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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유럽의 엄청난 교통범칙금, 그리고 일수벌금제

자동차나 교통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대로 교육하는 것입니다. 면허를 따기 위해 학원에 등록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죠. 어떻게 운전하는 게 안전한지, 그리고 도로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지 철저하게 배워야 합니다. 그게 상식이고 정상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요?


하루라도 빨리 면허증을 얻기 위한 노력밖에 없는 듯 보입니다. 독일처럼 응급처치 과정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적어도 핵심적인 교통법규에 대해 확실한 이해는 하고 운전대를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게 없이 단속만 강화해서 벌금 물리는 것은 행정편의주의로 비판받기 쉽습니다. 이 외에 법이 안전하고 효율적인 도로 환경으로 이끄는지 이런 제도의 측면,


도로의 효율적 설계, 교통 인프라의 합리성, 여기에 지속적인 홍보 등도 잘 되고 있는지 종합적 검토가 되는 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범칙금 강화를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벌금이 일정 부분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요. 처벌이 너무 가볍다면 사람들은 긴장하지 않을 테고, 벌금 몇 푼 내는 것으로 끝내고 말겠다는 그릇된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유럽의 높은 교통 범칙금은 우리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의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빌트는 유럽 교통 범칙금 수준이 어떤지를 간략하게 소개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중 음주운전과 과속 부분에서 얼마나 벌금을 내는지 몇 나라를 경우를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국 (스코틀랜드) : 음주운전 적발 시 최대 5710유로 (약 770만 원)

오스트리아 : 제한속도의 50km/h 이상 과속 시 최대 2180유로 (약 294만 원)

프랑스 : 제한속도의 50km/h 이상 과속 시 1,500유로 (약 202만 원)

이탈리아 : 제한속도의 20km/h 이상 과속 시 범칙금은 최소 170유로 (23만 원)

사진=픽사베이


모두 액수가 엄청나죠? 이와 달리 소득에 비례해서 벌금을 물리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어느 수준인지 이 역시 확인해 보도록 하죠. 

덴마크 : 음주운전 적발 시 최대 1달 소득을 벌금

스웨덴 : 음주운전 적발 시 최소 40일 소득을 벌금

스위스 : 제한속도의 50km/h 이상 과속 시 최소 60일 소득을 벌금

예를 들어 볼까요? 만약 스위스에서 제한속도 100km/h 구간에서 시속 150km/h로 달리다가 단속되었습니다. 해당 운전자의 소득이 시간당 3만 원이라고 가정해 보죠. 8시간 일한다고 했을 때 그의 하루 소득은 24만 원이 됩니다. 한 달에 22일을 일한다고 하면 월급은 528만 원이 되겠죠. 세후 수령액이라면 독일 기준으로 괜찮은 수준입니다. 그리고 만약 최소 일수인 60일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야 한다면 운전자는 1,440만 원을 부담하게 됩니다.


예전 핀란드에서 노키아 부회장이 이런 규정에 의해 25km/h 정도 제한속도를 넘겨 운전하다 적발돼 1억 4천만 원가량의 일수범칙금을 물어 화제가 되기도 했죠. 흔히 일수벌금제, 혹은 교통에 한정했을 때에는 일수 범칙금이라고 부릅니다. 하루 수입 기준으로 벌금을 물리는 제도죠. 


핀란드에서 1921년에 먼저 시작돼 스웨덴, 스위스, 덴마크, 독일 등, 유럽 몇몇 나라에서 일수벌금제가 적용 중입니다. 아직은 유럽 전체로 봐서 활성화된 제도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독일은 교통범칙금을 소득과 상관없이 물리고 있습니다. 만약 재판까지 가는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법원에서 일수에 따른 벌금을 부여할 수 있죠. 무조건 일괄 적용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구분돼 적용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진=픽사베이


우리나라도 오래전부터 이 일수벌금제를 적용하기 위한 연구, 또는 입법을 위한 과정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압도적인 찬성 여론과는 달리 늘 벽 아닌 벽에 막혔는데요. 무엇이 벽으로 작용한 걸까요? 우선 소득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비율이 낮은 문제가 있습니다. 소득 투명성 수준이 높지 않다는 거죠. 자영업자의 경우 소득을 파악하는 비율이 70%를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또 소득은 낮게 신고되지만 재산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의 경우 소득만으로 경제적 징벌이 가능하겠냐는 반론도 있습니다. 아예 소득은 없는데 재산은 많은 경우도 있겠죠. 무엇보다 일수벌금제가 확대 적용된다고 했을 때 소득을 숨기려는 이들이 많아질 수 있습니다.


음주운전의 경우도 좀 애매합니다. 소득이 낮은 사람이나 소득이 높은 사람이나 둘 다 위험한 선택(음주 후 운전)을 했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치명적 위협인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이 소득에 따라 차등 적용된다는 것이 과연 옳은 건지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소득과 상관없이 범칙금 액수를 더 세분화해서 차이를 두게 하는 게 어떨까?' 하고 말이죠. 벌금의 단계를 더 많이 나눠 위험 정도나 법 위반 정도에 따라 낮은 금액부터 높은 액수까지 폭을 넓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통법 위반의 정도가 심한, 일정 수준 이상이면 징벌적 배상의 의미로 소득에 따른 벌금을 부과하는 단계적 일수벌금제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의외로 차등벌금제, 일수벌금제 적용에는 넘어야 할 벽들이 많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국민이 원하고 정치권에서도 필요성에 공감한다면 적용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단, 법이라는 게 한 번 만들어진 후에는 고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꼼꼼하게 빈틈은 없는지 살피는 과정이 있어야겠습니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빠져나가는 고액 소득자들을 막아낼 장치가 필요하고 정당한 노력에 따라 얻어낸 소득에 너무 과한 징벌이 아니냐는 (소수일지라도)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필요는 있습니다. 불신을 해소할 수 있도록 일수 범칙금제의 효용성을 잘 파악하고 연구해 그 결과를 국민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뒤따른다면 저항의 벽도 그만큼 낮아질 것입니다. 


벌금이 최고의 해법은 아닙니다. 처음에도 이야기했듯 의미 있는 면허 교육 과정이 마련되는 게 우선돼야 합니다. 하지만 벌금이 갖는 효용성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일수벌금제가 얼마나 효율적인지에 대한 차분하고 치밀한 검토 작업이 있어야 합니다. 세금을 늘리려는 수단 정도로 오해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무엇보다 이런 제도 도입의 논의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도 마련되어야겠죠. 그래서 이런 제도가 논의된다는 그 자체만으로 우리의 교통 문화 인식이 조금이라도 환기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