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건은 SUV라는 강력한 대체자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존재감 없던 한국에서 더는 관심을 끌기 어려운 차가 됐습니다. 하지만, 그렇지만, 그럼에도, 왜건이 주는 장점은 분명합니다. 실용성, 안락함, 주행 안정감 등이죠. 알면 알수록,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게 왜건입니다.
하지만 제가 모든 왜건에 매력을 느끼는 건 아닙니다. 독일 도로를 질주하는 무수한 왜건 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차들이 있는데 오늘 소개할 게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디자인, 운전의 재미, 경제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용성 등, 4가지 항목으로 나눠 베스트를 꼽아봤습니다. 주관적 기준에 따른 결과이니 이점은 참고바랍니다.
스타일 : 아우디 A4 올로드 콰트로
사진=아우디
오래전부터 제 글을 읽어 왔던 분들이라면 올로드 콰트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알고 계실 겁니다. A4 올로드 콰트로의 신형이 2016년 초에 나왔고 언제나처럼 제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전 모델에 비해 조금 차체가 커졌지만 90kg 감량했고, 왜건의 중요 덕목 중 하나인 트렁크 용량도 늘었습니다. 경제성과 실용성 모두 조금 발전했다 볼 수 있겠는데요.
기본 세단이나 왜건에 비해 올로드 콰트로는 온로드와 오프로드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차체 높이가 조금 더 높은(34mm) 편입니다. 이 정도 차이라면 꽤 두꺼운 책 한 권을 깔고 앉은 정도의 높이라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전방 시야 확보에 좀 더 도움이 될 겁니다.
물론 이런 차를 끌고 산길을 달릴 일은 그리 많지 않겠죠. 하지만 SUV 보다는 덜 껑충해 안정감을 고속도로 등에서 얻을 수 있고, 조금이나마 지상고를 올린 덕에 시야 확보에도 도움이 됩니다. 거기다 약간 밋밋할 수 있는 왜건 디자인에 엣지를 줘 차별화도 꾀했습니다. 아우디의 높은 마감 완성도와 좋은 디자인이 함께 하는 올로드 콰트로는 여전히 제 신차 구매 목록 최상위에 위치해 있습니다.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엔진은 2.0 TDI(190마력)이고 252마력짜리 2.0 가솔린 모델도 추천할 만합니다.
재미와 성능 : 메르세데스 CLA 슈팅 브레이크
사진=다임러
처음 CLA가 나왔을 때 뒷좌석 공간에 경악했던 분들이 많았습니다.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평가와 함께 과연 얼마나 팔릴까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죠. 그런데 막상 판매에 들어가니 젊은 층에서 CLA를 많이 구매했습니다. 독일에서는 그래서 CLA가 벤츠의 노년 이미지를 A클래스와 함께 해소한 자동차로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깜짝 놀란 게 CLA 4도어 쿠페를 운전하는 독일인들 중 젊은 남녀의 비율이 상당히 높아 보였다는 점이었는데요. 하지만 저보고 선택하라고 한다면 무조건 CLA 슈팅 브레이크입니다. 우선 가격을 보자면 CLA 250 스포츠 세단형(45,184유로부터 시작)과 왜건인 250 스포츠 슈팅 브레이크(45,779유로부터 시작) 가격 차이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트렁크의 경우 기본형이 470리터(나 된다고?)이고 슈팅 브레이크는 495리터라고 하니 생각만큼 큰 차이는 안 납니다. 하지만 뒷좌석이 접히지 않는 구조 탓에 쿠페형은 더 이상 확장이 되지 못한 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반면 슈팅 브레이크는 최대 1354리터까지 쓸 수 있죠. 겨울 타이어 여름 타이어를 갈아 바꿔 끼워야 하는 독일인들에게 뒷좌석 폴딩 여부는 중요합니다.
또 45 AMG같은 경우 381마력까지 힘을 낼 줄 압니다. 아우토반에서 질주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물론 E시리즈 왜건에도 적용되는 AMG이지만 코너링 등, 전체적으로 운전의 재미 측면에서는 작은 차에 뒤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격도 물론 한참 아래이고요. 이래저래 CLA 슈팅 브레이크는 왜건으로 운전의 재미를 얻을 수 있는 흔치 않은 모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 그리고 스타일도 실제로 보면 상당히 멋집니다.
경제성 : 르노 클리오 Grandtour
사진=르노
B세그먼트 소형 해치백이 왜건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요즘은 거의 없는데요. 르노 클리오는 GT 모델을 둬 소비자들에게 또 다른 선택지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가격 부담이 덜한 소형 왜건이라는 점도 매력이고, 또 요즘 르노 디자인이 확실히 좋아졌기 때문에 스타일에서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습니다.
우선 클리오 GT는 4.267mm의 전장을 보입니다. 이건 클리오 해치백(4,063mm), 그리고 같은 소형급 캡처(한국 수출명 QM3, 전장 4,122mm)보다도 길죠. 그냥 길기만 한 게 아니라 트렁크 용량도 만족할 만합니다. 3개 모델 용량 비교를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클리오 해치백 : 기본 230- 최대 1146리터
클리오 왜건형 : 기본 400- 최대 1380리터
캡 처 : 기본 377- 최대 1235리터
클리오 왜건인 GT가 트렁크 용량이 가장 좋네요. 차량 가격의 경우 캡처가 가솔린(118마력) 모델 독일 기준으로 18,890유로부터 시작하는 데 반해 같은 엔진을 쓰는 클리오 GT는 17,390유로부터 시작됩니다. 스타일에서는 보다 깔끔한 캡처가 낫다고 보지만 가격이나 트렁크 용량 등에서 클리오 GT가 더 낫기 때문에 실용파들에게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아쉬움이라면 클리오 해치백에 적용되는 고성능 버전인 R.S.가 왜건형에는 없다는 것인데요. 다시 말하지만 클리오 GT는 경제성과 실용성을 함께 염두에 뒀을 때 매력적인 자동차입니다. 거기에 소형 왜건치고는 스타일 균형감도 좋은 편이라 클리오 전체 판매량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실용성 : 스코다 수퍼브 왜건
사진=스코다
실용주의 타이틀이 있어 만약 트로피를 쥐여준다면 스코다 수퍼브 왜건이 받아야 할 겁니다. 스코다가 현재 내놓고 있는 가장 큰 사이즈(그래봐야 D세그먼트) 모델로, 나름 고급스럽게 구성을 한다고 했지만 역시나 강점은 좋은 섀시와 좋은 공간 및 그 활용성에 있다 하겠습니다. 한 가지 비교를 해보도록 하죠.
수퍼브 왜건은 기아 K5 스포츠 왜건과 비슷한 크기를 보입니다. 하지만 휠베이스와 트렁크 용량 등에서 차이가 제법 있는 편이죠. 수퍼브 왜건의 트렁크는 기본 660리터로 D세그먼트, 그러니까 중형급에서는 탑 수준입니다. 뒷좌석 폴딩 시 최대 용량은 자그마치 1,950리터까지 늘어나죠. 넓게 열리는 트렁트 문은 짐 싣고 내리기에 최적화돼 있습니다.
기아 K5 스포츠 왜건의 경우 기본 트렁크 용량이 552리터에 최대 1,686리터이니까 차이가 좀 있죠? 거의 같은 크기의 차량인데 공간 뽑아내는 실력은 확실히 스코다가 우위에 있습니다. 이점은 스코다 자신들도 잘 알고 있고 그 점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스코다 수퍼브 왜건은 또 SUV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공간 능력을 보이는데요.
현대 7인승 SUV 그랜드 산타페의 경우 트렁크 용량이 기본 516리터, 최대 1,680리터 수준밖에 안 됩니다. 오히려 기아 K5 스포츠 왜건보다 수치상으로 공간이 더 적습니다. 거기다 수퍼브 왜건은 할 수 있는 한 거의 모든 부분에 수납 기능을 두고 있죠. 수퍼브만큼 넓고 다양한 수납 기능을 담당하는 모델이 과연 있기나 할까 싶을 정도입니다.
쉽게 사라지지 않을 왜건 문화
요즘 왜건은 예전의 깍두기, 혹은 두부 잘라 놓은 것 같던 각지고 투박했던 이미지는 거의 없습니다. 아니 아예 없다고 해도 될 정도죠.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좋고, 또 봐도 봐도 질리지 않습니다. 거기에 공간 능력은 짐을 많이 싣거나 큰 짐을 자주 실어야 하는 이들에겐 경험해보면 바로 답이 되는 그런 만족감을 선사합니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한국에서는 찬밥 취급이 예상되는 차종이지만, 또 SUV에 밀려 점점 그 영역을 잃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유럽 등에서 왜건은 결코 쉬이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오늘 소개한 이런 수준의 왜건들이 계속 등장해주는 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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