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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자율주행은 '도로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을까?


아줌마 파마머리의 데이빗 핫셀호프가 시커먼 폰티악과 함께 <전격 제트 작전>이라는 TV 드라마로 우릴 찾았던 80년대 당시, 동심들은 말하고 스스로 달릴 줄 알았던 자동차 키트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주인공이 시계에 대고 "키트 도와 줘!"를 외치면 자동차는 스스로 시동을 켰고, 심지어 악당을 물리치는 권선징악 주행을 서슴지 않았죠.


아이들은 커서 꼭 키트를 갖고 말 거라는 꿈을 품게 되었고 어른들은 과연 그런 세상이 오겠냐며 썩소를 날렸습니다. 그렇게 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까맣게 잊고 있던 미드의 한 장면이 긴 세월을 타고 이제 일상 속으로 들어오기 일보직전에 와 있습니다. 바로 자율주행이란 이름으로 말이죠. 


사진=play.google.com

요즘 자동차 업계의 대표 흐름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단연코 자율주행입니다. 어느 업체라 할 것도 없이 자동차 회사 모두가 자율주행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엄청난 공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어디 자동차 업체 뿐인가요? 구글 같은 IT 기업은 수면 아래에서 진행되던 자율주행 연구를 수면 밖으로 끄집어 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각국 정부도 이젠 지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자율주행 시대 맞이에 여념이 없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자율주행에 목숨들을 거는 걸까요?



자동차 업계의 확실한 먹을거리

당연히 돈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동차 산업 전체가 정체돼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 마련은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자율주행은 이런 업계의 안정적 먹을거리라는 데 생각이 일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꼭 돈만으로 자율주행을 이야기할 순 없을 거 같습니다.


구글 공동 창업자 세브게이 브린과 레리 페이지는 자율주행을 통해 교통사고를 없애고 이동간 시간을 효과적으로 줄이며, 그로 인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상당히 포장된 표현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이들이 밝힌 자율주행의 궁극적인 목표에 이견을 제시하는 곳은 없습니다. 실제로 자율주행이 완벽하게 이뤄지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집니다.


최근 미국의 컨설팅 업체 맥킨지가 자율주행이 본격화 되는 시대가 오면 미국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의 90%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고 한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209조 이상의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운전 시간도 하루 평균 50분 정도를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죠. 세브게이 브린과 레리 페이지의 말과 맥이 통하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자율주행이 교통사고를 없앨 수 있는 걸까요? 도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센서와 카메라, 그리고 커넥티드

지금까지 자동차는 온전히 운전자의 판단에 의해 가고 서는 게 결정됐습니다. 사람의 눈과 뇌, 그리고 손과 발이 모든 판단의 기준점이었죠. 하지만 앞으로의 자동차는 인간 의존도가 갈수록 줄어들 것입니다. 바로 센서와 카메라, 그리고 이를 통해 얻은 정보를 제어하는 컴퓨터가 있기 때문입니다.


앞 차와의 간격을 알아서 유지하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차선이탈을 경고하는 단계를 넘어 아예 이탈을 방지하는 유지제어 기술, 그리고 이미 장착되 활용도가 높은 내비게이션과 함께 한 단계 높은 자율주행으로 가기 위한 디딤돌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차선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보다 정밀한 제어기술이 반영될 것이고, 차와 차 (V2V)가 통신하고 차와 교통 인프라(V2X)가 소통하며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보다 진일보한 커넥티드 카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한 마디로 자동차끼리, 그리고 자동차와 도로와 신호등이 서로의 위치와 상태를 파악해 정보를 나누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기술들이 구현되면 복잡한 사거리에서도 자동차들은 서로 유기적 주행을 하며 그곳을 안전하게 빠져나갈 것이고, 도로는 자동차들에게 목적지까지의 상황을 입체적으로 전달해 이동 시간 단축이 이뤄집니다. 돌발 상황에 반응하는 속도 또한 사람이 당해낼 수 없기 때문에 교통사고 제로라는 꿈 같은 현실이 이뤄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다임러의 car-to-car & car-to-x 이해도. 사진=다임러



각국 정부도 무한 지원사격 중

사고없는 완벽한 자율주행 환경은 자동차 자체 기술만으로는 실행이 불가능합니다. 복잡한 도심에서는 더욱 그렇죠. 정부의 도움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나 네바다주 같은 곳은 공공도로에서 자율주행 테스트가 가능하도록 법을 몇 년 전 바꿨습니다. 자율주행하겠다고 등록만 하면 허가된 기준 아래서 실주행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올초 북미 가전박람회 때 아우디 A7 모델은 캘리포니아에서 라스베가스까지 900km의 거리를 사고없이 자율주행으로 완주했습니다. 부품 전문업체 델파이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까지 3,400마일짜리 대륙 횡단 자율주행 테스트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만간 미시건 주에 자율주행 테스트를 위한 완벽한 가상의 도시를 만들게 됩니다. 터널, 사거리, 여러 도로 형태 등,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도로 환경을 마련해 놓고 거기서 자율주행의 데이타를 수집할 예정입니다. 사람 대역으로 로봇인형까지 준비를 해놓고 있다고 하니 얼마나 야무지게 준비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겠죠?


자율주행에서 앞선 기술력을 선보이고 있는 독일 제조사들은 독일 정부에 공공도로에서 자율주행 테스트가 가능하게 해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습니다.  미국을 좀 보라 이겁니다. 이에 연방정부는 남부에서 북부로 이어지는 아우토반 A9의 일부에서 자율주행 테스트가 가능하게끔 도로 일부를 재공사 중에 있습니다.


스웨덴도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볼보와 손잡고 예테보리 근처 작은 마을에서 자율주행 차량 100대를 실제 주행시키며 데이타를 얻는 '드라이브 미'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습니다. 일본 역시 정부가 자율주행과 관련한 제조사들의 기술 개발 등에 적극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원 덕인지 자율주행 관련한 특허는 현재 일본 메이커들이 가장 많이 보유를 한 상태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도 늦었지만 본격적인 지원에 나설 계획입니다. 자율주행 관련한 기술개발이나 인프라 구축 등에 2022년까지 3천억 규모의 투자를 하겠다는 건데요. 자동차 좀 만든다는 나라, 자동차 소비나 문화 주도권을 쥔 나라 어디 할 것 없이 자율주행에 기업과 정부가 모두 달라 붙어 있습니다. 개인이동수단의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죠.


아우디 A7의 자율주행 모습. 사진=아우디



그러나 풀어야 할 많은 문제들

현재 계획대로라면 2035년에 자율주행차는 전 세계적으로 1200만대, 그리고 2050년에는 거의 모든 차들이 자율주행 기능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한 기관은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2050년까지 교통사고 사망자수 제로 정책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냥 장밋빛 청사진에 환호할 수만은 없어 보입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기 때문이죠.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는 해킹 등 통신 장애 공격입니다. 커넥티드 카라는 것은  외부와 무선통신으로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통신장애를 일으켜 제 기능을 못하게 만든다든지, 잘못된 데이타를 보내 사고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에 바이러스 심듯 자동차에 바이러스를 심어 잘못된 정보를 준다면 이는 바로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로 이어집니다. 유토피아가 아니라 지옥이 되는 순간이죠. 따라서 얼마나 보안에 철저할 수 있느냐, 또 운전자들에게 이 부분에서 얼마나 신뢰를 줄 수 있느냐가 자율주행 시대가 잘 열리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또 개인 정보의 불법 유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차량의 이동 경로, 속도, 또는 위치가 파악되면서 다양한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것이죠. 미러링 기술 등으로 스마트폰이 자동차와 연결되는데 이 역시 정보 유출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염려 중 하나가 바로 사고 시 그 책임을 어디에, 누구에게 물어야 하느냐인데요.


이를 위해 유럽에서는 관련 업계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을 벌였지만 아직가지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한 상태입니다. 책임 소재를 두고 제조사나 보험사, 혹은 소비자 사이에 보이지 않는 헤게모니 싸움이 이뤄질 수도 있는 상황이죠. 그 외에도 기술표준과 관련해 후발 주자들이 선도 기업들의 기술에 종속되는 문제도 생각해 볼 수 있고 수 많은 자동차가 네트워크로 연결됐을 때 이를 얼마나 잘 조율하느냐 등의 시스템 개발의 어려움도 지적되고 있습니다. 


사진=볼보



어쨌든 자율주행의 문은 열렸다

현재 제조사들은 부분적 자율주행을 통해 시나브로 문제를 해결해 간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당장 올해부터 BMW, 벤츠, 아우디 등은 막히는 구간에서 알아서 주행하는 부분 자율주행 차량들을 내놓을 예정이고, 2018년에는 일본차들을 비롯 거의 모든 제조사들이 부분자율주행이 가능한 모델을 내놓게 됩니다.


그리고 2020년을 부분자율주행을 한 단계 넘어선 통합자율주행의 원년으로 제조사들은 삼고 있죠. 현재 얘기되는 걸로 봐서는 10년 후부터는 도심과 국도, 그리고 고속도로 등, 거의 모든 도로에서 자율주행이 가능할 걸로 제조사들은 보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계획이 교통 유토피아를 위한 아름다운 첫 시도가 될지 아니면 통제 불능의 헬게이트가 열리는 것이 될지는 사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전혀 새로운 자동차 세상이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30년 전 키트를 보며 꿈을 꿨던 아이들이 지금 자율주행 시대를 맞이할 주체가 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꿈이 아름다운 현실이 될 수 있으려면 정부나 제조사 모두 정말 철저한 준비와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돈벌겠다는 생각에 쫓겨 급하게 추진할 내용이 아닙니다. 기술에 대한 신뢰와 사회적 합의 없이 기업의 논리에 맞춰 우리의 도로가 재편되는 것은 반대합니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죠. 자율주행 몇 년 더 늦어진다고 뭐라 할 사람 없으니 돌다리 두드리고 또 두드려 함께 안전하게 건넜갈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