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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당신의 자동차에 안전조끼를 놓아두세요

바야흐로 선거철입니다. 여러가지 공약이 국민에게 제시되는 시기이기도 하죠. 공약이니 정책이니 하는 것들을 보면서 문뜩 이런 질문을 해보게 됩니다. '만약 지금 내게 당장,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교통정책을 하나만 만들어보라고 한다면 난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그동안 자동차나 교통 관련 글을 쓰면서 여러 의견을 냈습니다. 꽤 거대한 담론부터 공격적 의견까지, 다양한 주장을 펼쳤죠.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조건이 붙었습니다. 법이 만들어졌을 때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효과도 있어야겠죠. 고민 끝에 '안전조끼 의무화'를 저는 선택했습니다.

안전조끼 착용 모습 / 사진=tuv.com


늘어나고 있는 교통사고 2차 피해자

교통사고 사망자가 계속 감소하고 있지만 오히려 2차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2차 사고의 치사율은 매우 높은데요. 특히 야간에 고속도로 등에서 갑자기 차가 고장이 나거나 추돌 사고 등을 당했을 때 2차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고를 수습하겠다며 수신호 등을 보내다 미처 이를 발견 못하고 달려오던 차에 치였다는 뉴스 등을 본 기억이 한 번쯤은 있을 겁니다.


보통 추돌 사고나 고장이 났을 땐 차량을 갓길로 옮기고 삼각대나 불꽃 신호기 등을 설치한 뒤 차로 바깥으로 피하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사실 이게 가장 좋습니다. 그런데 차량을 이동시키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또 1, 2차로에서 사고를 당해 탑승자만 빠져나와야 하는 경우, 가드레일 밖으로 이동하는 것도 다른 차들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 등에선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 안전조끼는 내 위치를 다른 차량 운전자에게 알리는 아주 좋은 도구가 됩니다. 


안전조끼 의무화한 나라들

얼마 전 독일에서 어두운 국도에서 고장 난 차를 세우고 수리를 하려던 운전자가 트럭에 치인 사고가 있었습니다. 가로등이 없는 곳이었고 하필이면 검은색 외투를 입고 있어서 트럭 운전사가 이 피해자를 제대로 보질 못했다는 게 증언 내용이었습니다. 만약 안전조끼를 입었더라면 어땠을까요?


독일에서는 지난 2014년 7월부터 독일에서 등록된 자동차, 트럭, 버스 모두에 안전조끼가 비치되어 있어야 한다는 법이 실행되고 있습니다. 오토바이의 경우 제외되어 있지만 바이크와 캠핑카 등도 안전조끼를 비치하라 권하고 있고, 또 어두운 도로를 이용하는 보행자나 자전거 등도 안전을 위해 안전조끼 입는 것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일단 차량 내 비치는 물론 탑승자 수에 맞게 차량에는 안전조끼가 비치되어 있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만 안전조끼를 꼭 착용해야 한다는 것까지는 법으로 강제하지 않고 있는데 다른 나라처럼 착용까지 법으로 정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독일이 안전조끼 비치를 법으로 규정한 것은 안전조끼가 차량 대 인명 사고 비율을 줄이는 효과를 확인했기 때문인데요. 그렇다면 독일 외 유럽에는 어떤 나라들이 법으로 정해놓고 있을까요? 

<안전조끼 관련 규정이 있는 국가들>

벨기에 : 오토바이를 포함 모든 차량에 있어야 하며 반드시 착용해야. 차량당 최소 1개의 안전조끼 비치. 벌금(55유로~1,375유로).

불가리아 : 차량 탑승자 모두 안전조끼 착용. 오토바이 포함. 벌금 최소 25유로.

핀란드 : 모든 탑승자 수에 맞게 비치 및 착용. 일기가 나쁘거나 야간 보행 시 보행자도 포함. 벌금은 없음.

프랑스 : 자동차 및 오토바이 모두 대상. 야간에 자전거 역시 해당. 벌금은 최소 90유로, 자전거의 경우 벌금 22유로부터.

이탈리아 : 역시 탑승자 인원수에 맞게 비치 및 위급상황에서 반드시 착용해야. 벌금은 35유로~140유로.

포르투갈 : 자동차 오토바이 모두 포함. 외국인이 빌린 렌터카 역시 대상임. 벌금은 미비치에는 최소 120유로, 미착용 시에는 최소 60유로.

이 외에도 노르웨이, 크로아티아, 룩셈부르크, 루마니아, 세르비아, 오스트리아, 스웨덴, 스페인,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체코, 헝가리, 독일 등이 안전조끼 비치나 착용을 법으로 정해놓고 있습니다. 구체적 내용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고 벌금도 최고 2000유로 이상(오스트리아)인 경우까지 다양합니다.

자전거 운전자도 안전조끼 착용을 권하는 나라가 많다 / 사진=tuv.com

생각보다 많은 나라가 안전조끼를 갖추도록 법으로 정해놓고 있죠? 그중에는 자전거는 물론 보행자(룩셈부르크, 핀란드, 헝가리)도 상황에 따라 반드시 안전조끼를 입게끔 한 나라들도 있습니다. 그만큼 안전조끼의 중요성이 인정된다고 하겠습니다. 


보관은 트렁크가 아닌 실내

법으로 정했으니 구입해 놓긴 했지만 의외로 독일의 많은 운전자들이 안전조끼를 트렁트에 놓아둔다고 합니다. 그래서 안전조끼를 어디다 두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캠페인까지 벌일 정도입니다. 차 밖으로 나오는 순간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에 가장 좋은 것은 차 안에서부터 조끼를 입고 나오는 것입니다.

안전조끼가 놓여 있어야 할 적절한 위치를 안내하고 있다/ 사진=폴크스바겐 재무팀 캠페인 유투브 영상 캡처


등하굣길 아이들에게도 필요한 안전조끼

독일은 법으로 강제하고 있지는 않지만 특히 아이들, 그리고 애완동물의 안전조끼 착용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독일 완성차 업체나 자동차 관련 단체들은 어린이 교통안전을 위한 많은 활동을 하는데, 그중 중요한 것이 바로 안전조끼 보급과 교육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도로를 횡단하며 등하교해야 하는 우리나라 초등학교 저학생들만이라도 안전조끼를 꼭 입혔으면 하는 생각인데요. 안전조끼는 가격도 저렴할 뿐만 아니라 마트나 인터넷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안전조끼 착용한 독일 초등학생들 / 사진=ADAC


우리도 안전조끼 의무화 필요

제조사는 신차 출고 시 기본 비치

도로 청소하는 분들, 도로변에서 공사하는 분들 모두 안전조끼나 안전띠가 달린 복장을 하고 일합니다. 자동차 탑승자도 마찬가지죠. 도로에 나서는 순간 예외 없이 누구나 사고 위험에 노출됩니다. 따라서 우리도 더 늦지 않게 안전조끼 의무화를 실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안전조끼는 가격이 저렴하고 보관 부담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고 예방에도 분명 도움이 됩니다.


제조사들도 동참 가능합니다. 신차 출고 시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잡고 안전조끼를 비치해주면 어떨까 싶네요. 비용 부담 크지 않으면서 고객의 안전을 생각하는 좋은 마케팅이라 생각합니다. 또 자동차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자전거 타는 아이들, 등하교 시 횡단보도 등을 이용해야 하는 학생들도 안전조끼를 습관처럼 착용하게끔 부모와 사회가 더욱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거대한 시스템 개선이나 강력하고 지속적 단속 등을 통해 위험을 억제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작은 규칙을 만들고 이를 적용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쌓이는 것, 그래서 더 나은 도로환경, 더 안전한 교통문화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안전조끼 당장 장만해 우리부터 실천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