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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여자만을 위해 만들어진 차는 왜 없을까?


여성 운전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실제 규칙적으로 운전하는 여성이 몇 명이나 되는지, 이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유럽에서 분석되는 걸 보면 대략 남성 운전자의 30~40% 수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죠. 그래서 여러 자동차 회사들은 여성 운전자들의 소비성향, 그리고 운전문화 등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한 번 소개해드린 적 있는데, 오펠 마케팅을 담당하는 티나 뮬러 씨는 쌍둥이칼로 유명한 헨켈에서 일하다 오펠로 스카웃이 된 여성 임원입니다. C세그먼트 이하의 작은 차가 주력인 오펠 입장에서는 여성 고객은 매우 중요하고, 따라서 티나 뮬러 씨와 같은 여성이,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 고객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것은 자연스럽기까지 합니다. 닛산 유럽 법인도 20년 째 여성 운전자들의 소비성향을 분석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도 여성 임원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죠.

르노 트윙고 / 사진=르노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소형차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고 여성 운전자에 대한 제조사의 관심이 적어 그런지 몰라도 여성 임원이 대외적으로 활동을 하는 경우도, 또 여성 고객만을 타깃으로 한 마케팅도 찾아 보기 쉽지 않습니다. 어쨌든 상황은 여성 운전자의 비중이 높아가고 있고, 그만큼 주요 소비군이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나올 법한 질문이 생길 겁니다. '왜 여성만을 위한 여성용 차는 없는 걸까?'하고 말이죠. 


볼보의 여성용 차 도전

이 의문을 일부 풀어 줄 만한 경우가 2004년 제네바모터쇼에서 있었습니다. 당시 볼보는 여성들로만 구성된 팀을 사내에 꾸려 YCC라는 컨셉트카를 만들게 됩니다. Your Concept Car의 약자로, 여기서 YOU는 여성을 의미하겠죠? 볼보가 이런 시도를 한 이유는, 우선 주요 시장인 미국에서 볼보를 구입하는 여성의 비율이 당시 기준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높았기 때문이고, 여성들이 자동차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해소하면 자연스럽게 남성 운전자들의 불편도 해소된다는 내부의 의견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습니다. 

YCC와 프로젝트팀 / 사진=볼보

하지만 YCC를 놓고 과연 '여성전용차'라는 게 필요한지 뜨겁게 토론이 이뤄졌고, 상황을 비판적으로 본 볼보는 이 차를 컨셉카로만 끝내기로 결정을 합니다. 비록 컨셉카로만 머물고 사라져 버렸지만 YCC는 여성 운전자들의 마인드, 여성 고객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무척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줬습니다. 

당시 프로젝트팀은 여성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승하차 문제해결을 위해 걸윙도어를 적용했고, 또 낮은 좌석으로 인해 전후방 시야 확보에 불편을 겪는 여성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 지상고 등을 높이고 좌석을 여성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했습니다. 또 실용성을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취향을 고려 수납공간이나 짐을 놓는 공간 활용에 특히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한 마디로, 여자들은 예쁜 차를 선호할 거라는 생각과 달리 실용적인 측면을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온전히 보여준 것이 컨셉카가 YCC였던 것입니다.


SUV가 대안이 되다

그런데 참 공교로운 것이, 이 당시 조금씩 성장세를 보이고 있던 도심형 SUV는 여성 운전자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점들(넓은 시야 확보, 승하차 편리함, 충돌 안전성 등)을 구조적으로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또 주차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여성 운전자들에겐 전후방 카메라와 주차센서 등,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며 문제를 해결했고, 몇 년 전부터는 아예 자기가 알아서 주차를 하는 자동주차시스템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또 아이를 태우고 내리는 일, 짐을 싣고 내리는 일 등에서 SUV는 YCC 프로젝트팀이 고민하던 것 일정 부분을 해소시켰습니다. 요즘 SUV의 성장세에는 이런 여성들의 호감 어린 시선이 반영되어 있는 것인데요. SUV를 운전해 본 여성은 낮은 세단 운전을 불편하게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니 SUV라는 괜찮은 대체재로 인해 더 이상 '여성전용차'라는 건 의미가 없게 된 것입니다.

사진=다임러


여성들의 자동차 선택 기준

그렇다면 전문가들이 분석한 여성들이 자동차를 고르는 우선 기준은 무얼까요? 먼저 고려되는 건 실용성입니다. 남성들에 비해 여성 운전자들은 자동차를 과시하는 목적, 혹은 운전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는 목적으로 보기 보다는 이동 수단이라는 기본적인 개념에서 주로 보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여성 운전자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보통의 여성을 기준으로 보면 자동차는 출퇴근을 돕거나, 아니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혹은 장을 볼 때 필요한 교통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남성에 비해 더 강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마력과 토크가 어느 정도인지, 조향감이 어떤지, 첨단 테크놀로지가 얼마나 많이 녹아 들어가 있는지 등은 여성들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녀들의 우선 기준은 가격이 내 수준에 맞는지, 또 수납공간 등의 실용성이 좋은지, 운전하기 편하고 안전한지 등이 됩니다.

사진=오펠

여성들의 이런 성향은 자신이 직접 운전을 하는 것이 아닌, 예를 들어 친구가 차를 고를 때, 혹은 남편이 차를 선택할 때에도 작동을 하게 된다고 하는데요. 여기에 한 가지 정도 덧붙인다면 남자들 보다 차의 색상을 조금 더 따지는 것쯤이 추가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여성들은 무조건 아기자기하고 예쁜 차를 선호할 거라고 혹 생각하고 계신가요? 이젠 그 클리셰를 버리고 '실용주의로 무장한 여성 운전자들'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셨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