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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택시기사의 안전 발명품과 현실의 벽


며칠 전 독일의 연방법원에서 내려진 판결 하나가 이곳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어느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하는 중이었는데, 자전거를 발견하지 못한 운전자가 연 자동차 문에 자전거가 순간 부딛힌 겁니다. 자전거를 타던 여성은 부상을 당했죠.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보험회사에서는 그녀에게 지불할 보험금을 다 내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녀가 헬멧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해서 자전거 운전자의 책임이 일정 부분 있다는 그런 주장을 펼친 건데요. 판결은 어떻게 났을까요?


보험회사가 패했습니다. 헬멧을 쓰지 않았은 잘못은 있지만 자전거에 대해 주의를 소홀히 한 운전자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죠. 예전에도 말씀을 드린 바 있지만 독일의 교통법 등을 보면 약자 보호에 굉장히 큰 의미를 두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이 내용으로 갑론을박 많은 의견들이 있었는데요. 이 사건을 지켜보던 한 터키계로 보이는 택시기사는 "애초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건이 이렇게 시끄럽다." 고 불만을 표했습니다. 이 택시 기사님은 뉘시기에 이런 말을 한 걸까요?



독일에서 택시 기사로 일하고 있는 줄피카르 셀릭 씨의 모습. 사진=welt.de


독일 일간지 디벨트는 45세의 택시기사 셀릭 씨에 대해 자세히 소개를 했습니다. 자동차 회사들이 자전거와 자동차의 충돌 사고를 지금보다 훨씬 더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있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있다는 그런 내용이었는데요.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죠. 일단 아래 사진을 봐주세요.




메르세데스 A클래스 시승 때 찍은 사진 중 하나입니다. 퀴즈! 문짝 하단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는 저 건 뭘까요? 아는 분들도 계실 테고,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정답은 자전거나 이륜차 등에 차 문이 열려 있음을 알려주는 경고 표시입니다. 




이건 현대 i40 시승 때 찍은 사진인데, 역시 붉은 표시가 보이시죠? 그렇다면 모든 차에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자동차 뒷문에는 아예 저 표시가 없고 앞 문에도 없는 자동차들도 있습니다. 




BMW X5 운전석 도어 안 쪽의 모습. 자전거 운전자를 위한 경고 표시가 보이지 않는다. 사진=netcarshow.com


위에 사진은 폴크스바겐 폴로 뒷문 안쪽을 찍은 것이고, 아래는 BMW가 내놓은 고급 SUV X5 신형의 앞 문짝 모습입니다. BMW의 경우는 제가 직접 확인한 모델들만 해도 X1, 1시리즈, 3시리즈 등이었는데, 저 표시가 없었습니다. 다른 경고 장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종의 원가 절감의 흔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쨌든 제조사들이 만든 저 경고 표시가 있긴 합니다만, 셀릭 씨는 그닥 효과적이지 않다고 보고 직접 아이디어를 내게 됩니다. 차 문을 열 때 자동으로 깜빡이 등이 점등되는 시스템을 고안해 특허까지 낸 것이죠. 특히 뒷문을 벌컥 열고 닫는 아이들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장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실제로 셀릭 씨는 이 시스템을 제조사들이 만드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요. 하지만 막상 자동차 회사들은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평하면서도 이 기술을 사들이거나 협력해 개발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며 디 벨트지는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셀릭 씨가 정부에 의견을 내보고, 제조사에도 손을 내밀어 봤지만 자동차 회사들은 정부가 나서야 하는 일이라고 하고, 정부는 제조사들이 선택해야 할 문제라며 서로에게 떠밀고 있는 상황인 것이죠.


택시 운전을 하며 여러 사건을 목격하고, 그래서 더 안전한 도로를 만들겠다며 나름 의지를 갖고 자비를 들여 좋은 아이템을 개발했지만, 과연 이것이 적용될 수 있을지 현재로선 미지수인데요. 그나마 독일의 칼스루헤 공대의 한 교수가 셀릭 씨의 기술을 적극 지지하고 나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정부나 제조사에게 이 기능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설득하기 위한 자료를 쌓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조명 기술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그 교수에 따르면, 테스트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1년 정도의 시간과 최소 2대에서 4대 정도의 자동차가 필요한데, 그걸 위해선 우리 돈으로 약 1억 4천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합니다. 독일 교수들은 공무원 개념이라 정부가 지원을 하면 바로 실행을 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정부 역시 적극적으로 나설 분위기가 아닌 것으로 보이네요.


 셀릭 씨가 특허료를 무리하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충분히 실험을 통해 효용성을 점검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이런 경우 나서는 것이 옳지 않나 싶습니다. 자동차 회사들은 늘 정부의 정책, 규제, 법규에 따라 움직이는 최소한의 능동성만 발휘할 뿐이죠. 그러니 거기에 뭔가 기대하기 보다는 국민의 안전을 우선 고려하는 정부의 역할이 필요해 보입니다. 언론을 통해 공론화 되었으니 과연 어떤 가능성 있는 변화가 일어날지, 한 번 기대를 갖고 지켜보고자 합니다. 



셀릭 씨의 모습. 사진=welt.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