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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K5 왜건에는 다른 시도가 필요하다

기아가 올 초 제네바모터쇼에서 공개된 중형 왜건 스포츠스페이스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 곳 독일은 물론 현대 기아차에 대해 비판적인 한국에서도 적어도 스타일만큼은 인정할 만하다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었으니까요. 처음엔 스포츠스페이스가 컨셉카로만 남을 거라는 이야기가 기아 내부에서 흘러 나왔지만 결국 K5 왜건을 만들기로 했고, 내년 중반 쯤이면 판매가 가능할 걸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사진=기아

만약 모터쇼에 등장했던 스포츠스페이스처럼만 양산된다면 좋은 반응을 일으킬 수 있을 거란 얘기들이 곳곳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왜건의 무덤이라 불리는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통할 거라는 의견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과연 스포츠스페이스가 그 모습 그대로 우리 앞에 등장하게 되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일단 위장막을 쓴 상태이긴 하지만 최근 공개된 K5 왜건은 스포츠스페이스와는 느낌이 많이 달라 보였습니다. 이미 판매되고 있는 K5 세단 이미지가 거의 그대로 반영된 예상도도 돌아다니고 있는 상황이죠.


한 마디로 스포츠스페이스는 모터쇼를 위해 내놓은 쇼카입니다. 양산과 상관없이 양산형 모델의 이미지를 극대화시킨 디자인용 자동차라는 얘기인데요. 이것은 판매를 염두에 두고 내놓은 프로토타입과는 또 다른 것입니다. 거기다 스포츠스페이스는 충돌안전규정과 무관하기 때문에 양산을 위해선 보닛이 변화하고 범퍼 스타일이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커다란 휠과 틈이 거의 없는 휠하우스 등도 현실에서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몇 가지만 바뀌더라도 차량의 인상은 많이 바뀝니다. 실내는 말할 것도 없고요.

사진=기아

사진=기아

워낙 잘 나온 쇼카 덕분에 지금도 몇몇 매체에서는 K5 왜건의 국내 판매 가능성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만 스포츠스페이스 스타일이 그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국내에 출시될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 합니다. 유럽이야 안락함과 실용성을 겸비한 왜건이 여전히 판매가 대량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SUV로 그 실용성이 이미 대체된 우리나라의 경우 왜건은 현재 상태로는 경쟁력을 회복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러니 스타일 하나 보고 관심을 보였는데 그 스타일이 사라진다면, K5 왜건에 대한 국내 경쟁력 또한 사라진 것이라 봐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 다른 관점에서 왜건의 가능성을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현재 왜건은 유럽에서도 가파른 성장을 보이고 있는 SUV의 기세에 눌려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왜건이 갖고 있는 장점을 이 곳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몸으로 체득을 한 상태죠. 그러니 당장 수요가 사라지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제조사들은 전통적인 시장을 지키기 위해 파생모델을 통해 왜건 시장 지키기를 시도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게 바로 온오프로드 겸용 모델들입니다. 


사진=폴크스바겐

위 사진 속 차량은 한 번 소개해드린 바 있는 '골프 올트랙'입니다. 포장도로뿐 아니라 비포장도로에서도 해치백 골프, 왜건 골프 보다 더 잘 달릴 수 있게끔 차의 바닥(지상고)을 좀 더 올렸습니다. 거기다 SUV처럼 범퍼 하단을 꾸며 기존 골프와는 또 다른 인상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지상고가 높아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 좌석 높이도 올라가게 되고, 좌석의 높이가 올라갔으니 운전자의 시야는 기존 왜건 보다 더 편하게 앞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이런 변형된 왜건으로 현대와 기아가 국내외 시장에 도전을 해보는 건 어떨까 합니다. 아우디 올로드 콰트로처럼 지상고 높이를 버튼 하나로 조절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처럼 왜건과 SUV 사이의 경계를 좀 더 모호하게 만들어 왜건의 경쟁력을 키우는 건 괜찮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라인업의 다양성을 과연 현대나 기아가 시도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소나타 터보 운전대를 D컷 스타일로 바꾸는 것 하나도 쉽지 않았던 그룹의 경직된 문화 속에서 과감하게 이런 변화를 꾀할 수 있을까요? 거기다 유럽으로 나가는 중형급 이상 모델들은 한국에서 생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온오프 겸용 왜건 생산에 대한 노조의 동의까지 얻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그렇다 해도 고급 브랜드를 론칭하고, WRC에 뛰어 들고, 또 N이라는 고성능 파트를 만들 정도로 시도들을 하는 요즘 분위기라면 유럽 메이커들이 주도하는 이런 파생모델 시장에 발을 담그는 계획도 충분히 실행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K5 왜건에 대한 국내 출시는 지금까지는 거의 어렵다는 게 안팎의 의견입니다. 하지만 과감한 디자인 정책과 온오프겸용 모델이라는 다른 개념을 한 데 묶는다면 새로운 수요를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왜건을 좋아하는 나와 같은 팬들에게도, 또 다양한 자동차를 선택하고 싶어하는 소비자 모두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브랜드의 이미지를 끌어 올리고 싶어하는 현대차 그룹을 위해서라도,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금 한국산 왜건에는, 다른 과감한 시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사진=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