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여자의 자동차와 남자의 자동차, 뭐가 다를까?



자동차는 남자들의 장난감이란 말이 있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의 대부분도 남성들일 겁니다. 차에 대한 관심, 그리고 정보를 얻고자 하는 열의(?)도 월등히 높죠. 어떤 사내들에게 자동차는 평생의 로망이기도 하고, 어떤 남자에게 자동차는 신분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이 됩니다. 또 달리는 그 즐거움에 푹 빠져 자동차를 사랑하는 이들도 있고, 갖가지 하이테크에 매료돼 자동차를 탐구하는 남정네들도 많습니다.


물론 모든 남자가 차를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또 반대로 모든 여성분들이 자동차에 관심을 안 갖는 것도 아니겠죠. 사실 은근히 자동차는 여성들과 인연이 깊은 물건이기도 합니다. 칼 벤츠가 차 만들어 놓고 시름에 빠져 있을 때 그의 아네 베르타 벤츠는 두 아들을 데리고 106km의 거리를 용감히 달려갔고, 칼 벤츠의 자동차를 정식으로 구매한 첫 번째 고객도 에밀 로제라는 프랑스 여성이었죠.


당대 최고의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도 란치아 등 여러 자동차를 애용했고, 백 년 전 자동차 레이싱팀에는 남자 뿐 아니라 여성 멤버들도 여럿 포함돼 있었습니다. 폴크스바겐 그룹을 이끌고 있으며 살아 있는 독일 차의 전설로 불리는 '페르디난트 피에히'도 어머니 루이제 피에히의 강인한 사업가적 마인드를 물려 받았죠. 그녀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포르쉐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여성들을 위한 자동차 랠리가 이미 1897년에 프랑스에서 생겼을 정도로 자동차는 여러 면에서 여성들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분에서 자동차에 대한 기술과 산업, 그리고 문화로써 주도권은 남성들의 차지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져 오고 있죠. 



1927년 여성 운전자 모습. 차량은 라살 로드스터. 사진=favscar.com


 


여자와 남자, 자동차를 선택하는 기준이 다르다?


남편이 일하러 나가면 아내가 육아와 가사를 담당하는 것이 가정의 전통적 모습입니다. 지금도 이 기본 형태는 지속되고 있는데요. 하지만 여성들이 직업을 갖는 등, 사회 활동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자동차를 소비하는 여성의 숫자 또한 늘었습니다. 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도로 위에서 여성 운전자를 보기란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여성 운전자 없는 도로를 찾기가 더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일반화 된 거예요.


그런데 재밌는 것은, 여성과 남성의 자동차를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선택의 기준, 이용의 패턴 등이 남자와 여자의 '다름' 만큼이나 차이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독일의 여성 전문 자동차 잡지 카아미아(caramia.de)에서 이와 관련해 남자와 여자의 차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전문가의 입을 통해 전했는데요. 거기에 몇 가지 재밌는 비교 수치들도 보여 주면서 재미나게 기사를 구성해서 여러분들께도 소개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트로엥 DS3 카브리오. 사진=netcarshow.com




여성 운전자 수 VS 남성 운전자 수


독일은 통계적으로 33.1%의 여성 운전자들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하는데요. 이유는 차량 등록 시 남편 명의로 하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부모의 도움을 받거나, 아니면 결혼 후 남편의 이름으로 차를 사는 여성들이 독일에도 제법 된다는 얘기겠죠. 그냥 제가 피부로 느끼는 여성 운전자의 숫자도 33%는 훨씬 넘어 보였어요. 어쨌든 이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여성 VS 남성의 차량 구입 비용


독일 여성의 새 차 구매 평균 비용 : 19,700유로 (환율 1420원 기준으로 약 2790만 원)

       남성의 새 차 구매 평균 비용 : 31,520유로 ( 약 4470만 원)


독일 여성의 중고차 구매 평균 비용 : 7,470유로 (약 1,000만 원)

       남성의 중고차 구매 평균 비용 : 11,480유로 (약 1630만 원)


중고차와 신차의 구매 금액 차이가 좀 나죠? 어쨌든 중고 자동차가 됐든 새 차가 됐든, 여성이 남성 보다 더 적었습니다. 평균 소득의 차이도 있을 것이고 또 여성들이 선택하는 차의 사이즈, 그리고 옵션 등의 차이 등이 반영이 된 편차가 아닐까 싶네요. 실제로 준대형급의 큰 차를 소유한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7:3 정도가 된다고 한 조사에서 밝힌 바가 있습니다.


여성들 중에도 차를 좋아해 관심이 많고, 자동차에 투자를 많이 하는 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이런 쪽에선 남자들이 훨씬 더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작은 차를 선호하는 여성과 남성의 비율 결과를 보면 좀 더 이해가 빠를 거 같습니다. 여성들의 59.1%가 자신들이 원하는 자동차로 소형급을 선택했고, 남성 비율은 28.6%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남자들이 여자 보다 확실히 큰 차를 더 선호한다고 봐야겠죠. 그렇다면 왜 이럴까요?


도리스 코리투스 슐테스라는 교수는 남성들이 자동차를 자신의 신분을 상징하는 대상으로 보는데 반해 여성들은 하나의 생활의 도구로 보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았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여자의 경우 차는 그냥 달리기만 하면 되는 물건 정도로 본다는 것이죠. 하지만 남자들은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의미들을 자동차에 부여하고 있습니다. 어떠세요, 이 의견에 동의하십니까?


스코다 경차급 모델 시티고. 여성들의 73.3%가 각진 차 보다는 둥근 라인의 자동차를 더 선호한다고. 사진=netcarshow.com




여자들이 차를 살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


카아미아가 공개한 여성들의 차량 선택 기준을 보면 위에 주장에 어느 정도 힘이 실릴 거 같은데요. 우선 연비가 중요해 보입니다. 실제로 조사를 해봤더니 연비효율성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남자가 94%인 반면 여성들은 그 보다 조금 더 많은 97%가 중요하다고 답했습니다. 또 옵션에 대한 관심도 여성이 남성에 비해 적었는데요. 자동차에 달린 다양한 첨단 기술에 대한 관심도는 남녀별로 얼마나 됐을까요?


<자동차 하이테크에 대한 관심도>

남자 : 57%

여자 : 35%


요즘 차에 달리는 다양한 첨단 기술, 무선통신 기술을 이용한 멀티미디어 기능 등에 여성들은 남자들 만큼 관심이 높지 않다는 겁니다. 반면에 짐을 싣고 내리기 편한지, 수납 공간은 얼마나 잘 되어 있고 많은지, 안전한 자동차인지 등, 일상적이고 실용적인 내용에 관심이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남자들이 시트가 알칸타라냐 아니면 직물이냐 따질 때 여성들은 시트의 색상이 무엇이냐에 더 관심이 높다는 거죠. 차량의 색상과 실내 소재에 대한 관심도에서도 이를 증명해 줍니다.


<색상과 소재에 대한 관심도>

남자 : 57.1%

여자 : 64.8%


오펠 메리바. 사진=netcarshow.com




남자에게 차는? VS 여자에게 차는?


위에 내용들만 보면 여성들이 좀 더 실용적인 선택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 아내를 비롯 주변의 여성 운전자들 대다수가 비슷합니다. 하지만 그 외 다른 이유에서도 차 선택에서 남녀 차이를 만듭니다. 여전히 남편이 돈을 벌러 나가고 아내는 아이들을 돌보거나 집안 일을 챙기는 것이 기본인 가정이 많이 있는데요. 이런 경우 남자는 출퇴근을 위해 자동차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출퇴근 거리 또한 여성 직장인들의 출퇴근 거리 보다 더 길다고 합니다. 또 자동차를 이용해 영업을 한다든지 하는 활용량에서도 남성들이 여성들 보다 많다고 하는군요.


반면에 아내들의 경우는 차를 어떻게 이용할까요? 주로 근거리 중심으로 사용을 합니다. 아이들을 학교나 유치원에 보낼 경우, 또는 시장을 갈 때, 친구들을 만나 식사를 하거나 병원이나 우체국 은행 등을 갈 때 등, 주로 자신의 생활권 안에서 움직일 때 차를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가 됐죠. 이런 경우 고마력에 화려한 옵션으로 치장된 차 보다는 공간과 안전 등, 좀 더 심플하게 차를 이해하고 선택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죠. 이런 성향은 남편들과 차를 선택하기 위해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1년 평균 주행 거리>

여자 : 12,120km

남자 : 14,410km


그러니까 생활 환경에 따른 선택의 차이가 발생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거 같네요. 그런데 독일에서도 요즘은 분위기가 또 바뀌고 있다고 하네요.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아내에게 큰 차를 넘기고, 남자들은 세컨 카로 장만한 작은 차를 출퇴근 시 이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죠. 제 처남이 딱 그런 경우였어요. 지금은 훌쩍 아이들이 컸지만 예전엔 처남댁이 어린 자매를 돌보는 입장이라 큰 차를 주로 이용했고, 출퇴근 시엔 처남은 작은 차를 이용했습니다. 아마 이런 경우 꽤 있지 않을까 싶어요.


골프 카브리오. 사진=netcarshow.com




여자 VS 남자, 차량 소유 기간


전체적인 내용을 보니 확실히 여자와 남자의 차에 대한 시각이 닮은 듯 하면서도 다른 부분들이 있어 보입니다. 이런 미묘한 차이는 차를 소유하는 기간의 차이와도 연결이 될 수 있을까요? 독일의 경우 여성들이 한 번 차를 사면 평균 8.2년을 소유한다고 합니다. 반면에 남자들은 7.2년이더군요. 1년 정도 평균 더 차를 탄다고 보면 될 거 같은데요. 이런 차이는 자동차를 기호품으로 여기는 남성과 생활의 도구로 여기는 여성의 관점의 차이에서 생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잡지에 실린 신상 구두, 새로운 화장품 사진에 여성들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처럼 남자들은 자동차 잡지에 실린 새로운 자동차를 보며 입맛을 다시게 됩니다. 주행 거리도 더 많고, 차에 대한 관심도도 더 높은 이유 등이 남녀 간 유지 기간의 차이를 만드는 주요 요인이 아닐까 합니다. 


독일의 경우였지만 어딘지 우리나라와 비슷한 부분들이 있어 보이지 않나요? 물론 이런 일반적 경우에 속하지 않는 여성 운전자들도 있을 겁니다. 어쨌든 여자이기에 남자와 다른 취향을 보이는 것 못지 않게, 생활 환경에 따른 선택도 크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또 바뀌겠죠. 그리고 그 흐름에 따라 여성들의 자동차 선택은 또 달라지지 않을까 싶네요. 과연 20년 후에 여자들의 자동차 세상은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요?  별로 달라지지 않을 거 같다고요? 좋습니다. 그럼 그 때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