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독일의 일간지 디벨트는 정부가 민자도로 건설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이 계획을 추진하려 하는 부총리 겸 경제부장관 지그마르 가브리엘에겐 독일 국민들의 비판이 산처럼 쏟아져 쌓였죠. 과연 독일에선 지금 공공도로를 둘러싸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오늘은 짧지만 시사점이 큰 내용으로 함께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독일 아우토반. 사진=위키피디아
▶독일에 통행세 내는 민자도로라니!
독일 연방 경제부 내에 있는 전문가 위원회는 4월 중 경제부 장관 지그마르 가브리엘에게 민간자본이 학교와 도로 등에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낼 것이라고 디벨트가 보도했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진 뒤 독일 국민들은 정부에 대한, 특히 경제부 장관에 대한 비판을 엄청나게 쏟아냈는데요.
특히 도로 건설에 민간자본을 본격적으로 참여시키는 것, 흔히 얘기하는 민자도로 건설이 집중 포화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럴만도 한 것이, 독일은 기본적으로 어디를 가나 자가용의 경우 통행료를 물지 않는, 완벽에 가까운 공공재로 현재까지 남아 있습니다. 예전에 이와 관련한 글을 쓴 적이 있지만, 특별한 두 서너 곳을 제외하면 독일인들과 유럽인들은 거의 모든 독일 도로를 통행료 없이 이용할 수 있죠.
그렇다면 도로를 건설하고 유지 보수하는 비용은 어떻게 마련되고 있을까요? 두 가지인데요. 국민들의 세금, 그리고 유럽 각지에서 아우토반을 이용하는 트럭들의 통행료입니다. 아시다시피 독일은 세금을 많이 거두고 있고, 이 세금으로 충분히 정부나 지자체가 도로를 컨트롤할 수 있다고 국민들은 보고 있죠. (최근 교통부장관이 총대를 메고 독일 주변국 자가용들에게도 통행료를 물리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은 상태입니다. 이로 인해 EU집행위와의 갈등도 계속되고 있죠)
이처럼 독일인들에게 도로는 자유롭게 이용하는 아주 소중한 공공재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국가재정의 부담을 덜겠다며 정부가 민간자본을 끌어들이려고 하니 국민들이 곱게 볼 리가 없는 건 당연합니다. 도로에 기업의 자본이 들어와 운영이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통행료 등을 지불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는 순간 공공재로서의 그간의 역할이 훼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독일은 민간 자본이 공공사업에 손을 댈 수 없는 걸까요?
▶민-관협력사업 PPP는 뭐?
독일 남부의 풍력발전용 풍차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흔히 민-관협력사업(Public–private partnership, 이하 PPP)이라 불리는 것이 있습니다. 정부와 일반 기업이 대형 사업에 함께 참여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예를 들면 공항 건설, 통신사업, 전력산업, 도로 건설, 그 외 공공시설물 등 인프라 구축 등에 민간 기업이 참여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외 교육사업이나 그 외의 해외 원조 등도 크게 보면 여기에 들죠.
영국, 미국, 일본 등 세계 여러나라에서 이 방식을 이용해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민간 자본 투자를 이끌어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독일도 이런 방식으로 여러 국가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독일을 다니다 보면 곳곳에 세워진 풍력발전용 풍차들을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지역과 정부가 합작해 만든 회사가 운영을 하는 경우들이 굉장히 많죠.
정부의 재정만으로는 쉽지 않은 사업, 그리고 빠른 사업의 추진이 필요할 때, 또 민간 기업의 발전된 기술 적용 등이 PPP 사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만큼 정부는 투자한 기업이 정당한 이익을 얻어갈 수 있도록 사업을 보장해주게 돼 있죠. 사업 타당성 조사나, 그 전에 벌이는 지역 주민들과의 토론회 등을 통해 굉장히 사업이 투명하게 진행되는 게 선진국 PPP의 특징인데요. 이는 도로 건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해외의 민자도로와 우리나라 민자도로 접근방식
프랑스 등을 보면 주민들 대상으로한 토론회나 공청회를 계속 열면서 서로의 의견을 좁히는 노력을 기본적으로 실시하고 있고, 도로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등도 투명하고 정확하게 이뤄지는 편입니다. 독일도 도로의 경우는 아직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기타 나머지 민관협력사업의 경우 깨끗하게 사업 내용을 공개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민자도로 건설방식은 이런 분위기와는 좀 다른 느낌을 줍니다.
일단 우리나라 민자도로는 PPP와 별개의 특별법으로 보장돼 있죠. 사업 참여 기업에 대한 큰 혜택을 주는 행태(지금은 없어졌지만 '최소운영수입보장'방식 등)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결국 도로 이용자들에겐 비싼 통행료를, 국민들에겐 세금의 부담을 안기고 있습니다. 환경영향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언론의 기사나 정부출현기관의 보고서 등도 얼마든지 볼 수 있죠. 투명하지 못한 사업추진과정과 과도한 이윤을 보장하는 행태 등으로 인해 이미 유료화 도로에 익숙한 우리나라 국민들임에도 민자도로에 대한 거부감은 크다고 하겠습니다.
※민영화와는 조금은 다른 개념
이 민-관협력사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민영화와는 조금 다른 개념인데요. 민영화는 국가 기관, 혹은 공공성을 띤 기관을 민간에게 넘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민-관협력사업은 국가의 주도하에 민간 기업이나 단체(마을, 도시, 특정 기관 등 포괄적)가 사업에 참여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도로의 경우 국가별 상황별로 10년에서 30년 정도를 사업권을 보장해주고, 이후 국가가 그 권리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니까 장기 임대의 개념도 포함돼 있다 보면 되겠습니다.
▶독일인들 반응
통행료가 됐든 세금으로 보존을 해주는 방식이 됐든, 현재 독일에서 느껴지는 민자도로에 대한 이 곳 국민들 반응은 매우 냉담한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추천수가 높았던 의견들 몇 가지를 보여드리면...
Wolfbeat : "우리가 내는 세금이 필요한 곳에 쓰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제 국민들이 두 배 더 세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결국 이 민자도로 정책은 기업들이 손해를 보지 않게 하는 것이 핵심인 것 같다. 이런 아이디어 필요없고, 이런 장관도 필요없다."
Sterling Archer : "가브리엘은 한 대 맞아야 해. 이미 독일의 여러 공공사업에서 민간자본이 참여를 하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거기다 기업들은 또 얼마나 뜯어 먹으려 하고 있나. 우린 이제 통행료를 내게 되는 거라고!"
doof : "이런 정책은 SPD가 만들어지기 전인 19세기로 되돌리는 것."
독일은 현재 메르켈이 이끄는 집권여당 CDU와 제 1 야당 SPD 등이 연립정부를 구성한 상태죠. 부총리 겸 경제부장관인 지그마르 가브리엘은 바로 야당의 총재이기도 합니다.
Nina P. : "지그마르가 SPD 지지율을 25% 넘기지 않게 하려고 눈물나는 노력을 하고 있구먼. 유니온(CDU+CSU)의 주니어 파트너 따위는 내게 필요 없다."
asr-m62 : "민간투자 얘기는 더 이상 듣기가 싫어. 그 보다 정부는 빨리 대기업들의 세금 구멍을 막아야 해. 제대로 기업들에게 세금만 잘 거둬도 충분히 국가재정에 도움이 될 거야. 그렇게 모인 돈으로 도로 보수하고 낙후된 학교의 화장실 등을 수리하고, 어쩌면 가난한 아이들의 식사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거야."
bloods4life : "존경하는 가브리엘 씨, 국민들에게 거둬들인 세금을 진짜 써야 할 곳에 쓰세요. 교육, 안전, 기본적인 사회시설 확충 등. 차라리 민간자본은 공항이나 공연장 등, 다른 여러 곳에 투자할 수 있을 겁니다. 나라가 돈이 적은 것이 아니고 돈을 옳지 못하게 쓰고 있는 게 진짜 문제가 아닐런지요."
적게는 30% 선에서 많게는 버는 돈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는 독일인들에게 통행료나 세금을 더해 이익을 보존해 줘야 하는 민자도로의 필요성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거기다 무료로 도로를 이용해 온 긴 역사를 거스르는 통행료 등의 출현은 더욱 이들의 분노수치만 높일 뿐입니다. 만약 이런 독일인들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자도로 실태를 본다면 어떤 생각들을 할지 궁금하네요.
물론 국가 재정만으로 하기 어려운 대형 사업들이 있습니다. 민-관협력사업(PPP)은 그런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는 하나의 사업방식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 사업엔 중요한 게 전제돼 있습니다. 민간 투자가 타당한 것인지, 또 얼마나 사업이 투명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등,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득하고 알려주는 그런 신뢰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독일 정부는 현재 도로 건설 참여 기업들에게 주어질 이윤도 30년 이상 장기적인 운영을 하는 조건을 내세우고 있고, 무리하지 않은 통행료 정책을 세울 것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철저한 정부로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독일 국민들은 정부의 이런 정책에 신뢰감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독일 정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해지네요. 여론의 거센 비판 앞에 무릎을 꿇고 없던 일로 할지, 아니면 보다 투명하고 철저한 정책으로 다듬어 다시 국민들을 설득하려 할지...
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내용을 보면서 저는 우리나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민자도로 사업은 얼마나 투명한지, 그리고 정말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또 국민들과 합의를 위한 노력은 얼마나 하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기업들은 정말 꼼수 없이 정도 경영을 하고 있고 그럴 준비가 돼 있는 걸까요? 독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자도로 관련한 시끄러움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런데요. 독일인들 반응이나 우리의 반응이나, 보여지는 것만 놓고 보면 두 나라 국민들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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