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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메르켈은 디젤을 버리지 못한다

다음 달 24일 독일에서는 선거를 통해 차기 총리를 뽑게 됩니다. 현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이 4선에 도전하고 있죠. 마르틴 슐츠라는 강력한 야당 후보와 경쟁 중인데요. 이번 선거에서 그녀의 어려움 중 하나라면 디젤 게이트와 독일 제조사들의 카르텔 의혹, 그리고 낡은 디젤차의 도심 진입 금지 문제 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정치적 공격입니다. 그리고 그런 의견에 시민들도 꽤 동의하고 있어 메르켈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메르켈 / 사진=BMW


제 1공영 방송 ARD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67%의 응답자가 메르켈 정부가 자동차 업계를 강하게 비판하거나 밀어붙이지 않고 봐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답했고, 또 다른 언론과 인터뷰에서 왜 미국 환경청처럼 독일의 자동차청이 적극적으로 디젤 게이트 같은 문제에 대응하지 않았냐는 곤혹스러운 질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강하게 업계 비판하고 나선 메르켈

야당과 여론으로부터 이런 공세에 시달리는 메르켈은 업계를 옹호하지 않고 있으며 원칙대로 철저하게 여러 문제를 조사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업계를 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는데요. 우선 뒤통수를 맞았다는 식의 표현을 써가며 디젤 게이트 이후 자동차 회사 CEO들이 거대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것을 비판했습니다.


또 메르켈은 신뢰를 크게 잃은 자동차 회사들이 90만 명의 고용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정직함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연방정부 재무부 역시 이런 메르켈의 비판에 힘을 더했는데요. 디젤 게이트가 독일 경제를 힘들게 하는 중요 요인이라는 경고를 공개적으로 한 것입니다.


이쯤 되면 메르켈이 그동안 꾸준하게 지원한 독일 자동차 업계와의 동행을 끝내고 비판적인 관계로 돌아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국내 언론들이 독일 수퍼일루라는 매체와 인터뷰에서 메르켈이 디젤차에 대한 단계적 금지를 언급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죠. 그렇다면 메르켈은 디젤에 비판적인 걸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습니다.

사진=BMW


메르켈 "우리에겐 디젤이 필요합니다"

독일에서 디젤차의 판매량이 계속해서 줄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유럽 전체로 봐도 마찬가지죠. 다만 이는 디젤 게이트라는 폭탄을 맞은 이후 업계가 예상한 감소치 범위로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최근에는 독일 디젤차들이 상대적으로 다른 제조사보다 질소산화물의 배출량이 적다는 여러 자료가 공개되면서 오히려 디젤에 힘을 싣는 분위기가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죠.


무엇보다 메르켈 총리는 디젤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2040년부터 가솔린과 디젤 엔진 차량의 판매를 금지하려는 영국 정부의 정책이 발표된 이후 독일 연방정부 대변인 울리케 데머는 '디젤차를 악당 취급해선 안 된다.'는 메르켈의 말을 전했습니다. 


또 가장 최근인 8월 25일, 독일 운전자 클럽 아데아체가 회원들을 위해 발행하는 자동차 월간지 모터벨트(발행 부수 약 1,300만 부)와 메르켈이 인터뷰를 했는데요.  아데아체는 제목을 이렇게 뽑았습니다. Merkel  "Wir brauchen den Diesel" (메르켈 "우리에겐 디젤이 필요합니다")


모터벨트의 여러 질문 중 디젤 관련한 대목입니다. '기후총리로 자주 불리는 메르켈이 이산화탄소 배출 기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 중인데 디젤이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의미가 있나요?' 여기에 대해 그녀는  "디젤이 현재 비판의 중심에 있죠. 하지만 디젤은 가솔린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적게 합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특히 새로운 배출가스 테스트가 9월부터 시작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제조사들은 움직일 수밖에 없고, 독일 정부는 더 나은 배기가스 억제력을 위한 기술에 투자하는 등, 제조사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강력하게 요구하겠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메르켈 총리가 다시금 디젤을 붙잡고 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 것입니다. 그렇다면 메르켈이 디젤차를 단계적으로 판매 중단하겠다고 했다는 기사들은 왜 나온 걸까요?

디젤 게이트 터진 직후 중국 총리 리커창과 VW 회장 마티아스 뮐러, 그리고 메르켈 총리 / 사진=VW


원론적 답변을 한 메르켈

메르켈 총리는 디젤의 끝을 예상해야 하느냐는 모터벨트의 질문에 "아주 먼 미래를 보면 그렇지만 그것이 언제라고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라는 원론적 대답을 했습니다. 수퍼일루와의 인터뷰에서도 유럽 각국에서 전기차에 대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옳은 것이라는 발언도 이어갔는데 이 역시 원칙적인 차원의 대답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것들을 종합해 보면 이렇게 정리가 될 수 있을 듯합니다.

전기차 정책도 필요하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는 전기차 시대가 일반화되기 전까지는 디젤이나 가솔린은 존재할 수밖에 없고, 디젤은 상대적으로 가솔린에 비해 기후변화 대응에 유리하다. 앞으로 디젤이나 가솔린이 만드는 배출가스를 더욱 줄여가도록 업계를 유도하겠다.

또한 메르켈은 전기차가 주행 중 오염물질을 뿜어내지는 않지만 전기가 생산되는 과정에서 많은 이산화탄소 등이 발생한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친환경 재생에너지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친환경 재생에너지가 일반화되기까지는 역시 시간이 필요합니다.


당근과 채찍 정책 병행할 수밖에 없는 메르켈

다임러 배터리 공장을 둘러보는 메르켈 총리 / 사진=다임러


메르켈은 전기차 백만 대 시대를 지난 선거에서 공약했습니다. 현재로 봐선 달성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녀는 독일 제조사들이 전기차 계획을 세우는 자리에는 늘 함께하며 독려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업계 일자리 문제, 또 독일 제조사들의 경쟁력을 유지시켜야만 하는 총리로서의 입장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 당장의 기후변화 대응, 독일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유지 및 일자리 안정성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그녀는 디젤을 붙잡고 갈 것입니다. 전기차에 대한 독일 제조업체의 투자가 디젤을 포기하고 진행되는 것이 아닌, 자금력을 가지고 엔진에 대한 투자와 병행하려 한다는 점도 정확히 메르켈의 방향성과 일치하는 대목이기도 하죠.


문제는 메르켈의 이런 방향성이 자국민을 설득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메르켈의 발목을 잡을 정도로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독일 자동차 업계를 향한 불신의 시선을 거둬낼 수 있는 강력한 공약들이 나와줘야 메르켈의 4선 길은 좀 더 수월해질 것입니다. 디젤을 어떻게든 붙잡고 가겠다는 메르켈. 디젤 조기 퇴출 찬성과 전기차로의 전환을 좀 더 강하게 원하고 있는 경쟁자. 과연 독일 국민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