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임러는 지난 화요일 저녁 콘셉트 X클래스라는 픽업의 콘셉트 카를 선보였습니다. 프리미엄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픽업 전용 플랫폼을 가지고 픽업트럭을 생산하게 됐다며 목소리를 높였죠. 하지만 벤츠의 픽업은 X클래스가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픽업을 만들어 왔고, 다양한 시도를 했었는데요. 오늘은 벤츠의 잘 알려지지 않은 픽업의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콘셉트 X클래스 / 사진=다임러
벤츠 170 V 픽업 (1946-1949년)
1936년 베를린 자동차 박람회에는 굉장히 의미 있는 자동차 한 대가 등장합니다. 처음으로 세단에 디젤 엔진을 올린 메르세데스 260D(제조명 W138)가 그 주인공인데요. 이 화제의 모델과 함께 소개된 자동차 중에는 170 V(제조명 W136)도 있었습니다. 세단과 카브리올레, 로드스터 등 다양한 형태로 출시된 170 V는 E클래스의 원조로 유명해지게 되죠. 가끔 전후에 나온 170 V가 E클래스 원조로 이야기되기도 하는데 다임러는 공식적으로 1936년 모델을 원조로 보고 있습니다.
1939년형 170 V 카브리올레 / 사진=다임러
1942년까지 7만 대 이상 만들어진 170 V(여기서 V는 독일어로 Vorn '앞'이라는 뜻으로, 엔진이 앞에 있다는 것을 의미함)는 이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생산이 중단되게 되는데요.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은 영국, 프랑스, 미국 등에 의해 관리되었고, 연합국 측은 다임러가 패전 후 자동차를 생산하되 승용차보다는 픽업이나 밴, 그리고 구급차 등을 우선 만들도록 명령했습니다. 결국, 회사는 이듬해 승용 모델을 내놓기 전까지 전쟁 전 소개했던 모델 170 V를 가지고 픽업을 우선 만들게 되는데, 이게 첫 번째 메르세데스 벤츠의 픽업 도전이었습니다.
170 V 픽업 / 사진=다임러
170 V 픽업. 인력도 부품도 부족한 가운데 어렵게 만들어진 모델이라고 하네요. / 사진=다임러
벤츠 220 D 라 픽업 (1971-1975)
메르세데스 E클래스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4세대 모델 W114/115은 벤츠 모델로는 처음으로 백만 대 판매를 넘긴 자동차로 의미가 있습니다. 1968년부터 1976년까지 벤츠 200, 200 D, 220 D, 280 등, 다양한 버전으로 독일과 남아프리카 공화국, 포르투갈과 아르헨티나 공장에서 만들어지며 2백만 대에 가까운 판매량을 올렸죠. 특히 스트로크 8이라는 별명이 붙으며 간편한 작동과 좋은 내구성으로 인해 독일에서는 택시로 인기가 높았던 모델이기도 했습니다.
벤츠 200 D 택시, 1973년 / 사진=다임러
그런데 W115 모델은 아르헨티나에서 몇 년 동안 픽업으로 개조돼 판매가 되는 독특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당시 아르헨티나 정부가 수입차에 대한 관세 조치 등을 취하며 사실상 수입차 수입이 금지된 상태였습니다. 이런 조치를 우회하기 위했던 모델이 바로 220D 개조한 '라 픽업(La Pickup)'이었죠.
컨셉트 X 클래스 론칭 때 '라 픽업' 부분을 언급하고 있는 디터 체체 회장 / 사진= 컨셉트 X클래스 론칭 라이브 영상 캡처
비록 궁여지책으로 나온 해법이긴 했지만 당시 아르헨티나에서 만들어진 세단 베이스의 '라 픽업'은 이제 클래식카 시장에서는 가치가 있는 자동차로 주가를 올리고 있습니다. 또 W115는 독일에서도 픽업으로 만들어진 적이 있는데요. 다임러 차를 이용해 영구차나 대형 리무진 등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회사 빈츠(Binz)에 의해 소량이 주문 생산된 역사가 있습니다.
빈츠가 만든 220 D 픽업 / 사진=다임러
메르세데스 바리오 리서치 카 (1995년)
1995년 다임러는 제네바 모터쇼에 매우 특이한 자동차 한 대를 내놓습니다. 메르세데스 바리오 리서치 카(Mercedes Vario Research Car)라는 긴 이름의 이 콘셉트 카는 하나의 차체에 뒷부분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에 따라 총 4가지의 차종으로 변신할 수 있었습니다.
메르세데스 벤츠 바리오 리서치 카 / 사진=다임러
사진=banovsky.com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 (CFRP)와 알루미늄 등, 첨단 소재를 사용했던 차체는 무척 가벼워 15분 만에 교체가 가능하다고 다임러는 밝혔습니다. 2도어 쿠페와 왜건, 그리고 카브리올레와 픽업까지. 총 4가지 차량으로 변신이 가능했던 이 콘셉트 카는 컬러 디스플레이가 적용되는 등, 당시로써는 상당히 앞선 여러 가지 기술과 개념을 가지고 모터쇼 관람객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물론 이 차는 양산되지 않았습니다.
이 외에 한 가지 더 픽업 도전기에 넣을 수 있다면 오프로더 G바겐의 변형 모델 G 6X6이 아닐까 합니다. 오프로더이긴 하지만 엄연히 오픈된 짐칸이 존재하는 픽업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요. 지금까지 소개된 다임러 4가지 모델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처음부터 픽업트럭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세단이나 SUV에서 파생된 것들이란 점입니다. 이에 비해 새로 론칭된 X클래스는 처음부터 픽업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작들과 다르다 하겠습니다.
G 6X6 / 사진=다임러
프리미엄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전문 픽업 라인업을 구축해나갈 예정인 벤츠. 유럽과 호주,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은 2017년 말부터, 그리고 남미는 2018년부터 본격적인 판매에 들어가게 됩니다. 픽업의 나라인 미국과 캐나다가 빠진 이유를 독일의 한 전문지는 큰 픽업을 선호하는 북미 취향엔 X클래스 차체가 다소 작기 때문에 일단 제외됐다는 내부 관계자의 발언을 소개하기도 했는데요. 과연 그 이유뿐인지는 좀 더 알아봐야 할 듯합니다. 벤츠의 픽업 도전,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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