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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운전공포증을 사회문제로 끄집어낸 독일

독일에는 운전에 대한 공포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약 백만 명가량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운전 자체에 대한 부담이 아닌, 교통사고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이들의 수치인데요. 자신의 이런 상태를 감추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 실제로는 더 많은 이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거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분석도 있습니다. 독일 연방교통연구소는 교통사고로 부상을 당했던 환자 중 1/4가량은 심적으로 큰 충격을 경험할 수 있다고 했고, 독일 도로안전 위원회(DVR)의 전문가는 운전공포증은 광장공포증과 연결될 수 있으며 외부의 여러 요인에 의해 발생하거나 심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진=픽사베이


베를린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얼마전 독일 자동차 포털 모터토크는 운전공포증을 겪고 있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사건은 대략 이랬습니다. 2016년 여름, 출근을 위해 자신의 포드 SUV를 운전하던 여성은 회사 근처인 시내에서 스포츠카에 차량 측면을 받히게 됩니다. 에어백이 터졌고 정신을 잃었죠.


충돌로 부상을 당한 그녀는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에어백 전개 과정에서 귀가 다치며 몸의 균형감을 상실해 귓속에 기계 장치를 달아야 했고, 한쪽 손은 마비증세를 겪게 됐습니다. 극심한 편두통으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죠. 또 일을 더는 할 수 없어 회사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녀는 정신적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였는데요. 운전을 좋아하던 이 40대 여성은 운전대를 잡는 것이 두려운 일이 됐고, 사고가 일어났던 도로 근처에는 트라우마로 인해 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사고 이후 너무 많이 그녀의 삶은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희망의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전문가들과 함께 하는'적응훈련'

운전공포증에 빠져 있던 그녀는 먼저 베를린에 있는 운전공포증 전문 면허학원 강사의 도움을 받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현장적응에는 또 한 사람, 트라우마 치료 전문가가 동석했죠. 먼저 그들은 한가한 아우토반으로 나갔고, 시속 80km/h를 목표로 천천히 속도를 높였습니다. 결국 그녀는 최고속도 110km/h까지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독일에는 수십 년 전부터 운전에 공포를 갖고 있는 운전자를 대상으로 하는 면허학원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 면허 학원을 운영하다 바꾼 경우가 많았고 아예 심리학자가 운전공포증을 치료하기 위해 강사 자격증을 취득해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고 이전 상태로 돌아가 운전을 다시 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이처럼 특수한 형태의 면허학원, 그리고 트라우마 치료사 등이 함께 운전자를 돕는 시스템은 법으로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사회 스스로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마련된 경우였습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신경을 쓰지 못하거나 외면하고 있던 운전공포증이라는 것을 사회적 문제로 끄집어내 공론화시키고 이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과정은 제게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또 한 가지, 이런 치료를 위해서는 비용이 들 수밖에 없는데요. 우리의 산재보험처럼 업무와 관련해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는 현장적응 훈련을 위한 별도의 금전적 지원도 받을 수 있습니다.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공포증을 극복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죠. 

사진=ADAC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

운전공포증은 아예 운전을 못 하는 경우부터 어느 정도 운전이 가능한 경우까지 그 범위가 제법 넓습니다. 문제는 운전 중 극심한 호흡곤란이나 어지러움 등을 경험할 수 있고, 이런 경우 운전자 자신은 물론 다른 이들에게도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따라서 도로 안전을 위해서라도 우선 운전공포증과 관련된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합니다.


또 교통사고를 당하고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치료하기 위한 체계적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합니다. 더는 개인이 알아서 극복하는 차원의 문제로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공적 영역으로 확장해 관심을 가져야 할 사회적 문제입니다. 자동차 사고 후 두려움에 아예 운전을 포기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예 이런 선택이 불가능한, 어쨌든 운전이 생업이거나 일을 위해선 운전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들이 겪는 아픔의 실체를 인식하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건강한 공동체는 이런 관심과 노력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