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폴크스바겐의 미국 파격 보증에 뿔난 독일인들

2015년 9월 프랑크푸르트모터쇼 시작과 함께 미국에서 날아온 디젤 게이트 소식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폴크스바겐은 하루아침에 부도덕한 기업으로 전 세계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죠. 미국에서 디젤차 시장이 막 성장하고 있던 때였고, 폴크스바겐을 비롯한 독일 완성차업체들이 디젤을 앞세워 공략을 본격화하던 시기에 터진 일이었습니다. 과욕이 부른 참사였죠.


폴크스바겐은 미국 정부 및 소비자와 협상에 들어갔고 적극적으로 보상과 대규모 투자 등을 약속했습니다. 한때 미국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지만 폴크스바겐은 결코 미국 시장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폴크스바겐은 또 하나의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한 정책을 내놨습니다. 신형 아틀라스와 티구안의 보증기간을 파격적으로 늘린 겁니다.

아틀라스 / 사진=폴크스바겐


인기 높은 SUV로 승부수 띄운 VW

폴크스바겐은 지난 11일 미국에서 6년 / 72,000마일(약 116,000km) 범퍼 투 범퍼 신차 보증제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는데요. 범퍼 투 범퍼는 미국에서 일반적 무상 보증을 얘기할 때 쓰는 표현으로, 이번 조건은 경쟁 모델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길고 파격적이라는 게 폴크스바겐의 설명이었습니다.


미국은 기본 보증기간(범퍼 투 범퍼), 그리고 여기에 엔진이나 변속기 등, 구동계 보증기간을 구분해서 두는 경우가 흔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예를 들어 포드 익스플로러나 혼다 파일럿, 토요타 하이랜더 등, 폴크스바겐 아틀라스의 경쟁 모델들 경우 기본 보증 3년 / 36,000마일, 엔진 구동계 보증 5년 / 6만 마일이고,


또 티구안의 경쟁 모델인 포드 이스케이프, 혼다 CR-V 등은 3년 / 36,000마일 기본 보증 엔진 구동계 5년 / 6만 마일 보증입니다. 그다음으로 현대가 기본 5년 / 6만 마일, 엔진 및 구동계 10년 / 10만 마일 보증제를 실시하고 있죠. 이에 비해 폴크스바겐은 아틀라스와 티구안 신형의 경우 기본 및 엔진 구동계 모두 6년 / 72,000마일 보증으로 통일했습니다.

미국 폴크스바겐 홈페이지에 나타난 보증 비교표 / 자료=vw.com


현대나 기아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는 폴크스바겐, 왜?

폴크스바겐 측은 현대와 기아를 별도로 언급하며 현대의 엔진 변속기 등에 대한 10년 / 10만마일 보증 기간보다는 짧지만 자신들의 조건이 더 좋다고 강조했습니다. 현대의 경우 처음 차를 구매한 사람이 보증 기간 안에 차를 팔게 되면 두 번째 오너는 10년 10만 마일 보증이 아닌 기본 보증으로 바뀌지만 폴크스바겐은 6년 / 72,000마일 조건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관련 소식을 접한 독일인들 반응

이 소식은 폴크스바겐의 고향인 독일에도 전해졌는데 어떤 반응들을 보였을까요? Nebelluchte라는 닉네임을 쓰는 한 독일 네티즌은 "유럽에서는 보상을 피하기 위해 법률적인 대응을 그렇게 철저히 해놓고서 특정 시장에서는 보증을 연장해준다고?" 라며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디젤 게이트 이후 폴크스바겐은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미미하지만 한국 등) 등을 제외하면 리콜 외에 어떤 보상 조치도 하지 않았죠. 운전자가 개별적 소송을 진행하는 것 말고는 공식적으로 보상은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라 밝힌 상태입니다. 더군다나 유럽에서 폴크스바겐의 보증기간은 2년으로 매우 짧습니다. 

티구안 / 사진=폴크스바겐


Killed_in_Action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네티즌은 "상관없다. 어차피 독일에선 그들(VW)이 뭔 짓을 하든 차를 사주지 않느냐."라고 했고, 또 Alfons007은 " 지금 이거 기아 얘기하는 거야?"라고 비꼬기도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기아는 유럽에서 7년 / 15만km 무상보증제도를 실시하고 있죠.


이번 폴크스바겐의 파격 보증에 대해 좀 다른 관점에서 불만을 토로한 네티즌도 있었는데요. Mann19라는 네티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은 어차피 독일이랑 시스템이 달라. 내 동생이 지금 미국에서 25년째 살고 있는데, 메인터넌스를 제때 하지 않아도 무상보증 서비스를 거절당하지 않거든. 독일은 메인터넌스에 해당하는 주행거리를 5,000km만 넘겨도 무상보증 서비스를 받지 못하지. 거기는 고객은 왕이고 여기는 거지야."


이에 대해 Jebo76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5,000km라고? 내가 알기로는 몇몇 제조사가 1,500km 아니면 2개월 정도 초과해도 봐주긴 하는데, 하지만 대부분은 0% 톨레랑스(무관용)야. 거기엔 폴크스바겐도 포함돼. 단 1km라도 거리를 넘기면 엔진이 망가지든 어쨌든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거지."


엄격한 자비 정비를 요구하는 독일

미국과 독일 모두 법으로 정한 차량 정기검사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죠. 다만   차이라면 규칙적으로 차량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독일 등이 비교적 엄격한 편입니다. 일정 주행 거리를 달리면 차량 계기반에 메인터넌스(자비 검사)를 받을 때를 알리는 정보가 뜨고, 그러면 주행거리나 해당 시기 안에 자비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만약 무상보증 기간에 이런 메인터넌스를 제대로 안 하게 되면 차량 관리를 소홀히 한 것으로 여겨 보증 혜택을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제조사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자기들이 정한 기준에 맞춰 적용하기 때문에 신경을 써야만 합니다. 중고차는 이런 엄격함이 덜한 편이지만 역시 메인터넌스 안된 차량은 중고차 시장에서 인기가 없기 때문에 이래저래 독일인들은 자비를 들여 정기적으로 차량을 체크하고 기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더 빛나는 현대 기아의 유럽 보증

자동차 잡지에 실린 현대차 광고. 좌측 하단에 무상보증 기간 표시가 큼지막하다


아틀라스와 티구안의 미국 내 파격적 보증제도는 독일의 짧은 무상보증 기간, 그리고 엄격한 메언터넌스 적용 등과 분명 대비됩니다. 당연히 부러운 시선, 불만 어린 목소리가 나오겠죠. 유럽에서 기아의 7년 / 15만km 무상보증이나 현대의 5년 / 무제한 무상보증이 큰 의미를 갖는 것도 이런 현실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르노도 유럽에서 5년 / 10만km 무상보증제를 실시하고 있는데요. 미국에서 폴크스바겐이 그러한 것처럼 유럽에서는 현대와 기아, 쌍용과 르노 등이 시장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상대적으로 공격적 보증 카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경쟁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또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이런 무상보증 카드는 계속 유력 카드로 쓰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