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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대주주 말 한 마디로 물러나게 생긴 VW 회장


지난 주말, 독일 언론들은 폴크스바겐 감독 이사회 의장인 페르디난트 피에히의 한 마디에 저마다 기사를 쏟아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독일 자동차 업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신들의 아버지라고까지 불리는 그가 폴크스바겐 현 회장 마르틴 빈터코른에 대한 코멘트를 했고, 이것이 큰 파장을 불러온 것이죠.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페르디난트 피에히 의장이 마르틴 빈터코른 회장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나는 빈터코른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한 마디로 독일 언론은 물론 해외 많은 언론들까지 관련 소식을 크게 다뤘을 정도였죠. 도대체 왜 난리가 난 것일까요?


전문 경영인 밀어내는 피에히만의 방식 

아시다시피 폴크스바겐 그룹은 바이크 업체 두카티와 트럭을 생산하는 스카니아와 MAN 등을 포함, 총 11개의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디자인 전문업체인 이탈디자인까지 포함하면 12개나 되는 거대 기업을 거느리고 있는 자동차 전문 그룹이죠. 그리고 이 그룹을 진두지휘하는 인물이 바로 마르틴 빈터코른 회장입니다.


마르틴 빈터코른 회장 (오른쪽)과 베른트 오스테를로 노조대표 및 감독 이사회 이사 (왼쪽) 출처=VW 경영 보고서 PDF


2011년 5년 연장 계약을 하며 2016년 말까지 폴크스바겐 그룹 회장직을 수행하기로 했었죠. 빈터코른 회장은 최근 들어 69세의 나이에 물러나는 게 적당하다며 자신의 은퇴를 분명히 하고 있었습니다. 2018년까지 판매량에서 세계 1위 자리에 VW을 올려 놓겠다 약속을 한 그였고 이 목표를 위해 잘 달려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30년 넘게 인연을 맺고 있는 페르디난트 피에히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그였기 때문에 별 문제 없어 보였죠. 최고 연봉을 보장하며 피에히는 빈터코른 회장을 지지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어느 순간에 바뀌고 말았습니다.


페르디난트 피에히 감독 이사회 의장은 폴크스바겐 그룹의 가장 큰 지분을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경영권을 움직일 수 있는 위치에 있죠. 호랑이 같은 마르틴 빈터코른 조차도 피에히 앞에서는 순한 고양이입니다. 하지만 또 두 사람은 상당한 신뢰로 긴 세월을 함께 한 엔지니어 동지이자 경영 동반자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피에히 의장은 경영 앞에서는 절대로 감상적인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늘 아니다 싶을 땐 주저함 없이 사람들을 내쳤죠. 아우디 프란츠 요제프 파에프겐 회장도, 그리고 자신의 후임으로 폴크스바겐 회장 자리에 올랐던 베른트 피쉐츠리더 회장을 2006년 물러나게 할 때도, 먼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마디 뚝 던지는 방식을 통해 사표를 받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 방식이 이번엔 마르틴 빈터코른에게 적용된 것이죠.


30년 넘는 인연, 그 허무한 끝

마르틴 빈터코른과 피에히 의장의 인연은 1981년부터 시작됐다 볼 수 있습니다. 페르디난트 피에히 의장이 1972년 아우디에 입사하고 9년 후인 1981년 마르틴 빈터코른은 보쉬에서 아우디로 직장을 옮기게 됩니다. 그는 대학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금속 관련 연구와 박사 학위를 땄던 전문 엔지니어였죠.


품질관리 파트에서 시작해 1990년에는 품질관리 총괄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미 피에히는 아우디의 회장 자리에 있었을 때였습니다. 빈터코른의 꼼꼼함을 굉장히 좋아했던 피에히 의장은 1993년 폴크스바겐 회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 그도 함께 데리고 갑니다.


폴크스바겐에서도 처음엔 품질 파트에서 일하던 빈터코른은 기술개발 파트로 자리를 옮겼고, 2002년에는 자신이 입사했던 아우디로 회장의 직함을 가지고 금의환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피쉐츠리더를 내보낸 피에히 의장에 의해 2006년부터 지금까지 폴크스바겐 그룹의 회장으로 승승가도를 달려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발언으로 두 사람의 인연, 혹은 우정도 끝을 맞았다는 것이 독일 언론들의 대체적 평가입니다. '어차피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으니 미련도 없을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습니다. 2017년, 만 80세 때 이사회 의장직에서 내려오게 되는 피에히 후임은 모든 사람들이 마르틴 빈터코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기 때문이죠. 오히려 더 강력하게 기업의 미래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자리가 멀어진 것입니다.


페르디난트 피에히와 그의 아내이자 이사회 멤버인 우줄라 피에히 (사진 앞) 모습. 그 뒤로 루페르트 슈타틀러 아우디 회장과 마르틴 빈터코른 그룹 회장의 모습도 보인다. 출처=아우디



경영에 대한 질책인가

알 수 없는 또 다른 이유일까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미국 시장에서의 더딘 성장, 그리고 낮은 영업이익률 등을 피에히 의장이 빈터코른을 더 이상 신임하지 않게 된 배경으로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또 빈터코른 회장이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경쟁 업체들에 비해 발전해야 할 부분이 아직 많다." 라고 말한 것에 피에히 의장이 굉장히 불쾌해 했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 말 폴크스바겐 자동차의 새로운 수장으로 BMW 개발담당 사장 출신인 헤르베르트 디스를 내정하고 마르틴 빈터코른은 그룹 전체의 경영에만 전념케 한 것도 마르틴 빈터코른을 내보내기 위한 수순의 하나였던 건 아닌지 짐작을 해보게 됩니다.


과연 두 개의 빈 자리는 누가 메울 것인가?

회장으로서, 그리고 차기 감독 이사회 의장으로서 마르틴 빈터코른을 택하지 않겠다는 피에히 의장의 카드는 이렇게 던져졌습니다. 방식이 좀 황당하긴 하지만 어쨌든 결정이 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빈터코른은 바로 회장직에서 물러날까요 아니면 임기를 다 채우고 물러나게 될까요? 또 그가 물러났을 때 후임은 누가 될까요? 이 모든 게 지금 당장은 안갯속 같은 상황입니다. 


일각에서는 아우디의 회장 루페르트 슈타틀러의 그룹 회장 승진을 점치기도 하지만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면 폴크스바겐 경영을 맡기지 않는 피에히 의장의 철학상 경영을 전공한 그가 회장의 자리에 오르진 못할 것이라고 쥐트도이체 차이퉁이 전하기도 했습니다. 확실한 인물로 여겨진 빈터코른에 대한 불신임으로 인해 회장직 외에도 2017년 말이 되면 임기가 끝나는 이사회 의장의 자리 또한 공중에 붕 뜨게 됐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부적으로는 피에히 의장의 결정에 반대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노조대표이자 이사회 멤버인 베른트 오스테를로가 마르틴 빈터코른을 지지하고 나섰고, 또한 대주주 중 하나인 니더작센 주의 장관도 피에히 의장의 결정을 못마땅해 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 볼프강 포르쉐가 마르틴 빈터코른을 지지하고 있다는 소식을 블룸버그가 전하기도 했는데요. 


볼프강 포르쉐는 페르디난트 피에히 의장의 사촌이자 포르쉐와 폴크스바겐 사이의 인수합병 전쟁을 일으켰던 벤델린 비데킹 전 포르쉐 회장의 배후로 알려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포르쉐 박사의 외가와 친가의 수십 년에 걸친 경영권 다툼이 이번에는 마르틴 빈터코른 회장의 거취 문제로 다시 시작되는 건 아닐까요?


 우리에겐 늘 자동차박람회장을 줄자를 들고 돌아다니던 열혈 회장으로 기억되고 있는 마르틴 빈터코른. 그와 30년 넘은 인연을 이어 온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도대체 왜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물러나게 하려는 걸까요? 도대체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이유가 있었던 걸까요? 이 모든 궁금증에 대한 대답은 이제부터, 그리고 꽤나 복잡하게 이어지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