데요. 명백한 보행자 실수로 인한 교통사고가 났다면 차량 운전자는 보행자에게 차량 수리비를 청구할 수 있고, 보행자의 병원 치료비 또한 심한 경우 물지 않아도 되도록 법이 마련돼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 교통법은 우선적으로 운전자는 보행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적시하고 있죠. 자동차는 자전거를, 자전거는 보행자를 보호해야 하는 건데요. 보행자> 자전거 > 자동차 순서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만약 운전자가 횡단보도에서 멈추지 않고 주행을 하다 보행자와 거의 사고가 날 뻔했습니다. 이런 경우 독일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사고가 안 났으니 그냥 욕 좀 신나게 먹고 넘어가면 되겠죠? 아닙니다. 사고가 나지 않고 사고가 날 뻔!!!했다고 하더라도 심한 경우 본인 월급의 한 달 반 치, 그리고 면허증 1년 정지라는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행자에 위협을 가하지 않았더라도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지나가면 벌금 80유로에 벌점을 4점이나 맞게 됩니다. 우회전 신호 혹은 직진 신호에 따라 우회전을 하다 횡단보도를 발견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본은 일단 멈춤이 맞습니다. 다만 건너는 보행자가 없다는 게 분명한 경우에는 지나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설령 건너려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횡단보도 주변에 사람이 서 있으면 서행 및 일단 멈춤을 해야 합니다. 아마 이 점은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겠죠.


그 외에도 굉장히 다양한 경우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횡단보도에 대한 이야기이니 만큼 다른 경우는 다음에 기회를 만들어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횡단보도 풍경은 어떻습니까?   




▶ 보행자, 운전자 모두가 조심해야 할 대한민국 횡단보도



서울 횡단보도 모습. 사진=스케치북


예전에 독일과 한국 정지선 관련한 포스팅에서 보여드렸던 사진인데요. 정지선 이야기는 이미 몇 차례 했으니 여기선 제외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도로폭이 넓다는 게 우리나라 횡단보도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보행자가 많은 곳에서 자전거는 물론 오토바이까지 제 길인 냥 이용하고 있죠. 


그런데 원칙적으로 자전거 운전자는 횡단보도를 이용할 때 타고 건너선 안됩니다. 내려서 끌고 가야 하는데요. 만약 저렇게 사진처럼 타고 가다가 사람을 다치게 하면 '차대 사람' 사고로 처리되게 됩니다. 자동차 사고처럼 시비를 따지게 된다는 것이죠. 그만큼 책임이 무거워지게 됩니다. 물론 오토바이의 횡단보도를 이용은 말도 안되는 것이고요. 그런데 이런 자전거의 불법적 횡단보도 이용은 독일도 의외로 많은 편이에요. 법규 잘 지키는 편인 독일에서도 이 부분은 좀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자전거 운전자의 횡단보도 올바른 이용법을 소개하고 있는 독일 매거진. 사진=rp-online.de


그런데 우리나라 역시 보행자 보호가 우선이지만 횡단보도라고 해서 모든 보행자가 보호를 100% 받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보행신호등이 점멸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행자가 건너다 사고가 나면 보행자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을 묻게 됩니다. 독일은 신호가 바뀌었음에도 보행자가 느리게 건너면 벌금을 물게 해 놓았는데요. 어쨌거나 신호가 있는 곳에선 보행자들은 신호를 따르면 되고,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에선 운전자들이 보행자를 철저히 보호해야 합니다. 이 기본을 이해하고 있는 게 가장 중요해 보입니다.




▶ 보행자, 운전자 모두 책임감 가졌으면...


이런 얘기 나오면 또 "우리는 이래서 안돼, 우리 수준 걱정입니다." 이런 말씀들 많이 하십니다. 물론 정말 무매너 운전자들 문제죠. 또 개념 없는 보행자들도 문제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우리의 교통문화 수준, 운전자 의식, 보행자 의식만 탓하지 말고 철저한 교육을 국가가 나서서 해달라 요구를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국가에 있죠. 그리고 자동차와 보행자라는 관계는 우리의 일상의 모습입니다. 안전한 일상이 되기 위해선 국가가 이를 제도를 통해 보호하려는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교육해야겠죠. 


특히 면허학원 등에서 이런 기본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독일에서 면허 취득 시 횡단보도 관련한 부분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철저히 교육이 된 상태에서 길거리에 나오기 때문에 문제를 그나마 최소화 할 수 있는 것이죠. 교통안전공단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보행자 사고가 인구 10만 명 기준으로 4.3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일본 1.6명, 미국 1.4명, 영국 0.7명, 그리고 독일이 0.6명인 것에 비하면 어마무시한 숫자가 아닐 수 없는데요.


이걸 해결하는 게 운전자의 의식으로만 이뤄지지는 않을 거란 얘깁니다. 교통표지판만 정비해도 (좀 더 크게), 그리고 이를 철저하게 교육하고, 운전자들은 교통표지판 철저하게 확인하고 운전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횡단보도에서의 사고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보행자도 마찬가지예요. 보통 횡단보도 건널 때 어떻게 건너시죠?  우측 끝에서 대각으로 건너가는 게 좋습니다.



독일의 횡단보도. 사진=위키미디어


또 요즘 갈수록 스마트폰을 쳐다 보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데요. 미국에서 조사는 약 15%, 우리나라는 약 19% 정도의 횡단보도 보행자가 보행 시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려(?) 있다고 하는군요. 신호등이 있다고 해서 그거 믿고 건너는 건 좋지만,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순간 만큼은 길 건너는 것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또 건널목에서 계실 때 너무 차도 쪽으로 가깝게 다가와 서 계시지 말고 한 두 말 떨어져서 신호를 기다리셨으면 합니다. 신호가 바뀌었다고 먼저 건너지 말고, 한 2~3초 정도 늦게, 좌우 확인 후에 출발하는 것도 안전한 횡단보도 이용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앞서 독일에서의 몇 가지 경험 사례를 들었습니다만, 우리도 횡단보도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할 때가 됐습니다. 정말 사람냄새만 나면 멈춰 서거나 속도를 최소로 줄이는 그런 습관이 몸에 베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습관이 생활화, 문화로 자리잡기 위해서 관련한 교육에 좀 더 많은 투자와 시간을 할애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더 안전한 도로가 되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최대한 고민하고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말로만 안전 대한민국 이야기 하지 말고 실제로 의지를 갖고 정부가 노력을 해주길 바랍니다.


여러분 다른 거 다 떠나서, 다 잊더라도 말이죠.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들이 달리는 차들 눈치 보며 건너는 일만큼은 없도록 신경을 좀 써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여름에 한국 방문에서 변화된 횡단보도 풍경을 직접 경험해 보고 기쁜 마음으로 그 감상을 이곳에 남길 수 있기를 바랄게요. 우리의 교통문화를 읽는 바로미터, 저는 횡단보도 풍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