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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디젤차는 왜 고향에서 힘을 잃어가고 있나

유럽에서, 이 디젤 자동차의 천국에서, 요즘 디젤이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미국발 디젤 게이트 때문이냐고요? 물론 영향이 없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날갯짓은 유럽에만 바람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디젤 게이트를 일으킨 EA189 엔진 / 사진=폴크스바겐


신차도 중고차도 디젤 고전 중

유럽 몇 년 만에 처음으로 50% 이하로 떨어져

우선 독일에서 나온 자료 중 두 가지는 객관적으로, 그리고 유의미하게 디젤 자동차의 변화를 확인시켜 줍니다. 독일연방자동차청의 1분기 신차 판매 결과를 보면 2011년 독일의 디젤 신차 판매 비중은 49.6%까지 치솟았습니다. 거의 절반인데요. 하지만 계속 하락세를 보이는 중입니다. 2015년에는 48.0%, 2016년에는 45.9%, 그리고 2017년 1분기에는 42.7%까지 하락했죠.


유럽 전체로 보면 어떨까요? 작년, 수년 만에 처음으로 서유럽에서는 디젤 신차 판매 비중이 50% 이하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49.5%였다고 하는데 이는 2005년과 같습니다. 거의 10년 전 상황으로 되돌아간 것인데요. 1990년 유럽에서 디젤 신차 비중은 13.8%였다가 2006년 50%를 넘어섰고, 금융위기를 겪던 때를 제외하면 디젤은 유럽에서 50%를 넘는 비중을 차지하면 계속 성장 중이었습니다. 상징적 50% 선이 깨졌다는 것은 철벽같던 유럽의 디젤차 분위기에 명확하게 금이 간 것을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중고차의 경우는? 독일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독일을 대표하는 양대 중고차 사이트 중 한 곳인 모빌레(mobile.de)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중고 디젤차가 사이트에 매물로 올라와 고객에게 팔려나가는 평균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2015년 1월에는 평균 90일이 걸렸고, 2015년 12월, 그러니까 디젤 게이트가 터진 직후에는 평균 거래 시간은 79일로 오히려 더 짧아졌죠.


디젤 자동차 매물이 나오면 비교적 빨리 팔려나갔는데 공급보다 수요가 6% 정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해가 바뀌면서 분위기도 바뀌었는데요. 2016년 전체적으로 평균 거래 시간은 80일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올 1월에는 대기 기간이 93일까지 늘어났습니다. 팔려고 시장에 내놓은 디젤 물량은 계속 늘어났지만 차를 사려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줄어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게 mobile.de의 해석이었습니다. 

수출을 위해 선적 대기 중인 자동차들


이유 1. 밀어주던 정책에 변화가 찾아오다

첫 번째 이유로 정책의 변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간 유럽 여러 나라는 디젤 활성화 정책을 폈습니다. 디젤에 붙는 세금을 가솔린 보다 상대적으로 낮춰 기름값을 싸게 했고, 이는 디젤차가 성장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죠.


예를 들어 북미는 2017년 4월 23일 기준 가솔린 1리터 가격이 평균 889원인데 비해 디젤은 1,019원으로 디젤 가격이 더 비쌉니다. 반대로 유럽은 가솔린 1리터의 평균 가격이 1,485원인데 디젤 1리터 가격은 1,358원으로 더 저렴합니다. 그런데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이런 정책에 변화를 꾀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같은 곳은 디젤 수준만큼 가솔린에 붙는 세금도 낮추려하고 있는데요. 현재 프랑스는 가솔린 1리터 가격이 평균 1,692원인데 디젤 1리터 가격은 1,419원입니다. 독일도 프랑스와 비슷한 편차를 보입니다. 반대로 영국 같은 나라는 가솔린 가격보다 디젤 가격이 더 비싸죠. 실제로 디젤차 비중이 영국은 다른 유럽 나라보다 낮습니다.


또 노르웨이를 보세요. 2008년에 디젤 신차 판매 비중이 75%까지 치솟았던 곳이지만 현재는 30.8%까지 떨어졌습니다. 네덜란드도 디젤이 원래 강세를 보인 곳은 아니지만 1년 사이에 디젤 점유율이 29%에서 19%로 크게 줄었다고 독일 자동차 포털 모터토크는 전했습니다. 


특히 노르웨이나 네덜란드 등은 2025년까지 아예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에 합의를 한 상태죠. 노르웨이는 전기차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전기차를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는 소개해드렸지만 슈투트가르트 시가 내년부터 디젤 유로6 미만 모든 디젤차의 통행을 금지하기로 했습니다. 


특정 한 지역의 움직임이지만 이것이 독일 전역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벌써 여러 얘기가 나오는 상황입니다. 이렇듯 디젤차가 그간 누려온 여러 혜택이 사라지면서 그 영향은 계속 힘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유 2. 강화되는 배기가스 규제

이동용 배기가스 장치를 달고 주행 중인 자동차 / 사진=PSA


올 9월부터 유럽에서는 실험실에서만 해온 연비와 배출가스 측정이  실제 도로에서 행하는 방식(RDE)으로 전환되게 됩니다. 그동안 이산화탄소 중심의 배기가스 측정이었다면 이젠 이산화탄소와 디젤이 주로 내뿜는 질소산화물까지 측정하는, 보다 폭넓고 현실적 방향으로 바뀌게 되는 것인데요.


이처럼 강화되는 배출가스 규제로 일부 소형차에서부터 디젤 라인을 없애거나 줄이고 있다는 기사도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빈자리를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 등이 차지하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브랜드별 배출가스 평균치를 어떻게 해서든 기준치 이하로 낮추려 할 것입니다. 이것은 제조사에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이유 3. 디젤차 신차 가격은 오르고 중고차 판매가격은 낮아지고

사진=아우디


디젤차는 그동안 신차 가격은 물론 중고차 시장에서도 가격이 계속 상승하는 추세였습니다. 독일이 대표적인 곳이었죠. 하지만 정책의 변화 등에 따라, 또 일부 도심 진입 금지 등의 강경책에 따라 디젤 중고차 가격이 앞으로 10~20%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중고차 협회 전문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가격이 떨어졌다기 보다는 그간의 상승률이 한풀 꺾인 수준인데요. 시간이 지날수록 중고차 디젤 매물은 늘어나는 것에 비해 디젤차를 찾는 이가 줄어들기 때문에 가격은 어쩔 수 없이 떨어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고객들 입장에서는 디젤차에 관심은 덜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가격이 됐든 무엇이 됐든, 일단 소비자의 마음이 디젤에서 돌아서기 시작했다면 그 흐름을 돌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업무용 차로 디젤이 많이 선호되고 있지만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도 가격적인 경쟁력만 갖추면 그리로 돌아서겠다는 기업들도 많다고 하니, 확실히 디젤 우선주의였던 유럽 분위기가 바뀐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물론 SUV의 인기가 여전하고 또 자동차 회사들이 획기적으로 친환경적이고 경제적 디젤차를 내놓게 된다면 유럽 소비자 마음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디젤 게이트로 인한 반디젤 정서의 표면화, 언론과 학계, 그리고 환경단체 등이 디젤차에 대한 강한 압력을 가하는 등, 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습니다. 무엇보다 유럽연합 등, 정책적 차원에서 더는 디젤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면 유럽을 휩쓸던 디젤차 전성시대는 이쯤에서 막을 내린다 봐야 합니다. 유럽에서 디젤의 시대가 저물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