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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디젤차 팔지 말라는 미국, 그래도 팔아야겠다는 독일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지난 2일 홈페이지를 통해 2014년~2016년형 아우디, 포르쉐 등, 3.0 디젤 엔진이 모델에서도 배출가스 조작이 가능한 소프트웨어가 장착됐다는 글을 올려 다시금 폴크스바겐 그룹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RDE 방식으로 실도로에서 측정해보니 실험실 데이타 보다 9배나 많은 질소산화물이 나왔다는 건데요. 일단 독일 본사는 공식적으로 3.0 디젤 자동차에는 조작 소프트웨어가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미국 정부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처음 조작을 시인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상황이 미환경보호청과 폴크스바겐 그룹 둘 중 한 곳은 큰 상처를 입게 되는 진실게임 양상을 띠게 됐습니다.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것은, 과연 폴크스바겐만 조작을 한 것이냐 하는 것이고, 또 도대체 왜 독일 메이커들만 집중적으로 테스트 대상인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미국에서 디젤차는 독일 점유물

미국 내 디젤차 실도로 검증 작업은 실질적으로 독일 자동차들이 타겟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확하게 모든 브랜드를 확인해 본 것은 아니지만 미국에서 디젤 승용차를 판매하는 브랜드는 메르세데스 벤츠, BMW, 그리고 아우디를 포함한 폴크스바겐 그룹 정도입니다. 여기에 쉐보레가 크루즈 디젤을 내놓고 있고 크라이슬러피아트 그룹 브랜드인 JEEP가 그랜드 체로키에 3.0리터 V6 디젤 엔진을 장착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픽업 트럭들 일부가 디젤 엔진을 장착하고는 있지만 상용차로 분류돼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한 상황입니다.


쉐보레와 지프의 경우 각 각 한 가지 모델에만 디젤 엔진을 얹은 게 전부이고 이 내용 또한 굳이 부각을 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팔려도 그만 안 팔려도 그만이라는 그런 느낌까지 받을 정도죠. 현대차 그룹을 비롯해 일본 메이커들은 북미시장에서 디젤 승용차는 판매를 하지 않고 있으니까 실질적으로 20여 종 이상을 팔고 있는 독일 차가 북미 시장을 쥐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절대적인 점유율은 폴크스바겐 그룹에 있죠.


따라서 독일 디젤 모델들에 테스트가 집중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브랜드들은 왜 이처럼 북미시장에서 디젤차를 판매하지 않고 있는 걸까요? 굉장히 복합적인 요소들이 작용을 하고 있는 걸로 보이는데, 가장 우선적으로 짚어볼 수 있는 것은 역시 엄격한 배출가스 기준으로 인한 부담감이라 하겠습니다. 


현재 유로6의 경우 킬로미터당 80mg 이하의 질소산화물이 배출되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북미 배기가스 기준인 Tier ∥ Bin 5는 1마일당 50mg 이하의 질소산화물을 배출하도록 규정해 놓고 있습니다. 마일을 킬로미터로 바꾸게 되면 대략 30mg/km가 됩니다. 엄격하다는 유로6의 40% 수준밖에 안되는, 엄청나게 어려운 기준이 버티고 있는 것이죠. 


친환경 인증했으나 여전히 반디젤 정책 유지

우리나라의 한 제조사 관계자는 "이런 규제 수준이면 한 마디로 북미에서는 디젤차를 팔지 말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정말 치사해서 안 팔고 싶은 정도다." 라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는데요.  2009년부터 미국 정부는 디젤을 친환경 차로 인증해 혜택을 주고는 있지만 까다로운 배기가스 기준, 거기에 중남미 모두 디젤 가격이 가솔린에 비해 저렴한 것이 비해 미국과 캐나다는 가솔린 보다 비싼 디젤 가격 정책을 계속 펴고 있어 2중으로 디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 외에 유럽의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가 그간 정책의 1순위라고 했다면 미국은 자국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미세먼지나 질소산화물 등의 규제를 더 엄격하게 하고 있다는 차이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 부드러운 승차감이 중요한 미국 소비 특성상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디젤차의 덜덜거림은 적응이 안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여러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왜 독일 브랜드들은 자꾸 북미 시장에 디젤을 디밀고 있는 걸까요?


같은 독일 디젤, 그러나 다른 입장

현재 미국의 까다로운 질소산화물 배출 기준을 맞추기 위해선 가격적으로 부담이 되는 SCR 방식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물론 요소수 방식이 완전한 해법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현재로서는 이 방법이 가장 배출가스 억제에 효과적인데요. 비싼 가격의 SCR 방식을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비교적 가격 부담없이 적용을 할 수 있습니다. 디젤 세단이나 SUV 노하우에 있어서 최고 수준인 이들로서는 북미에 디젤 도전은 당연해 보입니다.


반대로 폴크스바겐의 경우 유럽이나 아시아에서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를 펼쳐야 하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빅 마켓 중 폴크스바겐이 힘을 못 쓰는 지역이기도 하죠. 미국 시장에서 디젤로 성공만 한다면 세계 1위 판매량 브랜드로 계속 입지를 구축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미국 시장을 놓치기 싫었던 폴크스바겐은 가격 상승을 억제하고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하지만 완전히 잘못된 방법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미국은 디젤차 점유율이 1% 미만일 정도로 가솔린 천국인데요. 하지만 계속해서 북미에서 디젤차의 점유율이 빠르게 올라갈 것으로 분석한 보고서들이 나올 정도로 한 번 해볼 만하다는 분위기가 마련됐습니다. 물론 폴크스바겐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이처럼 독일 브랜드들이 북미의 디젤차 시장을 강력하게 선점해 가는 시점에서 뜻하지 않은 곳에서 부정을 발견했고, 이런 이유로 북미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디젤에 대한 타격이 불가피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로 인해 다양한 음모론이 생산되기도 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헤게모니 전쟁?

폴크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이 공개됐을 때 유럽자동차공업협회 회장이자 르노닛산회장인 카를로스 곤은 "미국이 자국 자동차 산업 보호를 위해 폴크스바겐을 노렸다."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었죠. 미국 정부와 (직접적으로)상관없는 환경기관의 테스트로 디젤게이트가 촉발되었기 때문에 이를 미 정부와 연결 짓는 건 무모한 발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가 아무 생각이 없어서 그런 엉뚱한 발언을 한 게 아닐 거라며 동조하는 발언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가솔린 중심의 미국 전통 자동차 제조사들과 테슬라 (GM도 일부 포함)를 비롯해 자동차 시장에 새롭게 뛰어들 구글과 애플 같은 같은 기업을 보유한 미국으로서는 독일로 대표되는 유럽의 디젤차에게 시장의 주도권을 넘겨주기 싫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결국 이산화탄소 규제라는 전 세계의 화두에 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그 해법을 디젤이 아닌 다른 것에서 찾으며 자동차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아 오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나리오인데요. 하지만 누구도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이를 증명해 낼 수도 없는 추측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카를로스 곤 같은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발언, 그리고 국제 무역에 있어 정부 개입이 없을 수 없다는 주장들을 묶어 보면 미국에 대한 음모론을 무조건 허황된 것으로 무시하기도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 언급한 내용 중 증명되지 않은 이야기를 깨끗하게 지운다고 해도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남습니다. 그건 미국은 엄청나게 까다로운 디젤 배기가스 기준이 있다는 것, 그리고 가솔린 보다 디젤 가격이 훨씬 비싸다는 것 등입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어떤 형태로든 극복하지 못한다면 독일 디젤차들은 여전히 힘든 싸움을 북미 시장에서 펼치게 될 겁니다. 아니, 아예 진을 다 빼고 완전히 발을 뺄지도 모릅니다. 벌써 내년에 미국에서 VW이 디젤차를 판매하지 않을 거라는 뉴스도 나오고 있으니까요. 


물론 한시적 조치라고 이야기도 되지만 이번 미국 환경보호청의 강공은 디젤에 치명상을 안긴 것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디젤차의 매력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연기관의 시대가 저물 것이라는 장기적 관측 속에서도 당장 디젤의 대중성이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옹호론이 꽤 크게 자리한 듯 보입니다. 폴크스바겐 조작사건을 계기로 디젤에 대한 기준을 더 강화할 것으로 보이는 미국과, 그래도 디젤로 승부를 봐야 하는 독일의 대결은 어떻게 끝을 맺을까요? 2라운드의 종이 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