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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볼보 S90 중형됐다 대형 됐다 '내 멋대로 분류'

자동차 좋아하는 분들에게 12월은 핫한 달이 되고 있습니다. 현대가 제네시스 브랜드의 기함 EQ900을 정식 공개했고, 그 전에 볼보가 S80의 뒤를 이은 자사 플래그십 S90를 새롭게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또 S90와 경쟁하게 될 메르세데스 E클래스 신형 실내도 소개가 됐습니다. 고급 차들이 연이어 등장하며 많은 관심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볼보 S90에 대해 한국 기사들 몇 개를 읽다 보니 독자들이 헷갈리 쉽겠더군요. 어떤 곳에서는 이 차를 대형으로 분류를 하고 있었고, 또 어떤 곳에서 이 차를 중형차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둘 다 아닌 거 같은데 말이죠. 그렇다면 볼보 S90의 체급은 어떻게 결정되는 게 맞는 걸까요? 


볼보 S90 /사진=볼보


볼보 S90 실내 / 사진=볼보

이 블로그를 오래 전부터 방문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단박에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아실 겁니다. 자동차 분류에 대한 문제 제기를 몇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해왔기 때문인데요. 법으로 정해진 자동차 분류법에 따르면 경차/소형/중형/대형 이렇게 4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배기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현재 제도는 이미 엔진 다운사이징이 대세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더 혼란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이미 유럽에서는 중형급 포드 몬데오에 998cc 짜리 터보 엔진이 달려 판매가 되고 있는데, 우리나라 기준대로 한다면 이 차는 경차로 분류되게 됩니다. 말이 안되는 상황이죠. 문제는 이게 쉽게 개선이 되기 어렵다는 점인데요. 오늘은 이런 세금 관련한 문제와는 다른,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언론이나 포털 등에서 차를 분류할 때 쓰는 그 분류법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볼보 S90, 어디서는 중형 어디서는 대형

최근에 소개된 S90는 볼보의 새로운 기함입니다. 브랜드에서 가장 크고 가장 고급스러운 자동차라는 뜻이죠. 그런데 우리나라 여러 언론들은 이 차를 소개하면서 '중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포털 분류를 보니 네이버와 다음이 좀 달랐는데, 네이버는 대형, 다음은 중형으로 분류를 해놓고 있습니다. 일단 브랜드를 대표하는 플래그십이 중형이라는 게 와닿지 않습니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이 차를 중형으로 분류하지 않고 있고요. 그렇다면 유럽과 우리의 차이는 왜 발생하는 걸까요? 먼저 이걸 알기 위해선 유럽의 분류 기준인 세그먼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자동차 분류표 / 위키피디아 캡쳐

이 도표는 위키피디아에 나와 있는 자동차 분류표입니다. 맨 왼쪽이 미국, 그리고 가장 오른쪽이 유럽입니다. 가운데 노란 박스로 표시된 부분은 폴크스바겐 디젤 게이트로 유명해진 미국환경보호청(EPA)의 분류 기준인데 그냥 참고하시라고 표시를 해뒀습니다. 이 표를 보면 미국의 경우 유럽의 D세그먼트에 해당하는 분류가 '미드 사이즈 카'와 '엔트리 럭셔리 카'로 나뉘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냥 중형이라 보시면 되는데요. 제일 우측에 예를 든 차 항목을 보십시오. 우리나라에서 준중형으로 자주 언급되는 아우디 A4나 BMW 3시리즈, 메르세데스 C클래스 등이 D세그먼트로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한국 일간지에서는 A4 등을 소형차라고 부르기도 하더군요.


그 다음 E세그먼트입니다. 역시 미국은 '풀사이즈 카'와 '미드 사이즈 럭셔리 카'로 나뉘어 있지만 큰 틀에서는 유럽 세그먼트 'E'에 속합니다. 볼보 S80가 보이실 겁니다. 며칠 전 소개된 S90의 전 모델이죠. 재규어 XF와 현대 그랜저 등도 여기에 속해 있습니다. 한국에선 이를 준대형이라고 부릅니다. 이 명칭이 현대의 꼼수라 여기는 분들이 계신데 그건 아닙니다. 이 얘긴 조금 뒤에 드리기로 하고, 일단 D와 E, 그리고 준중형이라 불리는 C세그먼트(콤팩트 클래스) 등이 이 표를 보면 명확하게 구분이 돼 있습니다. 


자동차 분류표 / 한국위키 캡쳐

이 도표는 한국 위키피디아가 앞서 보여드린 외국 위키의 분류표를 간명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한국의 중형이 유럽의 D세그먼트이고 쏘나타와 3시리즈가 같은 체급으로 돼 있습니다. 이것은 두 차량의 가격이나 이미지와는 무관한, 단순히 분류를 위해 체급을 나눈 것이라는 거, 다시 한 번 환기시켜 드립니다.


E세그먼트 차들 / 표 출처=autotrends.org

 그래도 혹시나 하는 분들이 계실까봐 미국 자동차 사이트 autotrends.org에 나와 있는 분류표를 보여드립니다. 현대 아제라(그랜저)와 E클래스, 5시리즈, 쉐보레 임팔라 등이 E세그먼트로 같은 급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일반적으로 차를 분류할 때 유럽의 세그먼트(Segment) 방식을 따릅니다. 유럽의 세단 세그먼트 기준은 A~F까지 총 6개로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이에 맞춰 6개 (혹은 5개로)로 나누고 있습니다. 


A세그먼트 : 경차

B세그먼트 : 소형차

C세그먼트 : 준중형

D세그먼트 : 중형

E세그먼트 : 준대형

F세그먼트 : 대형


동일한 기준, 다른 적용

가끔 준중형과 준대형이라는 것이 현대차의 꼼수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용어는 현대가 만들었을지 몰라도 이 개념은 이미 유럽에서 쓰이고 있고 그걸 그대로 가져온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유럽의 세그먼트 분류 기준을 들여왔으나 정작 언론이나 포털에서는 이를 제대로 적용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또 언론마다 제각각일 때가 있어서 소비자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제가 잠깐 퀴즈 하나를 내드리죠. 


질문 : 아래 자동차들 중 자동차 분류상 (세그먼트 방식 기준) 다른 것이 있다면?

1. 재규어 XF (전장 4950mm)

2. 현대 그랜저 (전장 4910mm)

3. BMW 5시리즈 (전장 4907mm)

4. 볼보 S90 (전장 4960mm)


유럽 세그먼트 기준으로 정답은 4개 모두 E세그먼트, 그러니까 준대형에 속합니다. 동일한 체급이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다릅니다. 같은 유럽 분류 방식을 쓰고 있음에도 현대 그랜저만 '대형'으로 분류하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중형차'로 분류돼 있습니다. 제가 모델명 옆에 차의 길이를 표시했죠. 그 이유는 보통 우리나라의 언론 매체들이 차의 분류를 이 '전장'을 기준으로 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준으로 본다면 대형으로 분류된 그랜저 보다 재규어나 볼보는 오히려 더 깁니다. 그랜저 보다 전장이 짧은 5시리즈도 고작 3mm의 차이밖에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랜저만 대형으로 분류를 하고 있는 겁니다. 네 개 모두 같은 준대형 (혹은 큰 틀에서 대형)으로 분류 되는 게 맞아 보입니다.


이 차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중형이 준중형으로, 준중형이 소형으로 되어 있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유럽과 같은 분류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걸까요? 아무래도 세그먼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일간지 경제부 기자들 중 자동차를 담당한 지 얼마 안된 경우에는 더더욱 헷갈릴 수 있다고 봅니다. 심지어 어느 자동차 전문 기자분도 우리나라의 배기량 기준 세금 부과에 대한 모순을 언급하면서 5시리즈를 중형으로 3시리즈를 준중형으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또다른 자동차 매체의 기자에게도 직접 분류 기준에 대해 물어 봤지만 명쾌한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벤츠 신형 E클래스 실내 모습 / 사진=다임러


언론, 정확한 정보 전달 위해 더 노력해야

사실 자동차분류는 지역별로 다르기 때문에 국제 공통 표기법이라는 건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큰 틀에서는 서로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이 흐름을 따르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유럽, 그 중에서도 특히 독일의 자동차 분류 체계는 다시 언급을 할 필요가 있겠는데요. 독일의 경우 신차가 나올 때 이를 분류하기 위해 독일자동차청(KBA), 자동차산업협회(VDA), 그리고 수입자동차협회(VDIK)의 관계자들이 모입니다. 그리고 크기/무게/엔진 배기량/성능/트렁크 크기/좌석수/1열 좌석높이/차량 판매가 등의 여러 조건에 맞춰 보며 최종적으로 분류를 합니다. 그냥 허투루 정하는 게 아니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체계적인 분류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유럽의 세그먼트 분류법을 따르고 있으니까요.  


만약 우리가 유럽의 세그먼트 방식대로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분류를 하겠다면 그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정해야 할 것이고, 그게 아니라 유럽식을 지금처럼 적용할 거라면 제대로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언론은 자의적으로 대충 가져다 붙이지 말고 정확하게 이를 표시해줘야 합니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한다는 차원에서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닙니다. 특히 차가 단순히 이동수단 이상의, 자신을 드러내는 가치로 평가될 땐 이런 부분은 더 민감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사실 나는 중형차를 산 건데 언론에서는 그 차를 준중형으로 언급한다든지, 또는 잘못된 언론 정보에 기초해 '그 돈주고 그 급의 차를 왜 사냐는' 소리를 타인으로부터 듣게 되는 경우 오너 입장에서는 기분 좋을 리 없습니다. 무엇보다 더 나은 자동차 문화가 우리나라에 자리잡기 위해서라도 언론들은 이런 부분에 세심한 배려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만약 중형인지 준대형인지, 아니면 준중형인지 대형인지 확신이 안 선다면 차급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이 블로그를 언론 관계자들께서도 찾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내용 특히 신경을 쓰셔서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 전달의 의무를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이제 이런 정도는 제대로 다뤄야 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