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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위험한 핸들봉, 벤츠와 아우디는 옵션?

우리나라 자동차용품점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 중에 핸들봉(또는 파워핸들)이라는 게 있죠. 운전대에 장착하면 편하게 핸들을 돌릴 수 있어 오랫동안, 꾸준히 애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핸들봉이 편하기는 해도 충돌이나 추돌 사고 시 안면부나 가슴 등에 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에 안전에는 도움이 안 됩니다.


핸들봉 외에도 뒷좌석에 아이들 놀 수 있게 매트를 깔기도 하는데 주행 중에 사용하면 매우 위험합니다. 어떤 안전장치 도움 없이 방치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또 벨트클립이라는 것도 있는데 안전벨트 조이는 느낌이 싫어 느슨하게 해주거나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았을 때 울리는 경보음이 막으려고 그 자리에 대신 끼워 놓기도 합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핸들봉 장착된 차량/ 사진= 홍성수 님 제공


벤츠와 아우디의 핸들봉 옵션

그런데 이런 일종의 편의 액세사리는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칭 타칭 자동차 문화에 앞서 있다는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런 물건이기도 하죠. 그런데, 얼마 전 일입니다. 벤츠 홈페이지에서 자료를 찾다 익숙하게(?) 생긴 물건이 옵션 목록에 들어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핸들봉이었습니다.

벤츠 일부 모델에 적용되고 있는 핸들봉 사양 / 출처=독일 메르세데스 벤츠 홈페이지

뜻밖의 것이었습니다. 설명문에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쥐고 편안하게 운전하라. 에어백은 정상적으로 작동되며, 핸들봉이 필요 없다면 버튼을 눌러 간단하게 분리할 수 있다.'라고 돼 있었습니다. 거기다 가격이 자그마치 우리 돈으로 50만 원. 안전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메르세데스 벤츠가 어쩌다 핸들봉 같은 것을 직접 판매하고 있는 걸까 의아했습니다. 


모델별로 찾아봤더니 A 클래스, B 클래스, C 클래스, 그리고 SUV에서는 GLA와 GLC 등에 이를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더군요. '혹 노년층 운전자를 배려한 그런 옵션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다른 독일 메이커는 어떤지 찾아 봤습니다. 아우디도 같은 옵션을 일부 모델들에 한해 적용할 수 있게 해놓았더군요. 가격은 벤츠의 절반 이하였습니다. 


핸들봉 주인은 따로 있다

일단 궁금증을 풀기 위해 검색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내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장애인용 자동차 콘텐츠에서 이 핸들봉의 쓰임이 드러난 것입니다. 운전대 쥐는 게 불편한 장애인 운전자를 위한 것으로, 굉장히 다양한 형태의 핸들노브가 있었고, 방향지시등과 경적을 울릴 수 있는 멀티형 핸들봉까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멀티 핸들봉 / 사진=petri-lehr 카탈로그

자세히 보니 메르세데스나 아우디에도 고가이긴 했지만 이 멀티 핸들봉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독일은 교통법에 핸들봉의 쓰임새를 분명하게 정해놓고 있었는데요. 우선 장애인차량, 또는 장애인을 위한 운전연습용 차량에 장착할 수 있습니다. 만약 비장애인이 운전할 경우에는 반드시 이것을 탈착해야 합니다. 따라서 장애인용이라 할지라도 고정식은 불법입니다.


그렇다면 장애인용만 있느냐? 트랙터, 건설 현장, 또는 벌목용에 쓰이는 특수 차량에도 이런 핸들봉을 장착할 수 있습니다. 비교적 저렴하고 쉽게 구입이 가능한데요. 우리가 승용차용으로 흔히 사용하는 핸들봉이 여기서는 특수차량용에 쓰이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한마디로 독일에서는 장애인 차량과 특수차량 외에는 핸들봉이라는 것을 쓸 수 없습니다.

장애인용 특수차량 / 사진= petri-lehr 카탈로그

또 한가지 우리와 다른 점이라면 제조사 홈페이지에 장애인 운전자를 위한 옵션이 사진 및 설명, 그리고 가격이 함께 공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차에 어떤 장애인용 옵션이 적용될 수 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했습니다. 물론 상담을 통해 우리나라 제조사 역시 장애인 차량 옵션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홈페이지 등을 통해 내용을 미리 어려움 없이 파악할 수 있게 해주면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독일 벤츠의 경우 앞서 소개해드린 핸들봉 외에도 장애인용 방향지시등 레버, 페달 사용을 쉽게 한 커버, 또 승하차 시에 쓰이는 차량 보호대, 오른발을 쓸 수 없는 운전자를 위한 가속페달 위치 변경 등의 서비스, 여기에 손으로 가속하고 제동할 수 있는 특수 변속 장치까지. 생각보다 다양한 장애인용 사양을 홈페이지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피했습니다. 조금만 꼼꼼히 살폈어도 내가 생각한 핸들봉과는 다른 개념의 것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제 우리도 핸들봉은 장애인용 차량이나 특수 작업차량 외에는 쓰지 않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이를 법으로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핸들봉뿐만이 아니라 안전을 헤치는 액세서리는 어떤 것도 사용하지 않아야합니다.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