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자동차 기업의 조직도는 복잡합니다. 보통 개별 브랜드를 거느리는 그룹 형태로 되어 있는데요. 각 브랜드를 총괄하는 최고 경영진이 있고 다시 그 아래로 브랜드별 세부 조직망을 갖추고 있죠. BMW도 마찬가지입니다. BMW, 미니, 롤스로이스, 오토바이 브랜드인 BMW 모토라트, 그리고 다시 BMW 브랜드 내에서도 전기차 부분인 i 브랜드와 고성능 브랜드인 M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브랜드별로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는 총괄디자이너가 그룹 총괄 디자이너 밑으로 포진됩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시작해 BMW 내부 사정과 맞물리며 수석디자이너들의 연쇄 이동이 발생했습니다. 가장 큰 관심은 BMW 브랜드 디자인을 총괄하던 카림 하비브(Karim Habib)였죠.
카림 하비브/ 사진=BMW
중국 아닌 일본으로 가다
독일 언론들은 카림 하비브가 중국이 아닌 일본 인피니티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인피니티는 닛산이 만든 고급 브랜드로 도쿄와 베이징, 런던과 미국 샌디에이고에 자리하고 있는 디자인센터를 총괄하게 됩니다. 대체로 언론들은 그간의 움직임(?)으로 봐서 중국계 회사로 가는 게 아닌가 추측을 했지만 목적지는 일본이었습니다.
40대 후반의 캐나다 국적 레바논계 카림 하비브는 1998년부터 BMW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2009년에 라이벌 업체인 메르세데스 벤츠로 옮겼지만 자리를 잡지 못하고 2년 만에 BMW로 돌아왔고, 2012년 브랜드 디자인을 총괄하는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는데요.
하지만 최근 올 초 BMW와의 인연을 끝냈습니다. 라이벌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밀리며 발생한 갈등이 회사와 결별을 하게 만든 것 아니냐는 루머가 있었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려진 바 없습니다. 그의 인피니티 선택 이유가 디자인적 성취인지, 아니면 안정적 수장 자리를 위함인지는, 앞으로 그가 내놓을 디자인을 통해 평가되지 않을까 합니다.
1년도 안 돼 3명의 수석 디자이너를 잃은 BMW
그런데 카림 하비브의 갑작스러운 사표 제출 이전 이미 1년 전부터 BMW 디자인 파트에서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지난해 4월 BMW 전기차 브랜드인 i의 핵심 인력 4명이 중국의 스타트업(창업기업) 업체로 일순간 옮겨갔습니다. i8 프로젝트를 이끌던 카르스텐 브라이트펠트가 퓨처 모빌리티의 CEO로 가며 3명의 인력이 함께 움직인 것인데요.
i 브랜드 생산관리를 책임지던 헨드릭 벤더스, 전기파워트레인 개발자였던 덕 아벤드로스, 그리고 프랑스 출신으로 i 시리즈 디자인을 책임졌던 디자이너 베노아 야콥(Benoit Jacob) 등이었습니다. 퓨처 모빌리티는 텐센트와 애플 생산업체 폭스콘 등이 자본을 출자해 만든 전기차 회사로, 구글이나 테슬라 등의 인력을 대거 스카우트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BMW 그룹 디자인을 지휘하는 아드리안 반 후이동크(우측)과 함께 한 베노아 야콥(좌측) / 사진=BMW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i8 / 사진=BMW
그리고 핵심 인력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BMW에게 다시 한번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베노아 야콥이 떠난 지 얼마 안 지나 다시 중국의 신생 자동차 업체인 보그워드는 MINI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 앤더스 워밍(Anders Warming)을 자사 디자인 총괄로 임명한 것이죠.
미니 클럽맨과 콘셉트카인 수퍼레제라 디자인으로 알려진 앤더스 워밍은 BMW에 사표를 낸 지 단 3주 만에 보그워드로 옮겨 말이 좀 많았던 듯합니다. 보그워드는 처음에는 독일에서 만들어진 자동차 회사였지만 1970년대 들어서며 사라졌다가 브랜드를 중국 자본이 사들이며 중국 자동차 회사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미 SUV를 공개한 보그워드는 올해부터 앤더스 워밍과 함께 본격적인 유럽 디자인 시대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작년 BMW 100주년 행사에서 선보인 미니 비전 Next 100 모델 앞에선 앤더스 워밍 / 사진=BMW
수혈은 전 폴크스바겐 출신들로
1년도 안된 시간 동안 핵심 디자이너 3명을 잃은 BMW는 디자인을 이끌 총괄 디자이너들을 찾아야 했죠. 그리고 그 자리는 폴크스바겐 그룹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두 명에게 돌아갔습니다.
조제프 카반 / 사진=BMW
우선 BMW 브랜드 디자인을 책임질 수석 디자이너로 조제프 카반 (Jozef Kaban)이 선택됐습니다. 체코 출신인 조제프 카반은 1999년 폴크스바겐의 하이퍼카 브랜드인 부가티에서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후 자리를 옮겨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아우디 외관 디자인을 책임졌고, 다시 2008년부터는 역시 폴크스바겐 그룹 내 체코 브랜드인 스코다에서 일해왔습니다.
스코다 출신을 BMW 브랜드 총괄 디자인으로 선택한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사실 고개를 갸웃하게 합니다. 스코다는 고급 브랜드도, 그렇다고 디자인이 좋은 브랜드도 아니기 때문인데요. 그래도 어떤 가능성, 그리고 BMW에 새로운 디자인의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 있다고 경영진은 판단한 듯합니다. 조제프 카반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부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즐길 수 있다면 새로운 변화가 가능하리라 기대합니다.
도마고 두케(사진 맨 우측) / 사진=BMW
그리고 앞서 소개한 i 브랜드 디자인 책임자 베노아 야콥의 후임도 결정이 됐죠. 좀 더 젊은 디자이너 도마고 두케(Domagoj Dukec)에게 총괄 자리가 돌아갔습니다. 막 마흔을 넘긴 도마고 두케는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독일 포르츠하임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후에 폴크스바겐과 푸조 시트로엥에서 일했고 2010년 BMW 디자인팀에 합류했습니다.
위기는 기회다
베노아 야콥과 함께 i 브랜드 디자인을 해왔기 때문에 도마고 두케의 i 브랜드 총괄 임명은 내부 승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듯한데요. 이처럼 자동차 업계에서 디자이너나 엔지니어들은 수시로 회사를 옮기거나 스카우트 되며 다양한 경력을 쌓아가는 게 일반적입니다. 어떤 이는 좋은 조건을 따라, 어떤 이는 디자인 철학이 맞지 않아서, 또 어떤 이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BMW는 이번 수석 디자이너 연쇄 이동을 통해 어수선할 수 있는 분위기를 빠르게 다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 BMW 디자인을 그리워하는 팬들을 위해서도 이번을 기회로 삼아 키드니 그릴과 호프마이스터 킥 등으로 대변되는 BMW 디자인 전통이 유쾌하게 되살아날 수 있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
2002 터보 / 사진=BM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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