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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아우토반'이 만들어낸 독일 자동차의 특징들


자동차는 그 것이 만들어지고 주로 소비되는 환경이나 문화에 의해 그 특색이 지어졌습니다. 땅이 넓고 많이 달려야 하는, 그러면서도 기름값이 저렴했던 미국의 자동차들은 크고 넓고 무거웠죠. 반면에 좁은 길을 달려야 하는 유럽은 작은 차들이 주된 소비의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오랜 세월 각 종 레이스를 통해 스포츠카의 신화를 만들어 간 곳도 또한 유럽이었습니다. 거기에, 아기자기한 옵션에 전자적 장치들로 무장한 일본차들은 일본만의 특징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했습니다.

여기서 저는, 유럽에 있으면서도 주변국들과는 조금은 다른 자동차 환경을 갖고 있는 독일을 얘기하고자 합니다. 독일은 굉장히 큰차와 작은 차들이 다양하게 뒤엉켜 있습니다. 딱히 유럽적이지도 그렇다고 북미의 스타일을 따르는 것도 아닌 독일차만의 어떤 특색이 있다고 보는 것인데요. 그 특징의 중심에 아우토반(Autobahn)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우토반의 어떤 점이 독일차들의 어떤 특징을 만들어 냈을까요? 부족하지만 제 나름 적어봤습니다.



무거운 핸들, 그러나 정확한 핸들링!

흔히 독일차는 핸들이 무거운 편이다라고 합니다. 특히 BMW같은 경우는 저같이 둔감한 사람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는데요. 이렇게 핸들이 묵직한 이유는 역시 고속주행 시에 차를 안정적으로 컨트럴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함입니다.

독일의 아우토반은 잘 아시듯이 속도의 무제한 도로였습니다. 지금이야 속도 제한의 구간이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1차로에선 시속 200km이상으로 달리는 차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지난 번 포스팅 때도 언급을 했지만 70의 노인분이 포르쉐로 아우토반에서 시속 300km를 찍는 곳이 독일입니다. 시속 300km라고 한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고속이고 이런 운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핸들이 무거워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핸들이 무거워진다는 건 쉽게 이해하면 자동차의 타이어와 노면과의 접지력이 높아진다는 걸 의미합니다. 고속으로 주행하면서 타이어가 노면에 밀착되면 기계적으로 핸들은 무거워지며 직진성을 스스로 보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문가가 아니라 더 깊게 들어가는 건 어렵지만 암튼 이런 초스피드 주행에서 핸들이 가볍게 돌아간다면 대단히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기본적으로 독일 메이커들은 이런 고속주행에 걸맞게 핸들이 세팅이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핸들이 무거워진다고 해서 핸들링 즉, 차량을 컨트롤하는 능력까지 무거워지고 둔감해진다는 건 아닙니다. BMW나 포르쉐가 핸들 무겁다고 핸들링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거든요. 핸들링이 좋은 차라는 것은 차량의 여러 기능들이 유기적으로 최적을 이룰 때 나타난다고 합니다. 차체의 강성이나 조향장치들의 정확하고 튼튼함, 타이어와 서스펜션 등... 따라서 아우토반에서 발휘되길 바라는 Speed를 안정적으로 구사하기 위해선 무거운 핸들, 하지만 정확한 핸들링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현대차의 에쿠스가 기본적으로 핸들의 세팅이 무척 가볍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사실, 한국의 도로여건이나 차량의 운행 목적 등을 생각하면 밟아대는 모델과는 거리가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어쨌든, 엄청난 속도로 달려야 하는 아우토반에서는  묵직한 핸들이 요구됩니다. (자동으로 핸들의 무게가 조정되는 시대가 도래했지만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독일차는 핸들이 무겁습니다.)



독일차의 서스는 왜 딱딱한가요?


서스펜션(현가장치)이라는 건 우선 차량의 안정성과 정숙성등을 위한 장치라는 거 다들 아실 겁니다.

안정성은 앞서 말씀드린 접지력 및 발란스와 관련이 있고, 정숙성은 노면에서 올라오는 충격 등을 흡수해 편안한 이동을 도모합니다. 서스가 부드럽고 말랑말랑할 수록 정숙성은 좋지만 반대로 고속 주행에서는 약점이 있을 수밖에 없죠. 

아우토반 1차선을 엄청난 속도로 달려나가는 차들은 분명 서스펜션이 대부분 단단하게 구성되어 있을 겁니다. 왜냐면 고속에선 말씀드린 것처럼 정숙성보다는 안정성에 우선되고, 안정성이라는 건 매우 단단하게 차체와 바퀴를 연결한 튼튼한 제품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뜻인데요. 이 튼튼하다는 것은 결국 딱딱하다는 표현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즘이야 정숙성과 안정성을 겸비한 서스펜션들이 장착이 되기도 하지만 과거 독일은 기본적으로 정숙성 보다는 고속주행에 맞는 안전성에 방점을 두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강력하게 내달리는 차량과 노면이 상호간에 주고받는 충격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잡아주느냐...이것이 아우토반에서는 더 필요한 것입니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몰아본 차가 SM5이고 여기서는 VW, 피아트, 베엠베 등을 경험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딱딱한 느낌이 드는 게 더 맘에 들더군요.)



엄청나게 달리는 차들...내구성은 필수!

예전에 저랑 친한 동생녀석이 자주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형, 벤츠는 말이우 백만 킬로 타면 '아~이제 길이 들기시작했군' 이런답디다. " 

장난스럽게 하는 말이지만 실제로 독일에서 살다 보니 1년에 15,000KM를 타는 차량들도 있지만 1년에 100,000KM를 타는 차들도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엄청난 주행거리를 달릴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아우토반의 존재 때문이라는 것도 이 곳에 살면서 확인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독일 중고차 시장에선 년식 보다는 몇 킬로미터 탔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데요. 년식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이 탄 차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죠. 이렇듯 독일의 고속도로망을 이용하는 수 많은 사람들과 그런 아우토반을 통해 주변국들로 자주 왕래는 하는 운전자들 때문에 독일차들은 기본적으로 튼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차체 뿐아니라 엔진과 그 엔진에 매치가 잘 되는 미션 등이 50만KM 100만KM를 버티지 못하게 설계되고 제작된다면 그 회사는 망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독일차들은 잔고장이 없기로 유명했습니다. 기계적인 부분에서 그들의 차는 매우 강했으니까 말이죠. 오직 고장없이 튼튼하고 단단하게 아우토반을 잘 질주하면 됐던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차들이 전자적 기능들을 장착한 차량들로 밀고들어오면서부터 독일차들도 이에 맞서 센서 가득한 차들을 내놓기 시작했고, 그런 이후 잔고장의 망령에서 독일차들도 자유롭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옛날 독일차를 몰아본 분들이나 몰고 있는 분들은, 요즘의 독일차에서 자주 언급되는 잔고장 얘기가 굉장히 멀게만 느껴질 것입니다.



뛰어난 브레이크 기술!

아우토반에서의 고속주행은 필연적으로 뛰어난 제동능력을 갖춘 브레이크가 장착된 차를 요구합니다. 특히,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차들일수록 브레이크의 성능은 중요한 것인데요.

사실 브레이크라는 것이 아우토반 때문에 발전했다기 보다는, 각 종 자동차 레이스를 통해 성장된 기술력이라 보는 게 더 맞을 듯 싶습니다. 하지만 실제 공공의 도로에서 고속으로 주행을 할 수 있는 곳은 아우토반 뿐이며. 이 아우토반이 거미줄처럼 연계되어 있어 거의 모든 독일인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도로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서킷에서 발전된 제동능력이 가장 확실하게 사용되고 적용되는 곳은 아우토반일 것입니다.



친환경은 영원한 숙제이자 도전!

독일 아우토반 주변은 대개가 자연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높은 빌딩 없는 나라인데 아우토반 주변은 더 그렇습니다. 그렇다보니 과거부터 꾸준하게 아우토반에서 발생되는 유해배기가스에 대한 비판과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다보니 잘 달리는 튼튼한 차를 만드는 것 못지 않게 배기가스 적은, 유해물질 잘 안나오는 환경적인 차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과제가 됐죠. 이런 이유가 디젤차를 선호하게 된 하나의 이유가 됐던 것이고, 지금도 그 친환경적 노력은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환경을 배려하는 기술을 통해 다시금 독일차는 기술적 진보를 이뤄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독일사람들에게 자동차는 잘 달리는 것 외엔 다른 부분은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젤의 소음이나 이런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고온,고압에 잘 견디는 좋은 디젤엔진을 만들 줄 알았기에 내구성의 문제도 적고, 경제성도 있으며, 환경적이기도 한 디젤차가 아우토반을 질주해대는 것이, 게르만인들에겐 자연스러운 행위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독일메이커들의 디젤차는 아이들링 상태가 아닌 이상엔 쉽게 구분도 못할 정도로 소음을 잡아냅니다. 보닛 위에 볼록하게 튀어나왔던 디젤승용차의 다다다~하는 굉음(?)을 떠올리는 시대는 먼 옛날 이야기가 된 것입니다. 


아우토반의 태생적 논란을 충분히 감안한다 하더라도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라는 이 놀라운 시도는 결과적으로, 독일이라는 나라를 세계 최고의 자동차 기술국 반열에 오르게 했습니다. 아우토반을 통해 달리는 것이 뭔가를 알게 했고, 그 속도를 안정적으로 누리기 위한 무수한 기술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거기에 환경적인 요인까지 고려한 덕에 자연친화적 자동차 생산국이라는 또다른 명예도 얻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아우토반 위를 또 어떤 형태의 차들이 달리게 될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독일자동차만의 개성을 만든 건 상당부분 이 고속도로였다는 것이고, 앞으로도 독일의 자동차 메이커들은 이 아우토반의 토대 위에서 굳건하게 내달려 갈 것이란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