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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독일인들은 왜 고속버스에 박수를 보낼까?


독일이란 나라를 얘기할 때 한 가지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이, 이 도로망 잘 갖춰진 나라에 왜 고속버스가 없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관광버스 등은 잘 발달이 되어 있지만 우리 식의 고속버스가 없다는 건 큰 아쉬움이었죠.


그래서 비행기를 제외하면 기차가 유일한 여객 운송 수단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독일 도시의 심장은 늘 기차역 차지였죠. 그런데 2013년부터 독일에 고속버스가 다니기 시작하면서 기차의 독점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그리고 1년 만에 8백만 명의 독일인들이 고속버스를 이용했고, 앞으로 이 비율은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경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죠.



독일의 고속버스. 사진제공=berlinlinienbus.de




▶왜 그 동안 고속버스가 없었나?


독일은 오래 전부터 자국 내 운용을 목적으로 하는 여객 버스를 금지시키고 있었습니다. 1930년대에 만들어진 법이 그 근거인데요. 왜 그런 법이 만들어졌는지  배경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껏해야 여행사나 도이체 반의 자회사가 운영하는 정도만 법으로 허용을 하고 있는 게 다였습니다. 그나마 주변국까지 간다는 조건 하에 운행하는 버스였죠.


그러니 비행기를 이용하기 어려운 승객, 애매한 거리를 가야 하는 고객들은 고민할 것도 없이 기차를 타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철도 하나가 실질적으로 독일 전역을 연결하는 발 역할을 하다 보니 이게 독점 사업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가격도 비싸고 서비스도 고객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불만이 끊임없이 제기가 되었죠. 메르켈 총리가 있는 정부 여당은 장거리용 버스를 도입하고 싶어했지만 일부 정당들은 반대 입장을 보였습니다. 철도 노조원들의 반발을 고려한 대응이었고, 녹색당과 같은 곳은 이산화탄소 배출 등 환경 오염 문제로 반대를 했습니다. 다들 나름 명분이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독점 사업자에 대한 독일인들의 불만은 이런 명분들을 뛰어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결국 2012년에 수십 년 동안 철도가 지배하고 있던 여객 수송법을 개정하면서 고속버스의 등장이 가능하게 되었죠.



정거장을 나서고 있는 고속버스. 사진제공=flixbus.de




▶저렴한 가격으로 독일인들의 마음을 훔치다


일단 고속버스 사업을 할 수 있게 되자 여러 업체들이 생겨났습니다. 심지어 도이체 반 (독일 철도) 조차도 자회사를 통해 고속버스 사업에 뛰어 들었고, 최근엔 자체 전용 정류장을 노선이 있는 곳 마다 세우려 하고 있습니다. 맨 위에 있는 회사가 독일 철도의 자회사가 운영하는 고속버스인데요. 뿐만 아니라 독일 운전자 클럽 아데아체(ADAC)도 포스트 부스라는 이름의 고속버스를 만들어 현재 운행 중에 있습니다.


가장 화제가 된 업체는 알디라는 유통업체 (수퍼마켓 브랜드)가 운용하는 알디고속버스인데요.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를 보고 있습니다. 이처럼 여러 업체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데, 이유는 당연히 수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비싼 기차 외엔 선택할 게 없던 독일인들에게 저렴한 고속버스는 매력적인 대체자가 되어주었습니다. 가격을 비교해 보면 답이 금새 나오는데요. 


베를린-함부르크 구간 

특급열차 ICE 편도 요금 : 78유로

일반열차 편도 요금 : 35유로

신설된 고속버스 요금 : 15유로


물론 가격이 비싼 순서대로 빨리 도착을 합니다. 하지만 굳이 빠른 도착이 필요치 않는 승객들,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 승객들에겐 고속버스는 매력적인 수단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거기다 버스들이 상당히 고급스러운데요. 비교적 짧은 거리를 달리는 경우는 1층이고, 좀 먼 거리를 달리는 경우는 2층 버스가 노선에 들어가는데 새 버스라서 깨끗합니다. 뿐만 아니라 고속버스 안에 화장실이 있어서 걱정 없이 멀리까지 갈 수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고속버스는 가볍게 커피나 스낵 등을 사먹을 수 있도록 해놓고 있다고 하는군요.



아데아체가 운영하는 포스트부스. 사진제공=adac.de


휠체어도 싣고 갈 수 있음. 사진제공=adac.de



화장실이 비행기 수준. 사진제공=adac.de

 

거기다 기차의 경우 1등석 2등석 등으로 나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무선인터넷의 사용료를 별도로 받는데, 고속버스는 무선 인터넷을 대부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해놓고 있습니다.



wifi를 이용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flixbus.de


무선 인터넷을 홍보하고 있는 모습. 보기는 좋은데 안전벨트를 안하고 있는 모습은 잘못 돼 있네요. 사진제공=berlinlinienbus.de


하지만 독일의 인터넷 사정이 우리와 비교할 수준이 아닌지라 아직 위의 홍보용 사진들처럼 언제나 자유롭게 무선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잘 터지면 고마운 거고 아니면 할 수 없는 그런 수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도 무료라는 점은 젊은 고객들에겐 매력적일 수밖에 없죠.



▶고속버스 성공 예감! 

   결국 경쟁이 답이다


처음 고속버스가 등장한다고 했을 때 수십 년 독점 사업을 펼치던 독일 철도는 그 영향력이 매우 작을 것이라 내다봤습니다. 변화를 싫어하는 독일인들의 특성 상 쾌적하고 빠른 기차를 대부분 이용할 것이라고 판단을 한 것이죠.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고속버스가 선전을 계속해서 펼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개선되지 않는 서비스와 비싼 가격, 가끔씩 이유도 모르고 연착하는 기차를 기다려야 하는 지루함 등은 아무리 독일인들이라도 참기가 힘들었던 모양이에요.


올해는 지상 여객 이용객들의 10% 정도가 고속버스를 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점유율은 버스 사업자들의 서비스 정도에 따라 더 늘어날 것입니다. 가격적인 면에서는 분명한 이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독일 철도의 독점적 지위에 불만이 많기 때문에 반사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독일 철도도 고속버스 사업에 뛰어들었고, 일부 지역에선 저렴한 가격대의 기차 요금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꿈쩍도 않던 독일 철도가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입니다.


건강한 경쟁은 고객에게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받은 고객들은 그리로 몰려들게 되어 있고, 고객들을 잡기 위해 사업자들은 더 좋은 상품과 서비스, 기술 개발 등을 하게 되며 사업의 질을 높이며 더 단단해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경쟁이 필요한 이유인 것이죠. 독일의 고속버스 얘기였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어 보입니다. 기회가 되면 저도 한 번 이용해 봐야겠네요. 독일의 고속버스 이야기였습니다.


 

아데아체 포스트부스. 사진제공=adac.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