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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유럽자동차들, 왜 승차감 보다 핸들링인가?


얼마 전 참 재밌는 글을 하나 봤습니다. 어떤 분이 자신의 차 서스펜션과 관련된 질문을 했는데, 그 글에 대한 답변 중 이런 게 있더군요. " 님은 단단한 승차감을 좋아하시는 거 보니 선진국형 운전자십니다. 선진국은 대체로 단단한 서스펜션 및 하체를 유지하죠. ..."

여러 얘기 중 이 대목이 눈에 띄더군요. 자동차 쪽에 종사한다는 분의 대답치고는 좀 뭐랄까요? '무슨 근거로 저런 얘길 하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선진국 범주에 드는 나라들은 서스펜션이 단단하고 선진국 아니면 아니다?

하지만 유럽쪽 메이커들이 만드는 차들이 대체적으로 일본이나 우리나라 차들 보다 승차감이 다소 딱딱하다는 느낌을 받기 쉬운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유럽차들은 왜 이렇게 서스펜션이나 하체를 단단하게 해놓았을까요? 그 분 답변처럼 선진국이라서? 아니면 엉덩이 살이 더 많아서? 이 대답을 하기 위해 핸들링과 함께 그 차이를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핸들링은 뭘까요? 또 이와 관련 있는 코너링은 어떤 것인가요?


어떤 일에 있어 핸들링을 잘한다는 것은, 일머리를 잘 잡고 그 일의 처리를 능률적으로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자동차에서 핸들링이라고 하면 자동차의 움직임이 운전자의 의지에 감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으로 얘기할 수 있습니다. 좀 딱딱하게 얘기해보면 운전자의 요구에 대한 차량의 즉각적인 응답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핸들링은 특히나 코너링을 통해 그 진가가 발휘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코너링이라는 건 곡선주로, 그러니까 지그재그 길이나 꼬불꼬불한 산길 등이겠죠? 그런 곳을 안정적으로 돌아나가는 능력입니다. 그러니까 코너링이 좋다는 것은 차가 안정감 있게 코너를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따라서 핸들링과 코너링을 하나로 묶어 설명을 하면 이렇게 정리가 될 수 있겠습니다.

운전자의 의지를 즉각적으로 받아내(핸들링) 
                                                      코너를 안정감 있게 빨리 달리는(코너링) 것.

핸들링, 그리고 코너링이 좋다는 것은  빠르고 안정감 있게 운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능력이 좋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코너를 돌 때 안정감이 있기 위해서는 차의 무게 배분이 앞뒤로 적절해야 하고, 타이어가 노면과의 맞닿는 것도 야무져야합니다. 거기다 휠도 중요하고 차체의 강성도 뒤틀림에 잘 견디게 강해야 합니다. 물론 서스펜션 역시 이런 좌우 코너 주행에 어울리게 세팅되어야겠죠.

조향장치와 더불어 이러한 요소들이 잘 조합을 이뤘을 때, 그 차는 운전자의 의도대로 안정감 있고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것이죠. 결국, 코너링에 적합한 차는 핸들링하기 좋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제목을 다시 떠올려 볼까요? 왜 유럽자동차들은 핸들링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일까요? 왜 하체는 단단하게 세팅이 되어 있는 것일까요?... 지금부터 나누는 얘기들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우디 A1이 서 있는 곳이 보이십니까? 바닥을 보세요. 작고 검은 돌들로 되어 있습니다. 유럽은 아스팔트도로 말고도 이런 식의 우둘투둘한 작은돌, 혹은 구운벽돌로 이뤄진 옛길이 많습니다. 이런 곳을 달리는 차의 서스펜션이 흔한 표현으로 물렁물렁했다간 뒷좌석에 탄 아이들 속 메스꺼워 얼마 못 달리고 말 겁니다.

 물론 이런 길을 달려야 하는 스티어링 휠이 너무 가벼워도 좋지 않습니다. 따라서 스프링과 쇼바는 단단히 차체를 잡아줘야 하고, 이러다 보니 안락한 승차감은 안정적인 운전을 위해 다소 양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유럽도시의 특징은 대체적으로 도시들이 작다는 것입니다. 작고 오래된 도시들이 많기 때문에 자연스레 도시의 도로도 좁고 구불구불한 경우가 많은데요. 제가 살고 있는 프랑크푸르트만 해도 독일에서는 제법 큰 도시, 현대화된 도시라고 하지만 편도 3차선 직선로는 거의 찾기가 어렵습니다. 좀 넓다는 곳이 편도 2차선, 보통은 편도 1차선 도로죠. 그것도 금방 코너를 돌고, 또 돌고 하는 등의 구비진 곳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러다 보니 코너를 자주 돌게 되고, 결국 코너를 잘 돌아나가는 그런 차, 운전자의 감각을 즉각적으로 받아낼 수 있는 핸들링 좋은 차를 운전자들이 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도심주행에서 보다 핸들링이 좋은 차를 필요로 하는 곳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굽이치는 외곽도로들이 그것이죠.

독일의 경우 중부지방은 주로 평지 도로가 많지만 슈투트가르트(벤츠, 포르셰) 지방과 그 주변 및 뮌헨 근처 (아우디, BMW )의 남부는 산길이 아주 많습니다. 뻐꾸기 시계로 유명한 검은숲의 광대한 지역은 거의 전체가 산길들이 강물처럼, 혈관처럼 퍼져 있어 와인딩의 천국과 같습니다.

와인딩이라는 것은 굽이굽이길을 신나게 달리는 걸 얘기하죠? 즉 이런 굽이길을 잘 달리기 위해서는 코너링과 핸들링이 좋아야 합니다. 승차감은 그 다음의 문제인 것입니다. 제가 직접 찍은 사진 몇 장을 더 보여드리겠습니다.



독일 서남부 검은숲 지역의 일부를 달릴 때 아내가 옆에서 찍은 사진들인데요. 1시간 넘게 달리면서 직선로를 거의 만나지 못할 정도로 모든 길이 굽이쳐 흐릅니다. 한계령처럼 높은 지역에서부터 낮은 구릉지대까지 어디할 것 없이 산이 있는 곳은 길들이 다 이렇게 코너링을 할 수밖에 없게 돼 있죠. 자동차의 주 활동 무대가 요구하는 것은 이처럼 승차감 보다는 핸들링과 코너링이 좋은 차가 되는 것이죠.

마지막 사진은 추월하는 차가 우연히 걸린 것인데, 초행이었던 제 차를 거의 대부분의 그 지역 사람들은 저렇게 추월해 가버렸습니다. 나중에 존심이 쫌 상해, 제법 속도를 내서 내달렸지만 어느 틈엔가 뒤에 달라붙어 있던 또 다른 차들이 추월해버립니다. "야~! 나도 이 동네 살면 늬들만큼 운전할 수 있거든?" 이렇게 막 뭐라고 해줬지만(물론 한국말로) 그냥 나중에 그런가 보다 하고 여유롭게 운전하게 됐습니다. 대부분 클락션 한 번 안 울리고 알아서 추월들 해 가고, 그럴 땐 살짝 속도를 줄여 주는 여유까지 갖게 되더군요.

잠시 얘기가 딴 곳으로 샜는데요. 독일사람들은 곡선로에서 대체적으로 아주 빠르게 운전을 합니다. 고속도로를 들어서가나 나갈 때나, 저렇게 구비구비 산길에서나 할 것 없이 코너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운전을 하죠. 하체가 튼튼해야 할 이유입니다. 유럽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스피디한 자동차 경주를 보고 자라고, 그렇게 운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스피드에 대한 기호가 생긴 것이죠. 하지만 그런 성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환경적인 이유들이 핸들링, 코너링의 중요성을 키워내기도 했던 것입니다.

부족한 실력으로 설명하려니 약간 횡설수설한 느낌도 있었는데요. 어쨌든 어느 분의 말처럼 선진국이라 서스가 단단하고, 핸들링의 감각을 끌어올린 것이 아니라는 것.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그런 차를 요구하게끔 만들다는 것입니다.
 
뭐 꼭 이런 이유만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제가 미처 모르고 설명 못 드린 부분도 있겠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동차는 그것이 만들어지고 주로 소비되는 환경이나 문화에 의해 그 특색이 지어졌다' 점입니다. ( '아우토반이 만들어낸 독일 자동차의 특징들' 이라는 제 포스트의 첫 문장을 인용해봤습니다.)

요즘은 자동차 기술들이 좋아져 딱히 핸들링이 좋다고, 서스가 단단하다고 해서 승차감이 나쁘다라 단정짓기 어려워졌습니다. 반대로 승차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이나 일본차들도 과거에 비해 점점 이런 핸들링과 코너링에 강점을 보이는 모델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후륜이라 더 코너링이 좋고, 사륜구동이라고 더 나쁘고 하진 않게 된 것이죠. 하지만 편안한 승차감 보다는 뛰어난 핸들링과 코너링을 보여주는 차를 만드는 것이  더 어렵지 않나 하는 게 제 소견입니다. 어쨌든!  안락함에 코너링과 핸들링까지 좋은 차가 대중화 되는 때가 더 빨리 오길 바라며, 부족한 포스팅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