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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자동차 역사를 빛낸 히든 챔피언, 프랑스

독일은 자동차의 역사와 함께 급부상한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칼 벤츠와 고트립 다임러는 역사책 맨 첫 장에 이름을 올렸고, 그 덕에 자동차의 종주국이라 독일은 불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프랑스인들은 이를 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데요. 그 이유는 자동차 초기 역사의 진짜 주인공은 자신들이라고 확고하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프랑스 자동차산업 돌아가는 걸 보면 그런 주장이 썩 와 닿지는 않지만, 역사적 측면에선 그들의 주장이 그리 틀리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프랑스가 자동차 초기 역사에 있어 큰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세계 최초'라는 의미를 통해 프랑스 자동차史를 살짝 되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계 최초의 자동차

물론 정답은1886년 칼 벤츠와 고트립 다임러의 자동차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동력을 만들어 움직이는 개인 이동수단'이라는 것까지 범위를 넓히면 이 최초 타이틀은 어쩌면 프랑스로 가야할지도 모릅니다. 1769년, 그러니까 칼 벤츠가 특허등록을 한 해 보다 117년이나  앞서 프랑스인 N.J. 퀴뇨는 3륜 증기차를 만들어냈죠. 증기차가 가솔린 보다 앞섰던 시절, 증기차가 활발하던 시기의 주도권을 상당기간 프랑스가 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퀴뇨의 차를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해도 1878년에 아멜데 볼레가 만든 라 망셀과 같은 증기차, 1883년 드 디옹이 만든 증기차 등이 떡허니  버티고 있습니다. 모두가 칼 벤츠나 고트립 다임러의 특허등록 이 전 모델들로, 내연기관의 승리로 역사의 첫 장은 독일의 차지가 됐으나 그것이 꼭 처음이 아니라는 걸 프랑스는 지금도 확신에 차 주장하고 있습니다.

 

 

칼 벤츠 자동차의 첫 고객

칼 벤츠가 특허등록을 한 후 1년이 지난 1887년, 그의 차를 정식으로 구매한 사람은 독일사람이 아니라 프랑스인 에밀 로제였습니다. 그는 차만 수입한 것이 아니라 대리점 영업까지 겸하며 후에 콜택시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갔죠. 물론 초기 벤츠의 경쟁자였던 다임러의 첫 고객과 판권을 얻어간 이들도 프랑스 사람들이었다는 걸 보면, 당시 프랑스인들의 사업적 감각은 독일 보다 나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최초의 자동차 경주

1894년 파리-루앙 간 80km 거리에서 벌어진 경주가 세계 최초의 자동차 경주로 기록되어 있죠. 이 경주는 차의 안전성과 보편화를 위해 실시 되었고, 상업성이 있다고 판단되면서 점차 여러 나라로 도심 간 경주의 형태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자동차 경주는 그 다음 해인 1895년, 역시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프랑스 자동차 클럽'이 주최한 파리-보르도 구간의 경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1898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구간까지 세계 최초의 국제 자동차 경주가 열리게 되죠.

 

 

현대 자동차의 효시 '6 hp'

세계 최초의 자동차 공장, 혹은 회사로 불린 '파나르 르바소' 역시 프랑스 회사였습니다. 다임러에게 판권을 산 마담 사라쟁은 남편의 친구이자 나중에 자신의 남편이 된 에밀 르바소, 그리고 르네 파나르와 함께 자동차 전용 공장을 짓게 되는데 이게 공식적인 첫 번째 자동차 회사가 됩니다. 그런데 이 파나르 르바소가 아주 중요한 업적을 하나 남기는데, 바로 우리가 요즘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형태를 이 회사가 만들어 낸 것이죠.

 

1899년파나르 르바소가 만든 '6마력' 자동차가 그 주인공으로, 이 전까지의 차들은 자전거나 마차에서 그 형태를 빌려왔지만 이 차는 처음부터 자동차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습니다. 엔진이 우선 앞으로 옮겨와 냉각에 도움을 받았으며 기어도 앞쪽에 설치돼 차량의 앞뒤 무게 배분에 도움이 되면서 자동차의 주행력을 높이게 된 것이죠.

 

그리고 극단적으로 차이가 났던 앞바퀴와 뒷바퀴의 차이를 거의 없앴고, 핸들 역시 요즘처럼 비스듬하게 제작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제작된 6hp가 자동차를 만드는 하나의 표준으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파나르 시스템'이라고 불린 이 표준 제작 시스템은 이후 거의 모든 차에 적용이 됩니다.

 

 

최초의 하드탑

이 차는 1937년에 출시된 푸조 402L 이클립스라는 쿠페인데요. 접이식 하드탑 모델입니다. 접이식 하드탑의 시초는 1934년 401 이클립스였죠. 사실 '접이식 하드탑'이라는 시스템은  미국인 B.B 엘러바흐가 1930년 미국에서 획득했습니다. 유럽에선 프랑스인인 조르주 폴랭이란 치과의사가 갖고 있으며 이 권리를 푸조가 얻어 양산 모델로 적용한 것이 바로 이클립스였죠. 조르주 폴랭이 아니었다면 푸조의 최초 하드탑 모델은 다른 나라나 다른 메이커에 뺐겼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최초의 자동차 타이어

고무바퀴는 사실 미국의 비운의 발명가 굿이어가 제조법을 갖고 있었죠. 그 놈의 특허 문제로 평생 고생을 한 사람이었는데요. 어쨌든 그의 제조법 덕에 합성고무가 탄생했고, 영국인 톰슨이 공기를 넣는 방법으로 공기압축 고무타이어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 동안 잊혀졌던 이 공기 주입식 고무 타이어를 자전거에 적용해 특허를 받게 된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수의사였던 던롭이었습니다. 던롭 역시 영국인이었죠.  그리고 1891년, 우연히 던롭 자전거 바퀴를 수리하러온 고객의 타이어를 만지다 미쉘린은 힌트를 얻게 되었고, 이 때 받은 영감을 토대로 만든 게 바로 자동차용 타이어였습니다.

 

미식가들을 위한 미슐랭 가이드로도 유명한 미쉘린인데요. 프랑스 식으로는 미슐랭 타이어라고 해야겠지만 폭스바겐처럼 한국에선 미쉘린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그 밖의 것들

그 밖에도 최초의 기록은 많습니다. 1896년 '프랑스 자동차'라는 세계 최초의 자동차잡지가 발행됐고, '레코'라는 잡지가 주관한 '여성 운전자 챔피언십'이라는 경주가 1897년 열렸습니다. 1898년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같은 '멋진 자동차 선발 대회'가 역시 프랑스에서 열리게 되었는데요. 상업적, 미적 가치를 자동차에서 모두 발견하고 적극 활용한 프랑스인들의 감각은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프랑크푸르트모터쇼와 함께 대표적인 유럽의 모터쇼 중 하나인 파리오토살롱도 1898년 처음 시작됐으니, 정말 프랑스는 자동차 초창기 역사에서 가장 화려한 시절을 보낸 나라였습니다. 실제로 자동차 쇼룸의 개념도 프랑스에서 시작됐으며 자동차에 대한 법률도 가장 활발하게 정비된 나라였습니다.

 

초창기엔 독일에서 엔진을 받아쓰던 프랑스는 이후 직접 제작에 나섰고, 또한 자신들만의 형태로 발전시켜 갔습니다. 이런 노력 끝에 최초의 앞바퀴 독립 서스펜션이나 최초의 디젤 세단 등도 모두 프랑스 메이커로부터 나오게 됐습니다. 이처럼 뜨겁고도 강렬하게 자동차에 몰입한 프랑스는 미국의 급부상으로 조금씩 뒷전으로 밀리게 되죠. 그리고 지금은 독일차는 물론 우니라나라 일본차 등에도 점차적으로 밀리고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프랑스의 자동차가 힘 잃은 숫사자의 모습이 되었다고 해서 자동차 역사를 통해 프랑스가 보여준 열정과 그 가치까지 간과되어선 안됩니다. 비록 지금 그들의 자동차산업이 전반적으로 침체되어 있긴 하지만 선조들이 보여줬던 뜨거운 자동차 사랑의 정신까지 무너져선 안될 것입니다. 위기를 딛고 다시금 프랑스의 자동차가 되살아나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