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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독일 자동차계 전설 피에히 의장의 쓸쓸한 말로


정확히 2주 전입니다. 독일 최대 자동차 그룹 폴크스바겐의 감독 이사회 의장이자 대주주인 페르디난트 피에히 의장이 독일 언론 슈피겔과 인터뷰에서 현 그룹 회장 마르틴 빈터코른에 대한 불신임을 표명해 독일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는 소식을 전해드렸죠.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언론 플레이'를 통해 전문 경영인들을 밀어내는 걸로 유명했습니다. 한 번도 계획이 실패한 적도 없었고, 그가 차지하는 그룹 내 위치를 생각할 때 이번에도 마르틴 빈터코른 회장을 밀어내는 건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반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지난 25일 폴크스바겐은 피에히 의장이 감독위원회 의장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했다는 소식을 발표했습니다. 그가 의장 자리를 내놓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사회 멤버였던 아내 우르줄라도 이사직을 내놓고 남편과 함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돌아갔습니다. 2주 사이에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결과가 일어난 것이죠.


아우디가 만든 전기자전거를 살펴 보고 있는 피에히와 그의 아내 우르줄라/사진=아우디



피에히의 공격, 

그러고 예상치 못한 반격

오스트리아 여권을 갖고 있는 페르디난트 피에히 의장은 평소에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회사 관련한 소식을 듣고 의장으로서, 그리고 대주주로서 역할을 해나갔습니다. 볼프스부르크 본사엔 빈터코른 회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경영 방식이었죠. 그런데 피에히 의장과 30년 이상된 최측근 마르틴 빈터코른 그룹 회장 사이에 언제부턴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두 거물의 갈등을 비교적 자세히 전했던 빌트지는, 판매량 세계 1위 목표에 집착했던 피에히 의장과 영업이익률 개선에 더 큰 관심을 보인 마르틴 빈터코른은 서로 다른 목표로 인해 갈등이 있어 왔을 거라는 보도를 했습니다. 더 이상 빈터코른 체제 하에선 자신의 목표 달성이 어렵다 본 피에히는 새로운 인물을 찾기로 결심했지만 정착 회사 내부 분위기는 빈터코른의 목표를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행사장에 나란히 있는 빈터코른 회장 (중앙 양복)과 그 우측의 우르줄라와 피에히 의장의 모습/사진=아우디

결국 빈터코른은 피에히의 결정에 반발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뜻밖의 저항 뒤에는 2대 주주인 니더작센주의 주지사와 노조 대표 및 감독 이사회 이사인 베른트 오스테를로, 그리고 포르쉐로 폴크스바겐 그룹을 인수하려 시도했던 사촌 볼프강 포르쉐 등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피에히를 포함한 핵심 이사회 멤버 6명은 잘츠부르크에서 만나 격론을 벌입니다. 


감독이사회는 빈터코른을 지지한다는 이야기를 피에히에게 전했고, 피에히 의장은 '빈터코른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 '그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 '자신의 보유 VW 주식을 팔아 버리겠다.' 라고 협박했다며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주장은 전혀 먹혀들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회사 내에서 '올드맨' '노인네' 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79세 피에히의 관리능력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고, 이번 사건은 그가 더 이상 폴크스바겐 제국을 제대로 이끌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결정타로 인식돼버렸습니다. 결국 스무 명의 이사회 멤버들 중 포르쉐 측, 회사 노조측, 그리고 니더작센주 측의 14명의 이사가 그를 불신임하면서 더 이상 피에히 의장은 버틸 수 없게 됐습니다.


빌트는 집행위원들이 이사회 결정이 나오기 전 피에히에게, 스스로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물러나든지, 아니면 투표를 통해 불신임을 받고 물러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죠. 이 얘기를 들은 피에히는 2시간 후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수십 년 동안 독일 자동차 업계를 쥐고 흔들던 페르디난트 피에히 의장의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임시 의장직은 부의장인 베르톨트 후버가 새로운 의장이 선임될 때까지 수행하게 되며, 폴크스바겐 측은 주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5월 5일에 있을 연례 주총 때까지 바쁜 시간을 보낼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폴크스바겐을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은 불안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룹 내 1,2위 권력자들 사이의 갈등이라는 좋지 않은 모습, 그리고 피에히라는 전설을 잃게 된 것에 대한 불안 심리 등이 어떻게 해서든 부정적 작용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 있기 때문인데요. 과연 폴크스바겐이 이 비상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지켜 봐야겠습니다.


마르틴 빈터코른 회장의 승리를 전하고 있는 빌트/사진=빌트(Bild.de) 캡쳐



살아 있는 전설, 시대를 마감하다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의 외손자인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F1 엔진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포르쉐에서 기술 개발 담당으로 본격적인 자동차 산업과의 인연을 시작합니다. 이후 포르쉐를 나온 그는 1972년 아우디에 입사해 콰트로, TDI엔진, 알루미늄 바디, 공기저항 기술 개발 등을 이끌며 '기술을 통한 진보'라는 아우디의 철학을 만들어갔죠.


그가 손을 댔던 5기통 엔진은 이후 아우디에 적용되어 상품화까지 되었고, 폴크스바겐 사장으로 옮겨가서는 얼마 전 나온 1리터카 XL1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만년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를 흑자로 돌려세웠고, 대량 해고대신 노동 시간 줄이기 등을 통해 고용 보장을 한 것은 두고 두고 자신의 자랑거리로 삼기도 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동차 테마 파크 아우토슈타트와, 드레스덴이라는 유서 깊은 도시에 페이튼 조립을 위한 공장 건립 등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기도 했고, 이탈디자인의 조리제토 쥬지아로와의 수십 년 우정, 그리고 아우디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하루트무스 바르쿠스와 발터 드 실바 등에 대한 지원도 아낌없었습니다.


부가티와 벤틀리 인수에서는 과감성과 영리함을 동시에 발휘했고, 아우디에겐 이태리 바이크 업체 두가티를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포르쉐와 M&A 전쟁을 벌일 때 그는 볼프강 포르쉐와 벤델린 비데킹의 공격을 막아내며 VW 그룹을 거대한 자동차 그룹으로 통합시키는 1등 공신 역할을 했습니다.


때론 지옥의 사자, 냉혈한으로 불렸고, 때론 신들의 아버지라고 불린 독일 자동차 업계의 전설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그러나, 자신이 키우고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빈터코른의 축출에 실패하며 현역에서 물러나는 역설적 상황을 맞고 말았습니다. 주주로서의 자격은 유지 되겠지만 경영에는 더 이상 관여할 수 없게 된 이 천재 엔지니어, 열혈 경영인의 곁에는 이제, 아내 우르줄라만이 남아 있게 됐습니다. 이 멋진 노병 덕에 독일 차에 대해 많이 알 수 있었던 저로서는 그의 쓸쓸한 퇴임이 마음 아프게 다가옵니다.


페르디난트 피에히 /사진=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