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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애스턴 마틴 시그넷, 줄긋는다고 수박되나?

지난 10월 11일. 애스턴 마틴의 경영자인 울리히 베쯔 씨가 컨셉카로 선보였던 경차 시그넷(Cygnet)을 판매하겠다 발표했습니다. 럭셔리 브랜드인 애스턴 마틴이 새로운 007 제임스 본드의 애마가 될지도 모른다며 별로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저는 이 사람들(애스턴 마틴 경영진)이 뭔 생각을 갖고 이 차를 내놓는 건지 솔직히 되묻고 싶어지더군요. 한국 메이커 아닌 외국 브랜드에서 어떤 신차 출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약간의 짜증섞인 글을 써보기론, 아우디코리아 트래버 힐 사장이 A1 출시 계획과 관련돼 했다는 얘기에 이어 두 번째가 아닌가 싶은데요.

A1이야 한국 수입과 관련됐으니 그런다하지만 이 메이커는 그런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별로 반갑지 않은 이유는 뭘까요? 지금부터 그 얘기를 해볼까 하는데, 솔직히 화가 나거나 하는 마음 보다는 "조금은 속보이는 얄팍한 상술" 뭐 이런 느낌에 쓴 웃음짓게 됩니다. 자 일단 시그넷의 예쁜 사진을 한 번 보시죠.


처음 Cygnet이 컨셉 모델을 선보이고 양산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들이 나왔을 때 언론이나 많은 분들이 '출퇴근용 럭셔리 경차가 출시된다!' 라며 반응들을 보였었죠. 어쩌면 벤츠가 스마트로,  피아트가 500 등으로 솔로 여성들을 포함한 젊은 층에 인기를 얻고 있는 모습이 부러웠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고객들 입장에서도 도심형 경차가 애스턴 마틴의 엠블럼을 달고 나온다는 소식에 혹시 나도 몰아볼 수 있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기대 심리도 있었을 것이구요. 

그런데 얘기가 좀 진행되다 보니 이 차는 원하는 고객 누구에게 판매하는 차량이 아니라 기존의 애스턴 마틴 차주들에게만 판매를 하는 쪽으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기존 고객들이 세계적으로 약 50,000여명 정도가 있다고 하는데요. 그들 만을 대상으로 하겠다는 얘기이고, 그들에게도 다 판매를 하는 것이 아니라 2,000~3,000대 정도만 한정 판매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차를 갖고 싶은 분들은 애스턴 마틴 고객들이 구매했다 되팔 때나 가능하다는 것인데...왜 이런 판매를 결정한 것일까요?

토요타 iQ 전면

애스턴 마틴 시그넷 전면

토요타 iQ 후면

애스턴 마틴 시그넷 후면





1. 비싼 가격

잘 아시는 것처럼 시그넷은 토요타의 경차 iQ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베이스로 하고 있다기 보다는 이 차를 그대로 가져다가 겉과 속의 디자인과 소재만 바꾼 것이죠. 보통 2억원 정도 짜리 차를 파는 애스턴 마틴은 경차용 엔진 같은 것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토요타와 협의해 iQ를 들여다 엠블렘을 바꾸면서 내외관 꾸미기에 힘을 가했죠. 그래서 겉은 위와 같은 모습으로, 그리고 속은 또 이렇게 고급스럽게 바뀌게 됩니다.


페라리 내부를 보는 듯 엄청나게 화려하고 고급스럽게 변신을 시켜놓았죠. 이러다 보니 예상되는 시그넷 가격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데 적게는 30,000유로(4천5백만원)에서 많게는 34,000유로(5,100만원)까지 얘기가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커헉~! 34,000유로면 토요타 iQ 3대 가까이 살 수 있는 가격이자 독일의 대표적인 자동차들인...


아우디 A4 2.0 TDI 콰트로나 BMW 320d 이피션트다이나믹스 등을 구매할 수 있는 가격입니다. 그러니까 시그넷이 얼마나 비싼 럭럭럭셔리한 경차인지 아시겠죠? 경차 형태로 컨셉카를 만들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워낙 좋더라...그래서 양산을 결정했다. 좋다 이겁니다. 그런데  도대체 저 가격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냐는 거죠. 애스턴 마틴 이름깞이란 건가요?



2. 기존 고객들에게만 판매?

거기다가 기존의 애스턴 마틴 고객들이라고 한정을 지은 것은 또 무슨 의미일까요? 사실 한정 판매는 예상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왜냐면 아무리 꾸미고 색조화장을 시켜놔도 기본은 애스턴 마틴의 차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확실치도 않은 시장을 위해 메이커에서 새로운 플랫폼을 짠다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을 것이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고급스럽게 치장을 했다는 것은 몇 가지를 짐작 가능케 합니다.

즉, 기존 고객들에게 한정을 지은 것은 결국 마케팅의 차원이 아니겠느냐는 거죠. 어차피 많이 팔 차가 아니라면 기존의 고객들에게로 구획을 명확하게 해놓음으로써 시그넷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애스턴 마틴이라는 럭셔리 차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일종의 프라이드를 갖게 할 수 있고, 시그넷을 봄으로써 애스턴 마틴이란 브랜드를 인지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회사는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후자를 더 고려했을 수 있겠죠. 따라서, 시그넷은 세계 곳곳, 도시 곳곳을 누비는 바퀴달린 '애스턴 마틴'의 광고차량이 되는 셈입니다. 자동차가 다 메이커를 광고하지 무슨 소리냐 라고 반문하시겠지만, 보통의 자동차들은 그 성격과 가치가 명확한 가운데 태어납니다. 차로서의 기능을 우선의 가치로 놓는 것이죠. 반면에 시그넷과 같은 차는 제 판단이지만, 오로지 기존 고객들을 일종의 홍보맨으로 삼아 광고만을 주된 목적으로 예쁘게 꾸며진 차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 않나요?


다시 제일 처음 보여드렸던 사진 두 장을 보여드립니다. 보시면 차가 예뻐서 그런지 젊은 여성 모델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보통 저렇게 사진을 찍을 때는 의도가 있습니다. 이 차의 주 타겟이 어디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죠. 사진만 보면 확실히 스마트 포투의 고급 버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심생활을 하는 젊은 여성. 그 중에서도 애스턴 마틴의 차를 타는 부유한 여성이라는 이미지는 일종의 동경이 될 수도, 또는 허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표현 써서 참 죄송한데, 자칫 잘못 애스턴 마틴식 된장녀 만드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독일의 어떤 기자가 시그넷 소식을 보고 이렇게 말했더군요.

"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패리스 힐튼이 마약관련 재판정에 출두할 때 타고 오는 용도면 딱 되겠군..."

저나 그 기자나 어쩌면 너무 정도 이상의 반응을 보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애스턴 마틴이 추구하는 철학과 방향성이 이 차에 있느냐? 도대체 남의 차 가져다가 온갖 걸로 비싸게 찍어발라 놓으면 그게 명품이 되는 것이냐 이겁니다. 

저는 그저 광고 수단에 지나지 않을 시그넷을 메이커에서 기존의 고객들에게만 판매한다는 것, 차라리 잘한 선택이라고 결론적으로 말하겠습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는 거 아니라는 말 애스턴 마틴 사람들 모르려나요? (듣는 호박에겐 미안~)  명차의 가치를 만들어 가고 좋은 전통을 지켜간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거...시그넷 같은 차량을 보면서 다시 한 번 해보게 됩니다...