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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제네시스는 프리미엄일까요 럭셔리일까요?

현대자동차가 오랜 고민과 갈등을 뒤로하고 결국 별도의 고급 브랜드를 론칭했습니다. 현대라는 이름으로는 부가가치 높은 고급차 시장에서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현실론이 결국은 작동을 한 것인데요. 론칭 전부터 '제네시스'로 새로운 길을 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늦은감은 있지만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의견을 건넨 후 응원하며 지켜봐왔습니다.


제네시스 브랜드를 소개하고 있는 정의선 부회장 / 사진=현대차



해외에서의 제네시스 논란

제네시스 브랜드 공식 행사 직후 제가 살고 있는 독일의 자동차 언론들은 물론 미국과 영국 등에서도 새 브랜드 '제네시스'에 대해 비교적 관심이 높았습니다. 또 2020년까지 총 6개의 신모델을 내놓겠다는 전략도 소개하며 과연 어떻게 현대가 이 브랜드를 안착시킬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 제네시스의 기함인 G90 렌더링 이미지가 공개가 됐죠. 숨가쁘게 이어진 제네시스 관련 소식은 국내외 모두에서 이슈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슈 안에는 한 가지 커다란 질문이 존재합니다. '과연 제네시스가 프리미엄 브랜드가 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죠. 자동차에 있어서 프리미엄이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또 영미권에서 주로 쓰는 '럭셔리'라는 표현과는 차이가 있는 걸까요?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프리미엄과 럭셔리를 나누는 기준을 통해 제네시스의 현재 위치를 한 번 이해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리미엄과 럭셔리의 차이

어떤 자동차 브랜드가 프리미엄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공식적인 기준 같은 게 존재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프리미엄 브랜드와 양산형 브랜드의 차이를 대략적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가격이 비싸고, 고급 재료를 쓰고, 성능이 뛰어나는 등, 몇 가지 구분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 업계 안에서는 고급 자동차 브랜드들을 좀 더 세분화해서 프리미엄과 럭셔리를 명확하게 구분해 쓰기도 합니다. 이를 잘 보여준 게 10년 전 출판된 <프리미엄 파워> 같은 책인데요. 


글로벌 인사이트 오토모티브 그룹에서 자동차 분석전문가로 활동하는 필리 로젠가르텐과 크리스토프 슈튀르머는 프리미엄과 럭셔리 브랜드의 차이를 이렇게 구분했습니다. '소유하고 싶은 혁신적 이미지의 브랜드를 만들고 관리하느냐', '업계 최고 인재들을 고용하고 지켜내느냐', '수요보다 적게 공급하고 제한하고 있느냐', '최고 부품업체들과 협력하고 있느냐', 마지막으로 '탄력적이고 효율적인 생산체계를 만들고 있느냐' 등입니다. 저는 이 기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고 이 내용들을 제 나름 기준으로 다시 정리를 해봤습니다.


1. 기술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가

프리미엄의 제 1조건은 기술혁신입니다. 영국 오토익스프레스지에서 최근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어떤 브랜드가 프리미엄이라고 보느냐는 설문조사를 했더니 롤스로이스와 애스턴 마틴, 벤틀리 등을 프리미엄으로 놓았고, BMW, 아우디, 볼보, 렉서스, 인피니티, 그리고 현대 제네시스 등은 프리미엄이 아니라는 의견이 우세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두 명의 전문가는 다른 의견을 냈습니다. 롤스로이스나 애스턴 마틴 등은 감성에 호소하고 화려함으로 승부하지 기술적으로 시장을 선도하지 않는다고 본 것입니다.


반면 독일 브랜드 벤츠, BMW, 아우디, 포르쉐는 프리미엄으로, 또 볼보, 페라리, 람보르기니와 부가티, 그리고 벤틀리와 레인지로버 등을 프리미엄으로 분류했습니다. 레인지로버는 당시 프리미엄에서 럭셔리 브랜드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했는데 요즘 분위기로 봐선 재규어와 위치가 바뀌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분류를 첫 번째 기준인 기술혁신 관점에서 볼까요? 


흔히 독일 3사(벤츠, 아우디, BMW)를 프리미엄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적용하는 데 매우 적극적입니다. 자동차 충돌테스트부터 다양한 안전장치를 자체적으로 개발하거나 적용한 벤츠. 최초의 자동차용 알루미늄 V8엔진을 개발했고 제논 헤드램프 등 각 종 기술력을 일찌기 보여준 BMW. 승용 사륜 콰트로와 공기저항, 경량화와 최초 직분사 터보디젤 엔진(TDI) 등을 개발한 아우디 등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계속해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데 늘 앞에 서 있습니다. 볼보 역시 3점식 안전벨트는 물론 ABS 적용 등 늘 안전에 있어서는 프론티어였죠. 


반면에 롤스로이스나 애스턴 마틴 등은 화려함과 전통, 렉서스 등은 정숙성과 내구성 등으로 승부를 보는 편입니다. 엔진 개발도 어렵고 이미 개발된 편의장치나 시스템 등을 화려하게 구성해 이를 어필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저는 기술혁신이 없는 브랜드는 결코 프리미엄 딱지를 붙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인데요. 이 기준을 제네시스에 대입해 보면 프리미엄 보다는 럭셔리 브랜드에 가깝다고 보여집니다.


2. 매력적인 자기만의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가?

두 번째 기준이라면 디자인 정체성이 분명한지, 그리고 그 디자인이 구매욕을 자극하는지 하는 점입니다. 최근 제네시스 G90 렌더링이 공개되고 독일에서도 아우디나 애스턴마틴 닮았다는 이야기가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반응들이 있었던 모양인데요. 그룹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는 페터 슈라이어는 이전에 "헥사고날 디자인은 아우디 싱글프레임과 무척 닮았지만 따진다면 우리가 먼저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2001년형 아우디 A4 호펠레 /사진=favcars.com

하지만 그릴이 6각이냐 4각이냐로 소비자들은 구분 짓기 보다는 좀 더 큰 틀에서 카피 논쟁을 벌이는 게 일반적입니다. 싱글 프레임 논쟁이 바로 그런 경우인데요. 아우디는 이미 2001년에 소개했고, 현대는 2009년 이후 북미와 유럽 쪽 디자인을 나누던 전략을 최근 헥사고날 싱글 프레임 그릴로 통합한 상태입니다. 특히 현대 스스로 밝혔듯 자동차 이미지의 핵심은 그릴과 엠블럼인데, 여기서 뚜렷한 자기 색깔을 갖지 못하고 '어디서 본 듯하다'는 이야기가 자꾸 나온다면 제네시스가 디자인 유사성 논란에서 앞으로도 자유롭기 힘들 것입니다.


여기에 페터 슈라이어가 아우디 디자이너였다는 점도 두 브랜드 디자인에 어떤 개연성이 있지 않겠냐는 시선을 갖게 하는 이유가 됩니다. 하지만 기아 K5가 처음 나왔을 때 디자인 카피 논란이 거의 없이 칭찬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제네시스 논란을 페터 슈라이어에게만 책임을 돌리긴 어려워 보입니다. 결국 제네시스는 구매욕을 자극하는 디자인을 만들어 내긴 했지만 자기만의 색깔을 유지하고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는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반대로 볼보는 자신만의 디자인 정체성은 가지고 있었지만 매력적이지 못한 디자인으로 늘 아쉬웠는데 최근 새로운 디자인 정책을 통해 소비자의 감성을 더 자극할 수 있게 됐습니다.


3. 최고 인력과 함께 하고 있는가?

현대차는 이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페터 슈라이어라는 걸출한 스타 디자이너를 영입해 브랜드에 패밀리룩 개념을 적용했고, 기아차는 잘 몰라도 페터슈라이어는 잘 아는 유럽인들에게 회사 이미지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또 고성능, 고급 브랜드 계획을 구체화하기 위해 알베르트 비어만이라는 BMW M 파트 기술 책임자를 부사장 자리에 앉혔고, 최근엔 벤틀리 디자이너인 루크 동커볼케까지 영입했습니다. 확실하고 과감한 인재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이런 인재 구성이 몇몇의 스타들에게만 집중되지 않도록 최고의 기술인력을 더 확보하고, 또 내부에서 좋은 엔지니어를 키워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돈으로 사람을 사오는 것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런 인력 개발 시스템을 통해 지속적으로 좋은 인력이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왼쪽부터 페터 슈라이어, 알베르트 비어만, 루크 동커볼케 / 사진=현대


4. 부품업체와의 협업과 완성도

위에 세 가지 기본적인 조건 외에도 중요한 프리미엄의 기준이라면 부품업체와의 협업이 잘 이뤄지고 있느냐 하는 점일 겁니다. 독일을 기준으로 보자면 일단 부품업체들이 프리미엄 브랜드들과의 협업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벤츠가 엘크 테스트 파동으로 대중화를 앞당긴 차체자세제어장치(ESP)같은 경우도 보쉬가 개발을 했고 이를 벤츠가 적극 수용했던 경우인데요. 완성차 업체들이 모든 기술을 다 개발할 수 없기 때문에 좋은 부품개발업체들과의 협력 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제네시스는 이런 시스템을 구축해 놓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조립의 품질도 중요합니다. 아우디가 독일 내에서 빠르게 BMW, 벤츠 등과 경쟁할 수 있게 자리 잡은 것은 기술력과 디자인 아이덴티티도 있었지만 뛰어난 조립완성도도 한몫 거들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늘 아우디하면 독일 소비자들에겐 실내 조립완성도 최고의 브랜드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따라서 생산라인 수준을 프리미엄의 요구에 맞게 맞춰낼 수 있느냐 마느냐도 중요해졌습니다.


이 외에도 저는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혁신적인 마케팅과 브랜드 전통을 만들어가는 문화적 관점을 갖는 것도 중요한 프리미엄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고객들을 응대하는 세일즈와 마케팅, 그리고 A/S 파트가 양산차 브랜드일 때와 완전히 달라지지 않는다면 더 많은 돈을 지불하며 브랜드를 소비하려는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과연 제네시스는 프리미엄이 될 수 있을까?

몇 가지 프리미엄의 기준을 적어 봤는데요. 이 기준 하나 하나에 제네시스 브랜드를 대입해 보자면 어떤 부분에선 만족할 만한 하고 어떤 부분에선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어느 특정 모델 한두 개만 잘 나오는 게 아니라 모든 라인업이 상향 평준화 되어야 하듯 프리미엄 브랜드는 앞서 언급한 기준에 최대한 다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만큼 각오와 열정, 장기적인 비전과 투자 등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프리미엄 딱지 얻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과연 현대는 그 길을 갈 준비가 되어 있나요? 제네시스가 앞으로 달려갈 길을 이런 기준을 가지고 지켜보려 합니다.


제네시스 로고 / 사진=현대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